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탱크' 박지성(3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은 더 이상 골이 부족한 윙어가 아닙니다. 올 시즌 공격 포인트를 봐도 알 수 있죠. 그의 공격력이 달라졌음을, 미들라이커로 진화했음을 입증했습니다.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전을 앞두고 자신과 함께 선발 출전 경쟁 관계인 루이스 나니보다 공격력이 강했습니다.
박지성은 23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진행된 2010/11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8라운드 최종전 블랙풀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했습니다. 전반 20분 문전 쇄도 과정에서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왼쪽에서 찔러준 패스를 받아 상대 수비수를 제치고 왼발 슈팅을 날리며 선제골을 넣었습니다. 팀이 1-2로 밀렸던 후반 17분에는 왼쪽 측면에서 왼발로 길게 횡패스를 연결한 것이 안데르손의 골로 이어져 도움을 추가했습니다. 맨유는 후반 29분 이안 에바트 자책골, 후반 36분 마이클 오언의 추가골에 힘입어 4-2로 승리했으며 리그 우승을 굳혔습니다. 반면 블랙풀은 리그 19위로 강등됐습니다.
이로써 박지성은 올 시즌 8골 6도움을 기록하며 한국인 선수의 프리미어리그 최다 공격 포인트(14포인트)를 달성했습니다. 경기 종료 후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평상시처럼 적절했다(Decent as usual)'는 평가와 함께 팀내 최고점인 7점을 부여 받았습니다. 오는 29일 오전 3시 45분에는 웸블리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바르사전 맹활약 및 맨유의 유럽 제패에 도전합니다.
박지성, 바르사전 선발 출전 예약했다...남은 것은 바르사전 맹활약
박지성은 블랙풀전에서 베르바토프-나니와 함께 4-3-3의 스리톱을 맡았습니다. 안데르손-스콜스-플래처로 짜인 미드필더들의 공격 지원을 받으며 블랙풀 진영을 공략했죠. 맨유가 리그 우승을 결정지었던 지난 14일 블랙번전에서 18인 엔트리에 제외되어 실전 감각이 떨어졌던 리스크를 보완하기 위해 이번 경기에 출전했습니다. 블랙번전의 경우에는 9일 첼시전에서 경기 내내 그라운드를 종횡무진했던 체력 여파 때문에 선수 보호 차원에서 결장했죠. 블랙풀전은 실전 감각을 회복하는 단계였고, 1골 1도움을 완성했던 후반 18분에 교체 됐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의 에너지를 비축하며 바르사전을 염두했습니다.
그런 박지성이 나니와 함께 측면 공격을 책임진 것은 단순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나니와 바르사전 선발 출전을 다투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나니와 함께 윙 포워드로 출전한 것은 퍼거슨 감독이 두 선수의 공격력을 비교하겠다는 심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맨유는 이미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기 때문에 블랙풀전에서 바르사전을 겨냥한 일종의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죠. 루니-에르난데스 투톱이 완성되었고 긱스가 중앙에서 자리를 굳힌 현 상황에서는 박지성-발렌시아-나니는 동반 선발 출전할 수 없습니다. 그 중에서 발렌시아는 발목 부상 복귀 이후 공수 양면에서 너른 활약을 펼치며 나니를 왼쪽 윙어로 좌천 보냈습니다.
그런데 나니는 오른쪽에 있을때에 비해 왼쪽 공격력이 떨어졌습니다. 오른쪽에서 즐겨 구사했던 크로스 타이밍을 왼쪽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경기에 출전했던 과부하까지 겹치면서 시즌 막판에 고전했고 그 여파는 블랙풀전까지 계속 됐습니다. 이번 경기에서는 다시 오른쪽으로 복귀했으나 공격의 실마리를 풀거나 박스쪽으로 과감히 쇄도하는 동작의 완성도가 떨어졌습니다. 바르사전 선발 출전을 맡기기에는 최근의 폼이 안좋습니다.
