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가 지난해 여름 '스페셜 원' 조세 무리뉴 감독을 영입한 이유는 '유럽 챔피언'에 등극하기 위해서 입니다. 무리뉴 감독은 2003/04시즌과 2009/10시즌에 각각 FC 포르투, 인터 밀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0년대 중반에는 첼시에서 3년 2개월 동안 6번의 우승을 지휘하는 승승장구를 거듭했습니다. 2008/09시즌 및 2009/10시즌 무관에 그쳤던 레알 입장에서는 무리뉴 감독 영입의 필요성을 절감했죠.
하지만 무리뉴 감독은 레알이 바라던 목표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라이벌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 1~2차전에서 통합 스코어 1-3으로 무너졌습니다. 특히 1차전에서는 페페 퇴장에 거칠게 항의하여 퇴장당한끝에 2차전에서 벤치를 앉지 못했습니다. 페페-라모스 결장까지 겹친 레알 선수단은 원정 2차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두었지만 1차전 0-2 패배를 만회하는데 실패했습니다. 후반 18분 마르셀루 동점골을 제외하면 상대 박스쪽에서 깔끔한 연계 플레이를 펼치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마르셀루 골 이후에는 선수들의 체력이 고갈되었죠. 무리뉴 감독의 존재감이 아쉬웠던 2차전 이었습니다.
[사진=조세 무리뉴 감독 (C) 레알 마드리드 공식 홈페이지(realmadrid.com)]
한 가지 주목할 것은, 현지 언론에서 무리뉴 감독의 경질설을 제기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레알이 지난 22년 동안 24번의 감독 교체를 단행했던 이력, 지난 시즌 유럽 제패를 이루지 못한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현 말라가)을 경질했던 전례를 미루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적 부진에 빠지면 늘 좌불안석에 시달렸던 존재는 다름 아닌 감독 이었습니다. 어쩌면 레알이 무리뉴 감독을 경질할 수 있죠. 그런 레알이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 실패하면서 무리뉴 감독의 거취가 세계 축구계의 새로운 이슈로 떠오를 조짐입니다.
또한 레알은 2006/07시즌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이끌었던 파비오 카펠로 감독(현 잉글랜드 대표팀)을 경질했던 팀 입니다. 카펠로 감독은 수비에 중심을 두는 안정적인 색깔을 추구했지만 '닥공(닥치고 공격)'을 원했던 레알과의 전술적 괴리감에 시달렸습니다. 팀의 우승을 이끌었으나 경질되는 씁쓸한 행보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무리뉴 감독은 바르사전에서 수비 축구를 펼쳤습니다. 벤치에 앉지 못했던 2차전은 간헐적으로 공격 위주의 움직임을 시도했지만 전체적으로 수비에 많은 비중을 두었죠. 결과적으로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서 명분과 실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수비 축구는 카펠로 감독과 더불어 경질의 빌미로 작용할지 모릅니다.
