얼마 전 제주 4.3사건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제주 4.3사건 키워드가 상위에 떴을 뿐만 아니라 지난 4월 3일에는 1위에 오르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됐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 참석, 도올 김용옥 선생의 제주평화선언, 배우 유아인 발언이 엄청난 화제를 모았습니다. 특히 유아인이 "부끄럽게도 저도 4.3을 잘 몰랐다"고 언급했던 말이 지금도 저의 머릿속에 기억에 남습니다. 유아인의 말이 한국인 대부분의 인식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까지만을 놓고 보면, 아마도 제주 4.3사건을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제가 지난 4월 2일 제주도에서 봤던 벚꽃 사진입니다. 단순히 찍어본 사진인데, 막상 사진 정리를 해보니 이 모습을 저의 제주 4.3사건 포스팅 첫 번째 사진으로 올리고 싶더군요.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도이니 말입니다. 제주도하면 여행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여행지하면 많은 사람들은 제주도를 떠올립니다. 더욱이 제가 제주도에 갔을 때는 제주도에 벚꽃이 한창 피었습니다. 제주도가 수도권보다 벚꽃이 빨리 피더군요. 역시 제주도는 한국에서 가장 가볼만한 여행지 같습니다. 하지만 그 제주도에는 7년 7개월 동안 무고한 제주도민이 희생 당했던 아픔이 있는 곳입니다. 그 아픔이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것 같습니다.

 

최근 제주 4.3사건을 새롭게 알게된 분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주 4.3사건을 왜 몰랐을까?'라고 말입니다. 저로서도 제주 4.3사건은 잘 몰랐습니다. 그나마 이 사건을 인지하게 된 계기가 2018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었으며 문재인 대통령 참석 및 이효리 시 낭독이 화제의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아마 이 때를 기점으로 제주 4.3사건을 알게 된 분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4.3사건이 벌어진지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왜 이제서야 이 사건을 알게 되었는지는 저의 마음속에서 의문이 없지 않습니다.

 

이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제주 4.3사건 70주년 추념사 핵심을 올립니다.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제주 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다짐이었습니다. 과연 현 정부에서 제주 4.3사건이 얼마나 해결될지 알 수 없으나 지난해와 올해 제주 4.3사건 추념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인지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어느 정도는 진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제주도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물론 현 정부에서만 제주 4.3사건에 관심을 쏟은 것은 아닙니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4.3진상규명특별법 제정 및 4.3위원회 출범 그리고 노무현 정부 시절 4.3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 인정 및 위령제 참석과 더불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을 향한 사과가 있었습니다. 아울러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제주 4.3사건 추념식에 참석했습니다. 12년 뒤인 2018년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면서 제주 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강조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이후에도 제주 4.3사건 향한 사람들의 관심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주 4.3 평화기념관은 제주 4.3사건을 알고 싶어하는 분이라면 반드시 찾아야 할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4.3의 과정을 상세히 알 수 있는 곳입니다. 기념관 건물이 그릇 모양을 연상케하는 모습이 특색있게 느껴졌습니다.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발포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3.1절 기념대회 도중 군정경찰이 군중을 향해 총탄을 쏘면서 6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제주 민심이 들끓었습니다. 그 해 3월 10일부터 민관 합동 총파업이 펼쳐지면서 경찰에 항의했습니다. 하지만 4월 중순 검속자가 500명으로 늘어났으며, 미군 감찰보고서에 따르면 "10 x 12피트(약 3.3평)의 한 방에 35명이 수감됐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검속된 사람들은 늘었으며 1947년 3월 1일 발포사건부터 1948년 4월 3일 발발에 이르기까지 검속된 사람은 2,500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3.1기념식은 허가된 집회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제주 4.3 평화기념관에 전시된 판결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당시의 경찰이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안타까운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당시 제주도는 미군정이 실시되었으나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 식민 통치기구에서 일했던 경찰 및 관리가 재등용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제주도 민심이 안좋았다고 합니다. 한국 근대사를 보면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는데 제주 4.3사건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서북청년회라는 극우청년단체까지 제주도로 들어오면서 경찰, 행정기관, 교육기관 등을 장악했다고 합니다. 1948년 초 서북청년회 단원이 760명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제주도에서 이른바 빨갱이 사냥을 구실로 테러를 가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1948년 4월 3일 사태가 벌어지면서 수많은 제주도민이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학살극이 벌어졌습니다.

 

제주 4.3사건의 책임은 당시의 미군정에게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경찰 및 관리를 재등용한 것도 문제였지만, 무리한 강경 진압 작전을 펼치면서 제주도민들이 잇따라 희생되는 안좋은 일이 거듭됐습니다.

 

당시 정부는 제주도 해안에서 5Km 이상 들어간 곳에 통행한 사람을 폭도로 간주하여 총살하겠다는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군경토벌대가 중산간마을에 불을 내거나 비무장 민간인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그 정부의 대통령은 이승만입니다.