[사진=블랙풀전 4-2 승리를 발표한 맨유 홈페이지. 박지성이 베르바토프와 함께 골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C) manutd.com]
반면 박지성은 달랐습니다. 전반 20분 상대 진영 정면으로 쇄도하면서 베르바토프의 왼쪽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넣는 집념이 맨유의 대량 득점 포문을 열게 했습니다. 상대 수비수를 제친 상태에서 블랙풀 골키퍼 길크스가 자신의 앞을 가로 막았지만 신체의 무게 중심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왼발로 길크스의 키를 넘기는 슈팅을 날리며 골을 터뜨렸죠. 상대 골망을 흔들려는 마음을 굳게 가졌기에 가능했습니다. 이 장면을 봐도 산소탱크 공격력이 얼마만큼 강해졌는지를 알 수 있죠. 지금까지는 이타적인 플레이에 주력하면서 외부의 과소 평가를 받았던 경향이 없지 않았지만 올 시즌에는 이기적인 면모를 발휘할 타이밍을 제대로 읽었습니다. 베르바토프가 왼쪽에서 볼을 잡을때 문전쪽으로 침투하는 장면이 대표적이죠. 경기를 넓게 보는 시야, 판단력이 좋아졌습니다.
박지성의 공격력 업그레이드는 블랙풀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주어진 골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과감함과 집요함이 8골을 작렬했던 원동력이 됐습니다. 왼쪽 측면에서 상대 진영 중앙쪽으로 이동해서 골을 엮어내는 움직임까지 부쩍 좋아졌죠. 후반 17분 안데르손 동점골 상황에서는 왼발 횡패스로 도움을 기록했습니다. 단순히 골 욕심을 부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료 선수의 골 기회를 도와주면서 공격 패턴이 다양해졌다는 평가입니다. 맨유와 상대하는 팀들이 박지성 봉쇄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입니다. 만약 아시안컵이 없었다면 박지성은 더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을지 모르죠.
블랙풀전 및 최근의 공격력을 놓고 보면 박지성이 나니보다 더 우세합니다. 이 경기에서 별 다른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던 나니보다는 박지성이 바르사전 선발 출전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나니는 올 시즌 10골 18도움을 기록했으며(각종 대회 포함) 특히 리그에서는 도움 1위를 올렸습니다. 루니-에르난데스 투톱이 공격진의 대세로 떠오르기 전까지는 나니의 존재감 및 활약상이 맨유의 공격력을 좌우했습니다. 햐지만 지금의 공격력은 이미 앞에서 언급했지만 맥이 풀렸습니다. 자신의 약점으로 거론되었던 수비력 약점을 보완하는데 실패했고 특히 샬케04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는 우치다에게 뒷 공간을 내주는 허술함을 일관했습니다. 반면 박지성은 부상 복귀 이후에도 물 오른 경기력을 발휘하며 주전을 되찾았습니다.
박지성의 1골 1도움이 의미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맨유의 다음 경기가 바르사전 입니다.(25일 유벤투스전은 친선전이므로 논외) 맨유는 바르사의 파상공세를 막기 위해서 선 수비-후 역습으로 맞설 것입니다. 루니-에르난데스 투톱이 공격 작업에 어려움을 겪으면 윙어가 차선책이 되어야 합니다. 윙어는 수비에 적극 가담하면서 역습때는 과감한 침투를 시도하며 골을 엮어내는 것이 중요하죠. 박지성이 그 역할에 어울리는 적임자입니다. 블랙풀전 1골 1도움은 바르사 격파의 자신감으로 이어지면서 맨유의 우승을 기여하는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나니의 부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죠.
이제 박지성에게 남은 것은 바르사전 맹활약입니다. 올 시즌 8골 6도움을 기록하며 미들라이커로 도약했던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이 챔피언스리그 파이널 무대에서 아름답게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말입니다. 2007/08시즌 결승 첼시전에서는 골 결정력 부족을 이유로 18인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2008/09시즌 결승 바르사전에서는 선발 출전을 이루었으나 이렇다할 임펙트를 발휘하지 못한채 맨유의 우승을 이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결승 선발 출전-맹활약-우승의 목표를 모두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첫번째 목표인 선발 출전 고지는 거의 올라갔을지 모릅니다. 블랙풀전에서 나니를 압도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