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내내 경질설에 휩싸였던 카를로 안첼로티 첼시 감독이 끝내 해고 당했습니다. 첼시에게 경질 통보를 받으면서 올 시즌을 끝으로 물러나게 됐습니다. 첼시는 23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간) 2010/11시즌 프리미어리그 최종전이었던 에버턴 원정에서 0-1로 패한 뒤,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안첼로티 감독의 경질을 공식 발표 했습니다. 올 시즌 팀 성적이 좋지 못했다는 것이 첼시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밝힌 퇴출 사유 입니다.
첼시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2위,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탈락, 칼링컵 및 FA컵 32강 탈락이라는 무관에 그쳤습니다. 지난 시즌 잉글리시 더블(프리미어리그-FA컵) 우승을 달성했던 행보와 다릅니다. 그때는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떨어졌지만 적어도 프리미어리그 우승은 안첼로티 감독이 올 시즌까지 첼시에서 감독직을 보장받는 명분으로 작용했습니다. 당시 16강에서 탈락했을때도 경질설이 나돌았었죠. 하지만 올 시즌에는 우승컵이 없었습니다. 특히 프리미어리그-챔피언스리그에서는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아성을 넘지 못했죠. '퍼거슨 킬러'였던 안첼로티 감독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진=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경질을 공식 발표한 첼시 공식 홈페이지 (C) chelseafc.com]
물론 안첼로티 감독의 경질은 부당한 측면이 강합니다. 선수 영입 권한이 없기 때문이죠. 대표적으로, 첼시가 지난 1월 5000만 파운드(약 881억원)에 영입했던 페르난도 토레스는 자신이 원했던 공격수가 아닙니다. 지난해 여름 스탬포드 브릿지에 입성했던 하미레스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처럼 팀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기보다는 로만 아브라모비치 입김을 수용해야 할 처지였습니다. '스페셜 원' 조세 무리뉴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 첼시 사령탑 시절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와 갈등을 빚은 끝에 팀을 떠났던 배경과 밀접하죠. 첼시는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팀이라는 근본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이죠.
안첼로티 감독의 경질은 첼시에게 안좋은 전례가 됐습니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팀을 인수했던 지난 2003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8년 동안 첼시에 몸담았던 감독이 총 6명(라니에리-무리뉴-그랜트-스콜라리-히딩크-안첼로티 감독) 입니다. 3개월 임시직이었던 히딩크 감독을 제외한 5명의 감독은 첼시에서의 마지막이 씁쓸했죠.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부임 이후에 감독 경질이 잦아졌습니다. 다음 시즌부터는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와 함께할 7번째 감독을 맞이합니다. 누군가 '독이 든 성배'를 마셔야 하는 상황이죠. 안첼로티 감독의 후임도 다른 지도자들처럼 첼시에서 오랜 감독 기간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첼시 스스로 자초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안첼로티 감독의 경질은 당연한 절차 였습니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원하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지 못했습니다. 두 시즌 동안 첼시 사령탑을 맡았으나 지난 시즌은 16강, 올 시즌은 8강에서 떨어졌죠. 전임 사령탑이었던 히딩크 감독이 4강까지 진출시켰던 성적보다 부족합니다. 그랜트 감독이 2007/08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 맨유전 승부차기 패배 이후 경질 당했던 것 처럼, 안첼로티 감독도 유럽 제패 실패에 따른 책임에서 피할 수 없었죠. 기업에서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당사자가 문책을 받거나 또는 그 이상의 불이익을 감수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첼시에서 감독에게 강조하는 것은 '성과' 였습니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시브네프티 회장을 맡고 있는 러시아 석유재벌 입니다. 시브니프티를 러시아 굴지의 석유회사로 키웠다는 점에서 첼시를 또 하나의 기업으로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실패했을 때 감독 경질을 단행했던 것 처럼 말입니다. 기업에서 목표 달성을 추구하듯,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와 첼시의 목표는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었습니다. 이미 잉글랜드 내에서는 맨유와 함께 매 시즌마다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다투는 양강 구도로 발전했죠.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목이 마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안첼로티 감독은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에게 우승을 안겨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첼시 성과주의의 희생양 이었죠.
그렇다고 안첼로티 감독이 무능한 것은 아닙니다. 전 소속팀인 AC밀란에서 두 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이탈리아 출신의 명장입니다. 지난 시즌 첼시에서는 잉글리시 더블의 기쁨을 누렸죠. 단지 올 시즌 우승컵이 없었을 뿐입니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와 갈라섰던 무리뉴 감독의 지도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 처럼 말입니다.
첼시의 올 시즌 문제점을 안첼로티 감독 한 명에게 탓할 수는 없습니다. 시즌 전반기까지 스쿼드 노령화 및 엷은 선수층에 의해 선수들의 체력 저하가 필연적으로 찾아왔고, 지난 여름에는 조 콜-발라크-벨레티-데쿠-카르발류와 작별했으나 영입한 선수는 하미레스-베나윤 뿐입니다.(네임벨류 기준) 두 가지 문제는 시즌 중반 성적 부진으로 직결됐습니다. 그 외에는 디디에 드록바의 말라리아 감염 후유증, 말루다-에시엔-미켈-페레이라 부진이 있었습니다. 리빌딩 및 균형잡힌 스쿼드 유지에 안이했던 보드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선수 영입 권한이 없는 안첼로티 감독과는 별개의 사안이었죠. 그럼에도 무관의 책임을 지고 말았습니다.
안첼로티 감독은 지난 9일 맨유전(프리미어리그 36라운드) 이전까지 프리미어리그에서 10경기 연속 무패(8승2무)를 달렸습니다. 4~5위를 맴돌았던 첼시의 성적이 2위로 껑충 뛰면서 맨유의 선두 자리를 위협했죠. 끝내 맨유에게 1-2로 패했지만, 안첼로티 감독은 10경기 연속 무패에 힘입어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에 의해 3월, 4월의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영입을 원하지 않았던' 토레스가 끝 없는 부진에 시달렸던 것을 감수하면서 말입니다. 지도자 개인으로서의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질됐죠. 첼시와의 작별이 석연치 않은 이유입니다.
다음 시즌 첼시의 사령탑을 맡을 지도자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누가 블루스를 지휘하든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원하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어야 합니다. 첼시 감독 기간을 연장하는 방법은 유럽 제패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프리미어리그에서도 No.1이 되지 못하면 경질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과연 누가 독이 든 성배를 들지 앞으로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