 

제주 4.3 평화기념관 옆에서 우연히 동백꽃을 봤습니다. 동백꽃은 제주 4.3사건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4.3의 영혼들은 붉은 동백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없이 쓰러져갔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다음 날 4월 3일에는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제주 4.3사건 71주년 추념식이 펼쳐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제주평화선언(-삼다(三多)의 고난과 삼무(三無)의 평화-)은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핵심적인 부분을 언급하면 이렇습니다.

 

-제주는 젊습니다. 영원히 젊습니다. 성산 일출봉의 분화구처럼 항상 푸릅니다. 젊기 때문에 비극의 강렬함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적인 욕망에 갇힌 권력의 남용과 횡포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도덕적 선과 악을 상식의 느낌에 따라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그 당위의 선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젊음의 청순함과 단순성은 반드시 비극을 초래합니다. 비극이란 파멸이며 상실이며 억울한 존재의 울부짖음입니다. 파멸과 상실은 절망을 초래합니다. 그러나 젊음에게 절망은 좌절을 의마하지 않습니다. 절망은 젊음에게 평화의 직관을 선물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돌 많고, 바람 많고, 고통 받는 여자 많은 삼다의 섬. 그것은 고난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이 삼다의 처절한 절망 속에서 제주의 사람들은 도둑 없고, 거지 없고, 대문 없는 삼무의 여백과 평화의 감각을 창출했습니다. 삼다의 절망 속에서 삼무의 평화를 피어냈습니다. 백설 속에 피는 동백처럼. 삼무는 천하위공(天下爲公) 대동(大同)의 이상입니다.

 

-제주의 젊음은 비극 속에서 성장하면서 비극의 모든 성과를 수확했습니다. 정의를 한라산 현무암 굴곡진 아름다움 속에 구현하여 왔습니다. 제주는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제주는 탐라의 민중들이 창조하여 온 것입니다. 제주의 모험은 이여도의 꿈에서 시작하여 청춘의 열정과 비극적 아름다움을 결합시켰습니다. 그 결합의 힘이 바로 삼다삼무의 평화의 감각입니다.

 

-우리의 개체적 인식의 지평의 화전, 역전, 확대가 없이 평화는 달성되지 않습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모든 이데올로기, 편협한 개념적 사유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빨갱이는 설문대 할망이 만든 우주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명화된 문화의 발전과 유지에 필요한 근원적 요소 속에는 종교적 비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유아인은 전국 대표 6명과 함께 무대에 올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젊은 세대의 결의와 다짐을 했습니다. 자신도 4.3사건을 잘 몰랐다며 우리가 그 사건을 왜 몰라야 했는지 잘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주 4.3사건을 접하며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소환하고 현재로 만들어야 하는 역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와 더불어 젊은 세대가 4.3을 알아나가고 3세대 유족이 1세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언급했습니다.

 

추념식이 끝난 뒤에는 봉안관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제주 4.3사건 희생자 유해발굴을 통해 발굴된 유해를 봉안한 곳입니다. 4.3사건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은 2006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관련 목격자 및 유가족들의 증언을 토대로 학살, 암매장지 현장발굴을 추진하였으며 희생자들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유해와 유가족의 유전자(DNA)감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봉안관에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화북, 제주국제공항, 선흘리, 태흥리, 도두동 등에서 발굴된 4.3희생자 유해가 안치되었다고 합니다.

 

차마 사진으로는 올리기가 무섭지만, 이곳에서는 제주 4.3사건 당시 최대 학살, 암매장지 중의 하나였던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 내 유해발굴 현장을 실물 크기로 재현 및 전시된 유해발굴 현장이 전시됐습니다. 다시는 한국에서 이러한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주 4.3평화공간에서는 제주 4.3사건 희생자 중에서 시신을 찾지 못해 묘가 없는 행방불명인 대상으로 개인표석을 설치해 넋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됐습니다. 행방불명 희생자는 4천여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의미있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각 전국 블로그 기자단이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 기원을 바라며 동백나무를 심었습니다. 서울미디어메이트에서는 서울 대표로서 동백나무를 심었네요. 동백나무가 무럭무럭 성장했으면 합니다.

 

변병생모녀상(작품제목 : 비설)도 볼 수 있었습니다. 1949년 1월 6일 변병생(당시 25세)과 그의 두 살배기 딸이 거친오름 북동쪽 지역에서 피신 도중에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후일 행인에 의해 눈더미 속에서 모녀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변병생모녀상은 당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던 두 사람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는 제주시 초전읍 북촌리를 찾았습니다. 벚꽃이 한창 피어있는 곳을 들렸는데 알고보니 북촌리는 제주 4.3사건이 벌어졌을 때 '리' 단위로는 최대의 피해 마을로 기록됐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북촌 너븐숭이 기념관이 조성됐습니다.