무리뉴 감독은 스페인 국왕컵 결승에서 바르사를 제압하고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레알의 두 시즌 무관을 끝내는 의미심장한 쾌거였습니다. 그럼에도 스페인 국왕컵보다 더 중요한 대회는 챔피언스리그 입니다. 물론 레알은 지난 시즌까지 챔피언스리그 6시즌 연속 16강에서 탈락했던 징크스에 시달렸습니다.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팀(9회)의 불명예 기록이죠. 그 잔혹사를 끝낸 주인공은 무리뉴 감독 이었습니다. 레알이 올 시즌 토너먼트에서 16강 리옹-8강 토트넘을 넘으며 4강에 발돋움하도록 팀을 조련했죠. 하지만 레알은 무리뉴 감독에게 우승 실패의 책임을 묻게될 지 모릅니다. 그를 영입한 이유는 유럽 제패를 위해서 였습니다.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이 그를 변함없이 신뢰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지 언론에서는 경질설을 제기할지 모를 일이죠.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무리뉴 감독을 대신해서 레알 사령탑을 맡을 적임자가 마땅하지 않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호셉 과르디올라 바르사 감독을 논외하면 지난 몇 시즌 동안 소속팀에 많은 우승을 안겨줬던 대표적인 지도자는 무리뉴 감독 입니다. 최근에는 카를로 안첼로티 첼시 감독이 레알 사령탑 후보로 물망에 올랐지만, 그 배경에는 첼시에서의 입지가 불안한 것이 결정타로 작용합니다. 안첼로티 감독도 무리뉴 감독처럼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지 못했죠. 만약 레알이 무리뉴 감독을 경질하면 세계 최정상급 지도자를 스스로 포기하는 악수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무리뉴 감독의 올 시즌이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소기의 성과와 함께 내실이 탄탄하게 됐습니다. 스페인 국왕컵 우승 및 챔피언스리그 16강 징크스 극복을 쉬운 예로 들 수 있죠. 자신의 레알 사령탑 취임과 더불어 선수들에게 우승이라는 동기 부여를 심어줬고, 지난 시즌 출범했던 갈락티코 2기가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습니다. 적어도 지난 시즌보다는 선수들이 똘똘 뭉치면서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가 굳셌습니다. 스페인 국왕컵 우승 및 16강 2차전 리옹전 승리 과정이 그 예 입니다. 무리뉴 체제에서 긍정적으로 달라진 선수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골 욕심이 강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이타적인 면모를 다시 되찾았고, 마르셀루-벤제마는 각성했고, 엠마뉘엘 아데바요르까지 갱생의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무리뉴 체제는 아직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중앙을 담당하는 플레이메이커 효과의 지속성이 떨어졌죠. 무리뉴 감독은 FC 포르투-첼시-인터 밀란에서 오름세를 달렸을 때 데쿠-램퍼드-스네이더르 공격력에 중점을 두는 전술로 재미를 봤습니다. 하지만 레알에서는 메수트 외질의 기복이 심했고, 카카는 부상으로 결장했던 시간이 매우 길었습니다. 특히 바르사와 경기할 때는 공격의 무게 중심이 측면쪽으로 쏠리는 단조로움을 나타냈습니다. 호날두가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바르사전 0-2 패배 이후 무리뉴 감독 전술에 불만을 품은 이유와 밀접하죠. 무리뉴 감독이 선호하는 선 수비-후 역습에서 플레이메이커는 빠른 종패스를 통해서 상대 골망을 흔드는 연결고리를 담당합니다. 그런데 레알에서는 외질의 꾸준함 부족이 걸림돌 이었습니다.
무리뉴 감독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 입니다. 지난해 11월 30일 바르사 원정 0-5 대패 및 챔피언스리그 4강 탈락에서 보듯, 자신의 수비 지향적인 전술이 완전히 정착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시즌 내내 수비 축구를 했던 것은 아닙니다. 바르사 공략을 위해 수비에 비중을 두었을 뿐, 적어도 시즌 초반과 중반에는 공격 축구로 팀을 이끌었습니다. 시즌 후반에는 낮은 레벨의 팀을 상대로 공격적인 경기를 펼쳤지만요.
전임 감독에 비하면 선수들의 응집력을 끌어올렸지만 그래도 아직은 부족합니다. 선수 영입 및 방출이 잦았던 레알, 유스 출신들을 위주로 확고한 정체성을 형성했던 바르사의 조직력 편차는 어쩔 수 없이 존재합니다. 무리뉴 감독은 두 팀 사이의 갭을 줄이며 레알의 내실을 더욱 튼튼히 다져야 할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페레스 회장을 비롯한 레알 수뇌부의 믿음이 전제되어야 무리뉴 감독의 지도력이 탄력을 얻습니다. 구단이 무리뉴 감독과 서로 협력하고 교감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죠.,
2009/10시즌 인터 밀란이 적절한 예 입니다. 마시모 모라티 회장은 2008/09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탈락했던 무리뉴 감독을 변함없이 신뢰했고, 그런 무리뉴 감독은 체질 개선 끝에 2009/10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유로피언 트레블 달성을 이끌었습니다. 인터 밀란도 레알 못지 않게 감독 교체가 잦은 클럽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죠. 그래서 레알은 무리뉴 감독을 믿으며 섣부른 경질을 실행해서는 안됩니다. 그의 경질은 시기상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