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등번호는 단순한 숫자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팀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등번호 계보로 이어질 수 있고, 해당 등번호를 달았던 선수들이 유독 고전을 면치 못하는 '저주'로 여겨지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다른 팀의 선수 등번호와 회자될 수 있죠. 분명한 것은, 축구팬들이 선수를 주목하는 눈의 초점은 외모-유니폼-플레이-팀 전술과 더불어 등번호를 봅니다. 선수를 파악하는 가장 손쉬운 존재가 등번호입니다.
'별들의 전쟁'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5월 4일, 5일)은 유럽 제패를 열망하는 축구 스타들의 치열한 각축전이 예상됩니다. 2차전이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의 분수령으로 작용하죠. 지난 1차전에서는 FC 바르셀로나-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각각 레알 마드리드-샬케 04 원정에서 모두 2-0으로 승리하여 결승 진출의 유리한 고지를 밟았습니다. 2차전을 무난하게 버티면 결승 진출을 자신할 수 있지만, 레알 마드리드-샬케 04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4강 2차전은 네 팀이 결승 문턱에서의 각축전을 놓고, 등번호 7번을 맡는 선수들의 활약상이 소속팀 희비를 엇갈리게 할 것으로 보입니다. 7번으로 뛰는 선수들의 공통점은 골 생산을 도맡는 공격수 혹은 윙어입니다. 원정 다득점이 적용되는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특성상, 7번 선수의 공격력이 팀의 결승행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팀 명은 포스팅 편의상 줄임말로 표기합니다.)
[사진 왼쪽 상단부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다비드 비야-마이클 오언-라울 곤잘레스 (C) 유럽축구연맹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uefa.com)]
1.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
현실적으로 레알의 결승 진출 가능성은 낮습니다. 홈에서 열렸던 지난 1차전에서 바르사에게 0-2로 무너지면서 원정 다득점이 불리합니다. 2차전 캄프 누 원정에서 최소 3-0 승리를 거둘지 의문입니다. 지난해 11월 30일 캄프 누 원정에서는 0-5로 대패했습니다. 더욱이 바르사는 이니에스타 복귀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1차전보다 화력이 좋아질 조짐입니다. 반면 레알은 페페-라모스-무리뉴 감독이 징계로 2차전에 출전할 수 없거나 벤치에 앉을 수 없습니다.
결국 레알은 호날두에 의지해야 합니다. 호날두가 골을 터뜨리느냐 또는 동료 선수의 골 기회를 얼마만큼 적극적으로 도와주느냐에 따라 레알의 2차전 공격력이 좌우 될 전망입니다. 2차전은 무실점&다득점 승리가 필요하며 호날두 공격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지난 1차전처럼 호날두를 원톱에 놓고 나머지 선수들이 후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수비 축구를 버릴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외질의 1차전 부진도 감안할 부분이죠. 벤제마-이과인-아데바요르 중에 한 명을 원틉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호날두의 측면 배치가 유력합니다. 특히 호날두는 지금까지 중앙보다는 측면에서 강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호날두는 레알의 에이스로서 올 시즌 49경기 42골 12도움(각종 대회 포함)을 올렸습니다. 레알의 득점을 책임지는 절대적인 존재이며, 바르사와 격돌했던 지난달 21일 스페인 국왕컵 결승전에서는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12도움 또한 의미가 있습니다. 골 생산을 비롯 팀 플레이에 의욕을 발휘하며 동료 선수들의 골을 도왔죠. 기존의 공격력이 다채로워지면서 상대 수비가 막기 힘든 존재로 거듭났습니다. 그런데 공격력 퀄리티가 좋아졌음에도 '바르사 에이스' 메시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지난 두 시즌 동안 메시에게 '세계 최고의 선수'를 내줬던 자존심을 회복하려면 결국 2차전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캄프 누에서 골을 터뜨린 경험이 없습니다.
2. 다비드 비야(FC 바르셀로나)
바르사는 레알과 맞붙는 2차전 전망이 여유롭습니다. 1차전 원정에서 소기의 성과(2-0 승)를 올렸고, 레알은 페페-라모스 결장 및 무리뉴 감독까지 없습니다. 또한 레알은 캄프 누에서 다득점에 올인할 태세지만, 바르사는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홈 경기에서 5경기 3실점의 짠물 수비를 자랑했습니다. 지난 1차전에서는 푸욜의 왼쪽 풀백, 마스체라노의 센터백 전환이 성공하면서 레알의 역습 의지를 무너뜨렸죠.