 

순이삼촌 문학비는 지난 2008년 정부에서 옴팡밭 부지를 매입하여 설치됐다고 합니다. 비석이 눕혀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당시 쓰러졌던 희생자들의 모습이 표현됐습니다. 순이삼촌은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하는 소설가 현기영씨의 중편소설입니다. 이 책에서는 4.3사건의 참혹상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제주시 애월읍 하귀1리에 있는 영모원도 들렸습니다. 제주 4.3사건 희생자의 넋을 위령하고,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희생자의 명예회복 및 평화와 인권을 위해서 조성됐다고 합니다. 하귀리에서는 일제 강점기 시절 야학운동 등을 통해 항일운동가가 많이 배출됐습니다. 이곳은 4.3영령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 시절 하귀리를 지켜왔던 순국 선열, 6.25 및 베트남전 참전희생자를 한자리에 모신 추모공원이 조성됐습니다.

 

4월 4일에는 용눈이오름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다랑쉬오름 옆에 위치했습니다. 다랑쉬오름에서 일어난 4.3사건의 비참한 상황을 보고 들은 산 목격자라고 할 정도로 다랑쉬오름과 가깝습니다.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터진목도 들렸습니다. 터진목은 성산읍 지역의 4.3사건 희생자 460여 명 원혼을 기리는 추모공원이 조성됐습니다. 그와 더불어 4.3사건 당시 학살 당했던 주민들의 시신이 모래밭에 묻히거나 바닷물에 떠내려갔다고 합니다. 제주도의 인기 관광지 성산일출봉 근처에서 4.3사건 당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줄은 몰랐습니다. 성산일출봉하면 여행 관련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우나 불과 몇십 년 전까지는 비극적인 장소였습니다. 

 

성산일출봉 옆에는 우뭇개해얀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터진목과 더불어 제주 4.3사건 때 주민들이 학살 당했던 해안이라고 합니다. 사진을 봐도 성산일출봉에 둘러쌓인채 고립된 모습이 눈에 띕니다. 그곳에서 주민들의 눈을 피해 잔학한 학살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제주도에서 제주 4.3사건 관련 장소들을 둘러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한국에 있었나?'라는 안타까움이 느껴졌습니다. 지금의 한국에서 벌어지기 어려웠던 끔찍했던 일이 불과 몇십 년 전에 벌어진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건이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뚜렷하게 알려졌던 타이밍이 다소 늦은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물론 문재인 정부 이전에 제주 4.3사건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겠으나 유아인이 제주 4.3사건을 잘 몰랐다는 언급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제주 4.3사건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며 제주도가 과거에 겪었던 아픔이 한국인들에게 잊혀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3일 트위터를 통해 제주 4.3사건과 관련된 입장을 전했습니다.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이 이념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으로 가는 길입니다. 더딘 발걸음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진상을 완전히 규명하고 배보상 문제와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 등 제주도민들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일에 더욱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대통령으로서 끝까지 챙기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4월 3일 트위터)

 

향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그동안의 문제를 극복하는 방안 등이 이슈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제주 4.3사건의 아픔이 치유되는데 있어서 국민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거듭될 수록 제주 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입니다.

 

연예 블로거로 활동하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만약 제주 4.3사건과 관련된 상업 영화가 큰 인기를 얻는다면 제주 4.3사건은 대중들에게 강렬한 주목을 받는 또 다른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및 1987년 6월 민주 항쟁 향한 사람들의 주목도가 높았던 원동력 중에 하나가 상업 영화였습니다. 향후 제주 4.3사건 관련된 상업 영화가 제작되어 사람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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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맞이하여 서울가볼만한곳 알아보는 분들에게 돈의문박물관마을 추천합니다. 이곳 근처에 경희궁 및 광화문 등이 위치했다는 점에서 서울 시내 당일치기 코스로 다녀오기 좋습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근현대 100년, 기억의 보관소'라는 콘셉트의 역사 및 문화시설로 탈바꿈했습니다. 서울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과 더불어 아늑한 한옥의 모습을 구경하면서, 추억 속 아날로그 감상을 접하며 옛 추억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기 쉽습니다. 특히 서울 시내 고궁을 돌아보는 분이라면, 고궁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서울가볼만한곳 돈의문박물관마을을 방문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제가 2년 전에 찾았던 곳입니다. 그때는 2018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행사장으로서 도시재생방식으로 조성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궁이 아닌 곳에서 한옥을 볼 수 있는 것이 인상 깊게 느껴졌습니다. 서울 시내에서 한옥을 보는 것은 상당히 흔치 않으니 말입니다. 2년이 지난 현재 이곳은 마을 전체가 박물관이 됐습니다. 마을전시관 16개동, 체험교육관 9개동, 마을창작소 9개동이 들어섰습니다. 돈의문 일대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는 돈의문 전시관을 비롯하여 독립운동가의 집, 돈의문 구락부, 6080 감성공간 등을 둘러볼 뿐만 아니라 자수공예 및 한지공예, 서예 등을 체험하며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습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지난 1개월 동안 시범 운영을 거친 뒤 최근 시민에게 완전히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4월 6일과 4월 7일에는 시범 운영을 맞이하여 마을마당 일대에서 6080 음악 공연, 도슨트 투어, 추억의 골목놀이 등이 진행된다고 합니다.

 

그 이전인 4월 5일에는 돈의문박물관마을 새단장 프레스투어가 진행됐습니다. 이곳이 어떻게 새단장했는지 직접 현장에서 접했습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전면 철거가 아닌 보전에 주력했으며 문화시설까지 추가된 도심 재생방식으로 탈바꿈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콘셉트가 과거의 돈의문을 돌아보게 하는 느낌이 짙었습니다. 만약 철거했다면 이곳만의 특색을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곳만의 고유한 자산을 지키면서 고궁과의 연계성이 두드러졌습니다. 고궁과 가까운 곳에 있으니 서울의 예전 분위기를 느끼는데 있어서 적합합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의 비전은 '살아있는 박물관 마을'입니다. 연중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 운영을 진행하면서 소규모 공연, 행사, 마켓 등을 수시로 개최할 예정입니다. 2년 전 임시 사용 승인 이후에는 작가 창작 및 기획전시 공간이 제공됐습니다. 보다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며 향후 이곳을 찾는 사람이 꾸준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문화를 제대로 즐길만한 공간이 새롭게 단장했으니 말입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하루 두 번 도슨트 투어가 진행됩니다.(매일 오후 2시, 4시/월요일 휴무) 개인적으로는 도슨트(Docent)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졌는데 알고보니 안내인을 뜻하더군요. 워낙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구경할 만한 콘텐츠가 많아서인지 이곳을 효율적으로 둘러볼 수 있는 무언가의 길잡이가 필요했습니다. 그 역할을 도슨트가 합니다.

 

꽃이 핀 나무의 모습이 예뻤습니다. 사진 촬영을 할 수 밖에 없는 충동을 느끼게 되더군요.

 

돈의문전시관 포함한 몇몇 건물은 단독주택 느낌이 많이 납니다. 기존 건물을 그대로 두면서 박물관 마을 콘셉트가 강화된 것 같네요. 이곳을 계속 둘러보다 보면 '서울 중심지 근처에 이런 곳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서울에 거주했던 저로서도 이렇게 특색 있는 곳을 알게 된 것이 불과 2년 전이었습니다. 서울가볼만한곳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118년 전이었던 1901년 서울의 모습이 어땠는지 미국의 여행가 및 사진가 엘리어스 버튼 홈즈 후기를 통해 접했습니다. 돈의문 관련 내용으로는 이곳에 전차가 다녔던 기록 및 사진이 남겨졌습니다. 과거 서울이 어땠는지, 1900년대 초반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서양인의 서울 여행 코스가 어땠는지 살펴봤습니다.

 

돈의문전시관에서 미국인의 서울 방문 소감이 한 쪽 코너를 차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역시 한국인은 외국인들의 반응을 듣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인지했습니다. 온라인이나 유튜브에서 한국 관련 해외반응 게시물이 많은 인기를 누리는 모습, 주로 외국인들이 출연하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 꾸준한 인기를 얻는 모습을 보며 한국에서는 해외반응에 흥미를 갖는 심리가 뚜렷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지 돌아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근대 시대에는 전차가 인천의 제물포에서 출발하여 돈의문을 거쳐 성 안에 도착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돈의문 주변은 외국인들이 서양식 건물을 새롭게 짓거나 수입 물품을 판매했다고 합니다. 역시 교통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지하철 역 주변의 집 가격이 비싼 것을 봐도 말입니다.

 

돈의문전시관의 유적전시실에서는 경희궁 궁장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경희궁 남측 구역에서 궁장 유구가 발견되면서 경희궁 및 경희궁 밖 마을 사이의 경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경희궁 궁장 앞에서는 조선 시절의 온돌도 보였습니다.

 

돈의문전시관 2층에서 골목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마을 느낌이 많이 났습니다.

 

2층에서는 단독주택의 근사한 매력이 잘 나타났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2층 집 희소성은 큰 것 같습니다.

 

홍파동 골목모형입니다. 홍파동이 어떤 곳인지 직접 지도에서 검색하니 돈의문박물관마을과 가까운 곳에 위치했더군요. 하지만 모형에서 볼 수 있는 골목과 집은 현재 볼 수 없다고 합니다. 과거의 홍파동은 한옥과 다세대 주택 등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아날로그 시절에 한옥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돈의문박물관마을에는 한옥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한옥이 드물다는 점에서 이곳만의 전통적인 매력이 잘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한옥은 주로 체험교육관으로 활용되는 중입니다. 한지공예, 서예, 화장/복식, 음악예술, 자수공예, 닥종이 공방, 미술체험, 차/가배를 체험할 수 있으며 명인갤러리에서 명인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SNS에 올리기 좋을 만한 한옥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돈의문구락부는 프랑스인 부래상, 미국인 테일러 등 과거 이곳에 거주했던 외국인들의 스토리 및 사교장 구락부를 접할 수 있습니다. 예전 감성이 진하게 나더군요.

 

골목길에는 트릭아트 포토존이 마련됐습니다. 이곳에서 관람객만의 익살 넘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시민갤러리에서는 시민 수집가가 모았던 예전 음반 및 무선통신기기가 전시됐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에 음반이 어떻게 나왔는지, 최소 30세 이상의 한국인이 어린 시절에 익숙하게 봤을 삐삐와 핸드폰을 보며 과거를 떠올리게 됩니다.

 

돈의문콤퓨타게임장(정식 명칭이 이렇습니다. 예전에 오락실이 콤퓨타게임장으로 표기되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으로 이동하니 예전 아날로그 시절에 봤을 법한 축구놀이판, 프로야구판이 있습니다.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는 PC 및 모바일로 스포츠 게임을 즐길 수 있는데(PC의 경우 20년 전에도 그랬지만) PC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종이로 축구 및 야구 게임(?)을 즐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락실과 만화방에서는 과거에 많은 인기를 누렸던 오락실 게임 및 만화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즐겼던 게임도 이 곳에서 접했습니다.

 

작가갤러리는 회화, 조소, 사진 등에 이르기까지 시각예술 전 분야 작가를 격월로 선발하여 기획전시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우리네 어머니 시간을 경험하는 '엄마의 옷장'전(목은정 작가)이 진행중입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2003년 돈의문 뉴타운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기존 건물 철거 후 근린공원으로 조성될 계획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도시재생 마을이 됐습니다. 이곳이 한양도성 서쪽 성문 안 첫 동네로서 동네의 역사적 가치를 알릴 수 있는 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마을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마을 내 건물을 최대한 살리며 리모델링하거나 일부 집을 허문 곳에는 너른 마당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근현대 100년, 기억의 보관소'라는 콘셉트의 마을단위 도시재생 지역이 됐습니다.

 

*[읽어볼만한 글] 콤퓨타게임장, 삼거리이용원…추억 돋는 ‘돈의문 박물관마을’ (내 손안에 서울)

 

*돈의문박물관마을

-운영시간 : 10:00 ~ 19:0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입장료 : 무료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길 14-3(신문로2가 7-22)

-도슨트 투어 : 매일 오후 2시, 오후 4시(월요일 휴무)

-지하철 :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도보 약 5분, 5호선 광화문역 7번 출구에서 도보 약 10분, 1~2호선 시청역 1, 12번 출구에서 도보 약 15분

 

Posted by 나이스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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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서울책보고 방문하면서 '이런 곳이 서울에 존재하는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수많은 헌책을 접하면서 가족 및 친구들과 유익한 시간을 보내기 좋을만한 곳이 지난 3월 27일 서울에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는 헌책방이라면 예전 책을 구입하거나 또는 판매하는 개념으로 인지할 것입니다. 하지만 서울책보고는 다릅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었으니 말입니다. 의자에서 읽거나, 일어서면서 읽거나, 아니면 침상에 누우면서 읽어도 됩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방문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서울책보고 향한 관심을 갖기 쉽습니다.

 

서울책보고 위치 지하철역에서 상당히 가까운 것이 인상적입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나루역 1번출구 300m 인근에 위치했습니다. 강동이 아닌 서울의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분들이 접근하기 쉬운 장점이 있습니다. 지하철역과 상당히 밀접한 곳에 서울책보고 위치했으니 말입니다.

 

또 하나 인상깊은 것은 서울책보고 앞에서 지하철 지나가는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잠실나루역 1번출구에서 서울책보고로 향하거나 반대의 방향으로 이동할 때 지하철 운행 모습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지상에서 운행중인 지하철과 서울책보고 건물 사이의 거리가 상당히 가깝기 때문에 스마트폰 또는 카메라로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서울책보고 운영시간은 화-금요일 10:30~20:30, 토-일요일(공휴일) 10:00~21:00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무입니다. 주말 및 공휴일이 평일보다 운영시간 1시간 늘어난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찾도록 배려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족 및 친구, 연인등과 함께 주말에 책과 함께 시간 보낼 수 있도록 운영시간을 조정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평일에 여유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 입장에서도 주말을 이용할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서울책보고 이용 시 주의사항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사진 촬영입니다. 책 내용 사진촬영 및 타이핑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SNS 등을 돌아다니다 보면 책 내용이 사진으로 촬영된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책보고에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서울책보고 전체가 사진 촬영이 제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온라인에 서울책보고 관련 사진이 많이 돌아다니는 중입니다. 실제로 제가 이곳을 찾았을 때에도 실내 모습을 사진에 담기위한 목적으로 스마트폰 촬영하는 사람들을 꽤 봤습니다. 카메라로 사진 촬영하는 분도 봤습니다.(이쯤에서 실내 촬영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에 궁금증을 느끼기 쉬운데 그 부분은 뒤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실내 모습을 촬영하는 것은 괜찮으나 책 내용 사진 촬영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인지하시면 됩니다. 이 밖에 서울책보고에서는 음식물을 반입할 수 없으며 반려동물과 함께하시면 안됩니다.

 

이곳은 와이파이 이용 가능합니다. 책에 대하여 이런 저런 정보를 알고 싶은 분들에게 유용합니다.

 

서울책보고 이용 순서 이렇습니다.

 

오는 4월 중순부터는 북카페 음료를 판매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헌책을 읽으면서 음료를 마실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책보고는 서울도서관이 운영하는 곳으로서 여러 헌책방의 참여를 통해 수많은 책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출간한지 꽤 오래된 책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독립출판물, 희귀본, 초판본 등도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문화 프로그램 진행까지 곁들여지며 서울의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됐습니다. 서울의 또 다른 문화를 서울책보고에서 볼 수 있는 것이죠.

 

헌책은 예전 책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간혹 어떤 책들은 예전 시점에서 바라본 책이기 때문에 지금 시점과 차이가 나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시각에서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과거에 읽어보고 싶었던 책을 무언가의 이유로 읽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말입니다. 그럴 때 헌책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만약 헌책을 구입하게 된다면 정가보다 상당히 저렴한 가격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서울책보고 실내 통로는 꽤 재미있게 만들어졌습니다. 통로 방향이 입체적입니다. 만약 일정한 방향이었다면 이곳을 단순히 헌책을 접하는 곳으로 인지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기자기한 통로 방향을 보며 사진 촬영을 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킵니다. 저도 이곳에서 사진 촬영을 여러 차례 했고, 저의 주변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 사람을 여러 명 봤습니다. SNS에 사진을 올리고 싶어하는 본능을 자극합니다. 상당히 흥미진진한 공간이 구성됐습니다. 창의력을 불어 넣는 것 같아요.

 

책 읽는 공간은 사람 취향에 맞게 구성됐습니다. 의자에서 책을 읽고 싶은 사람, 테이블이 있었으면 하는 사람, 누워서 편하게 책을 읽고 싶은 사람,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일어서서 읽고 싶은 사람의 취향을 모두 맞추는 공간으로 마련됐습니다. 이렇다 보니 서울책보고에서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자리에 오래 있는다고 눈치를 주는 사람도 없어 보였습니다.

 

워낙 책이 이곳에 많다 보니 사람 키 보다 높은 곳에 책이 보관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사다리에 올라서 높은 곳에 있는 책을 찾으시면 됩니다. 사다리를 이용하는 기분이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전국책방협동조합에서 기증했던 도서로 제작된 조형물은 정말 잘 만들어졌습니다. 튼튼하면서 창의적으로 제작되었더군요.

 

현재 서울책보고에서는 개관기념 특별전 '그 때, 그 책보고'를 진행중입니다. 초판본 모음을 비롯하여 옛날 잡지, 1950~90년대 교과서 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옛날 책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 야구 잡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선동열, 고 최동원, 고 장효조 같은 1980년대 한국 프로야구(KBO리그) 스타들이 잡지 표지에 등장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이 때의 야구 잡지 가격은 900원입니다.

 

옛날 교과서 모습도 전시됐습니다.

 

서울책보고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속 가고 싶어하는 서울 헌책방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헌책을 마음껏 만나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제가 갔을 때 가족 및 친구, 커플 단위로 방문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서울책보고 향한 사람들의 긍정적인 입소문이 점점 많이 전파된다면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각광받는 날이 빨리 올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읽어보면 좋은 글] 서울책보고, 국내 최초 초대형 헌책방 생겼다(내 손안에 서울)

 

또 하나 저의 시야에 들어왔던 것은 서울책보고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아직 개관한지 얼마되지 않은 서울책보고 방문한 사람이 많다는 것은 책을 좋아하는 서울 시민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울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모습을 보며 서울의 삶의 질이 올라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서울은 시민들을 위한 도시로 발전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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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페이 사용법 알고싶은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서울 지하철 등에서 제로페이 홍보물 접한 분이라면 제로페이 사용법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게 느끼기 쉬울 것 같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제로페이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그에 따른 혜택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말입니다. 소상공인 간편결제 서비스 제로페이는 지난해 12월 20일부터 서울시에서 시범으로 선보이는 서비스입니다. 소상공인 카드수수료 0%대로 낮추는 것과 더불어 소비자 입장에서는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서울시민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제로페이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보다 간편한 결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3월 13일 오후 서울 중랑구 우림시장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로페이 홍보캠페인 및 제로페이 시연을 하는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류경기 중랑구청장, 박홍근 국회의원, 서영교 국회의원 등이 참석하며 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상인분들에게 제로페이를 알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로페이가 서울 곳곳에서 널리 쓰일 수 있도록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제로페이를 사용하며 현장을 찾았습니다.



우림시장 제로페이 홍보 행사는 인파가 붐빈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특히 미디어 취재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통시장에서 제로페이를 직접 시연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제로페이 사용법 잘 모르는 분이라면 미디어를 통해 공개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제로페이 시연 모습을 통해 '제로페이를 저렇게 이용하면 되는구나...'라고 인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우림시장 곳곳을 돌아다녔을 때 먹을거리를 구입하며 제로페이로 결제하는 모습을 제가 직접 보면서 제로페이 사용법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제로페이는 무엇보다도 자영업과 시장상인들, 상공인들을 위해서 만들어낸 제도입니다. 지금 신용카드 수수료가 조금 부담이 되시잖아요."라며 제로페이의 유용함을 강조한 뒤 "처음이니까 약간 불편함도 있지만 점점 개선이 되서 아마 하반기 정도되면 시범사업을 거쳐서 본격적으로 쓰게 됩니다."라며 제로페이가 오는 하반기 본격화될 것임을 알렸습니다.



제로페이 향한 미디어의 전반적인 반응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제로페이가 아직은 시범 서비스라는 점입니다. 프로야구에서 정규시즌 이전에 시범경기를 치르는 것처럼, 아이돌이 데뷔하기 이전에 연습생 단계에 있는 것처럼 아직 제로페이에 대하여 완벽함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일 뿐이며 아이돌 연습생은 정식 데뷔한 가수가 아닙니다.


또한 시범경기는 곧 다가올 정규시즌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하기까지 실전 감각을 기르는데 목적을 둔다면 아이돌 연습생은 빼어난 춤과 노래 기술을 연마하기까지 적잖은 시간 투자를 합니다. 그런 것처럼 제로페이는 시범 서비스를 통해 제로페이 간편결제 개념 및 혜택 등을 시민들에게 알리는데 비중을 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일환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 제로페이 사용법 시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장 곳곳에서는 제로페이를 알리는 리플릿이 배부됐습니다. 리플릿에는 제로페이 사용법 안내됐습니다. 판매자 및 소비자에 따른 사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소비자가 제로페이 이용하는 순서는 이렇습니다.


(1) 제로페이 참여 사업자의 결제 앱 설치

-스마트폰에서 다음의 앱이 있으면 그대로 사용 가능(설치 후 결제계좌 등록)

-제로페이 참여 사업자 결제 앱 : 뱅크페이, 투유뱅크, 리브, I-ONE 뱅크, NH앱캐시, im뱅크, 썸뱅크, 수협파트너뱅크, 신한 쏠(SOL), 우리은행 원터치, 케이뱅크, 네이버, 페이코, 하나멤버스, 머니트리

-그 이후 판매자에게 제로페이 결제의사 표시

(2) 가맹점 제로페이 QR코드 촬영

-간편결제 앱에서 QR코드 인식을 선택하면 가맹점에 비치된 제로페이 QR코드를 촬영하시면 됩니다.

(3) 결제 금액 및 비밀번호 입력확인

-그 이후 판매자 입금확인 시 결제 완료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장 상점들을 돌아다닐 때마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습니다. 이를 통해 '제로페이는 이렇게 쓰는 것이다'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어느 상점에서 먹을거리를 구입할 때 상인분에게 제로페이로 결제한다고 알렸습니다.



그 이후 상점 앞에 비치된 제로페이 QR코드에 스마트폰으로 QR코드 촬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스마트폰의 경우 제로페이 결제되는 앱을 활용해야 합니다. 알고보니 촬영만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판매자 분이 제로페이 입금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 절차를 마치면 결제가 정상적으로 끝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번에는 떡집을 찾아 떡을 골랐습니다.



제로페이로 결제하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가맹점 QR코드를 촬영했습니다.



야채 가게에 놓여진 제로페이 QR코드 모습.



박원순 서울시장은 야채를 제로페이로 결제하여 구입했습니다. 결제 이후에는 상인 분이 입금확인하는 절차를 거쳤습니다. 지갑에 있는 돈으로 계산을 하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간편결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제로페이로 결제하며 제로페이를 알리셨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우림시장에서 제로페이 시연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통시장도 제로페이 결제가 편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우림시장에서는 총 126개 점포 중에 105개 점포가 제로페이 가맹점으로 가입했습니다. 그 중에 92개 점포는 가맹점주용 앱이 설치되었으며 제로페이 결제 가능합니다.(2019년 3월 12일 기준) 전통시장에서 제로페이 결제가 활성화된다면 보다 많은 서울 시민이 제로페이를 활발히 이용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전통시장은 다양한 세대가 방문하는 곳이니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우림시장 제로페이 시연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입니다.


*[카드뉴스] 제로페이 서울 꿀팁 : 바로 가기


제로페이는 QR코드를 활용한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입니다. 소상공인은 결제수수료 0%대(가맹점 연매출 8억 원 이하는 0%), 소비자는 소득공제 40%(신용카드 15%, 체크카드 30%) 및 공공시설 이용 시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소상공인과 소비자에게 유용한 제로페이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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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경희궁 옆에 있으며 인근에 덕수궁, 경복궁, 광화문 등에 이르기까지 서울 문화와 역사의 상징적인 장소와 가까이 위치했습니다. 자녀, 가족 또는 연인과 함께 서울의 매력을 만끽하고 싶을 때 인근에 있는 고궁을 들리면서 서울역사박물관을 찾으면 더욱 좋을 듯합니다.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외국인과 함께하면 더 좋고요. 최근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뜻깊은 특별전이 펼쳐지는 중입니다. 3.1운동을 테마로 하는 전시회입니다.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A에서는 지난 3월 1일부터 5월 26일까지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맞이하여 '서울과 평양의 3.1운동'이라는 전시회를 진행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9년 3.1운동의 배경 및 서울과 평양의 전개 과정이 소개됐습니다. 3.1운동에 대하여 학교에서 교과서로 접했던 것보다 더 자세하게 전시됐습니다. 다른 이야기로 전환하면, 최근에는 3.1운동 및 유관순 열사를 다루어낸 고아성 주연의 '항거:유관순 이야기'라는 영화가 개봉중입니다. 그 영화가 3월 1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면서 대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영화 뿐만 아니라 서울역사박물관 서울과 평양의 3.1운동 전시회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에게 3.1운동이 리마인드되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 같습니다.



서울과 평양의 3.1운동 특별전 전시개막은 행사 시작일 하루 전이었던 2월 28일에 펼쳐졌습니다. 3.1운동이 정확히 100년 전에 전개되었기 때문인지 2019년 3.1절 맞이하는 느낌이 이전과 다른 것 같습니다. 더욱이 이번 특별전은 평양까지 다루었습니다. 비록 남과 북이 갈라져있으나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과 북한의 관계가 호전된 분위기가 이번 전시회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100년 전 평양에서도 3.1운동이 전개되었으니 말입니다. 남과 북은 서로 다르나 100년 전 3.1운동을 통해 독립을 염원했던 그 마음은 똑같았습니다.



일제의 총칼에 맞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3.1운동은 한국의 독립 운동을 전개하며 비폭력으로 대응했습니다. 당시 한국을 식민 통치했던 일제의 잔혹함이 빚어낸 공포적인 분위기에 맞서 비폭력으로 만세 운동을 외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이 독립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상당한 노력과 희생, 피, 땀, 눈물이 있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전시개막식이 끝난 뒤에는 특별전에 선보인 자료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1910년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강제병합되면서 경복궁 근정전에 일장기가 걸리는 치욕을 겪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경복궁 근정전은 일본인 포함한 수많은 국가의 관광객이 찾는 한국의 대표적인 여행 명소로 꼽히는데 109년 전에는 아니었습니다. 현재와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한국 역사에 남을 최악의 굴욕을 당했습니다.



유튜브에서 일본인 혐한 관련 영상을 보면 전반적으로 조회 수가 높은 편입니다. 한국인 유튜버가 일본에서 혐한을 당하는 영상들 말입니다. 일본은 한국인들이 주로 찾는 대표적인 여행지로 손꼽히나 정작 일본에는 혐한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디어에 한국 관련 부정적 보도를 끊임없이 내보낼 뿐만 아니라 그 외 여러 이유 등에 이르기까지 혐한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불편합니다.(미디어의 한국 관련 부정적인 보도와 관련하여, 얼마 전 초계기 사건을 보면서 그 목적이 뻔하게 보이더군요.)


지금의 한국은 100여 년전과 달리 경제 및 문화 분야 등에 걸쳐서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나라가 되었으나 정작 일본이 한국 무시하는 분위기는 1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K-POP 등을 계기로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의 젊은 세대가 많은 것을 보면 유튜브,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의 존재감이 참 대단합니다.



1919년 3월 17일 발표된 대한국민의회 독립선언서를 보면 그 당시 한국이 일본에게 당했던 피해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서울과 평양의 3.1운동 전시 안내문은 4개 언어(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표기됐습니다. 특히 일본어로 표기된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A를 찾는 일본인들에게 전시 목적 및 3.1운동이 무엇인지 알리는 문구가 있습니다.



3.1운동 기획 과정이 소개됐습니다.



신한청년 창간호,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독립청원서가 전시됐습니다.



각 종교 및 학생들의 3.1운동 준비과정이 소개됐습니다.



평양의 3.1운동 준비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평양도 서울처럼 3.1운동이 적극적으로 펼쳐진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립선언서(최남선 기초, 민족대표 33인 작성) 인쇄 및 배부 과정을 보면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독립선언서가 발각될 뻔한 적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일부에서 기밀이 잘 유지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쇄하는 환경 또한 열악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21,000매 인쇄했던 것을 보면 독립을 염원하는 그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열망이 느껴졌습니다.



독립통지서는 해외에도 전달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전달하셨던 분들 중에 체포된 분들이 있었습니다.



독립선언 및 만세운동 전개 과정이 언급됐습니다.



1919년경 태극기 모습이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됐습니다.



이번 특별전이 더욱 특별한 것은 평양의 3.1운동 과정이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알려졌다는 점입니다.



1919년 3.1운동은 전국적인 만세 운동이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서울에 뿌려진 격문은 정말 다양했네요. 격문은 일제 뿐만 아니라 만세 운동 불참했던 사람들에게 경고하여 만세 운동에 참여해달라는 취지에서 작성됐습니다. 그 격문이 여러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한국의 3.1운동 참여 열기는 해외에도 전파됐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펼쳐지는 서울과 평양의 3.1운동 특별전을 통해서 3.1운동이 한국의 독립운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3.1운동이 1919년에 벌어졌다면 한국이 독립했던 해는 1945년입니다. 독립을 이루어내는 과정이 참으로 쉽지 않았음을 느끼며 1919년 3월 1일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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