하지만 바르사의 2차전 고민은 왼쪽 윙 포워드 입니다. 비야의 폼이 좋지 않습니다. 시즌 중반까지 메시-페드로와 삼각 편대를 형성하며 막강한 공격력을 발휘했지만, 지난달 23일 오사수나전에서 골을 넣기 전까지 11경기 연속 무득점에 시달렸습니다. 지난해 7월 중순까지 스페인 대표팀 일원으로 남아공 월드컵을 치렀던 피로에 의해 시즌 후반에 체력이 고갈됐습니다. 최근 2개월 동안 13경기를 뛰었으나 단 2경기만 풀타임 출전했습니다. 지난달 30일 레알 소시에다드전은 결장했죠. 레알과의 2차전 출전을 위한 체력 안배로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비야가 골 넣는 역할에 주력하는 공격 옵션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왼쪽 측면 및 중앙쪽을 폭 넓게 움직이며 좁은 공간에서의 연계 플레이를 엮어내는 센스가 뛰어납니다. 볼 터치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죠. 상대 수비를 자신쪽으로 유인하면서 메시가 최전방에서 공격 기회를 잡는 전술적인 이득을 안겨줬습니다. 1차전에서 슈퍼 조커로 투입하여 메시 결승골 기회를 만들어줬던 아펠라이가 큰 경기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을 미루어보면, 비야의 선발 출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물론 2차전에서는 공격수로서 골이 필요하지만, 레알 소시에다드전 결장에 따른 휴식에 탄력받아 공격력 회복의 자신감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선발 출전을 보장받기 위해서 말입니다.
3. 라울 곤잘레스(샬케 04)
샬케는 홈에서 열렸던 1차전에서 0-2로 패했으며 골키퍼 노이어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맨유의 아우라에 압도 당했습니다. 다가오는 2차전 맨유 원정에서 대역전극을 연출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아무리 맨유가 지난 1일 아스널전에서 체력 저하에 시달린 끝에 0-1로 패했지만, 샬케와의 1차전 경기력을 놓고 보면 엄연히 레벨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라울에게 쉽지 않은 올드 트래포드 원정입니다.
라울은 친정팀 레알 소속으로서 맨유전 3경기 4골을 기록했던 선수입니다. 1999/00시즌 8강 2차전 2골, 2002/03시즌 8강 1차전 2골을 올렸죠. 하지만 당시의 레알이 챔피언스리그에 강했다면 지금의 샬케는 챔피언스리그 4강 경험이 올 시즌 처음입니다. 라울이 최전방에서 혼자 부지런히 뛰더라도 팀원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좋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1차전에서는 샬케가 경기 내내 수비 불안에 시달리면서 라울-에두 투톱이 최전방에서 볼을 잡을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라울이 맨유에 강했지만 샬케 전력이 뒷받침하지 못하면 결승 진출이 어렵죠.
그런 라울이 다음 시즌 샬케에 잔류한다는 전제에서는(2012년 여름까지 계약), 맨유와의 4강 2차전은 '당분간' 혹은 '마지막'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될지 모릅니다. 샬케는 올 시즌 분데스리가 10위(32라운드 진행중)에 머무르며 사실상 다음 시즌 유럽 대항전에 출전할 수 없습니다. 또한 샬케는 맨유와의 객관적인 전력에서 밀립니다. 결국, 라울의 '한 방'에 기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라울은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11경기 5골을 기록했으며 역대 챔피언스리그 본선 최다골(71골)까지 경신했습니다. 유럽 공격수들 중에서 오랫동안 유럽 대항전에 강한 면모를 발휘했던 선수였죠. 만약 샬케에 남는다면 맨유 원정은 '챔피언스리그 마지막 경기'라는 절박함을 가지고 경기에 임해야 합니다. 흥미로운 스토리를 기대하는 관점에서는, 라울의 마법같은 골 감각이 자못 흥미롭습니다.
4. 마이클 오언(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오언도 라울과 더불어 4강 2차전에서 절박함을 안고 경기에 나섭니다. 올 시즌을 끝으로 맨유와 계약이 종료됩니다. 지난 두 시즌 동안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꾸준함이 결여된 행보를 나타냈죠. 냉정히 말하면, 맨유가 자랑했던 7번 계보는 오언에서 끊겼습니다. 만약 오언이 맨유를 떠나면 이번 경기가 자신의 챔피언스리그 마지막 경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결승전 출전을 장담할 수 없는 현 상황에서는) 퍼거슨 감독에게 베르바토프와 더불어 2차전 선발 출전을 예고 받으면서 그동안의 아쉬움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를 얻었죠.
그런 오언의 선발 출전 가능성은 어느 정도 무게감이 실렸습니다. 루니-에르난데스 투톱이 최근에 많은 경기를 소화했으며, 맨유 입장에서는 샬케와의 2차전보다는 9일 첼시전이 더 중요합니다. 지난 샬케 원정에서 2-0으로 이겼기 때문에 2차전에 대한 마음이 여유로우며 9일 첼시전은 실질적으로 프리미어리그 결승전이나 다름 없습니다. 맨유 입장에서는 루니-에르난데스 투톱을 첼시전에 기용하고, 두 선수의 백업인 베르바토프-오언을 샬케전에 선발로 투입하는 로테이션을 활용할 수 있죠. 샬케전에서는 베르바토프가 쉐도우로서 공격을 조율하고 오언이 박스쪽에서 종방향으로 상대 수비와 맞서는 형태의 공격 패턴이 예상됩니다.
공교롭게도 오언은 독일과 좋은 인연이 있습니다. 2001년 A매치 독일 원정 해트트릭, 2008/09시즌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 본선 볼프스부르크(독일 클럽) 원정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했습니다. 독일에 강한 자신감과 맞물려, 샬케는 1차전에서 수비 조직력 불안에 시달리며 어려운 경기를 펼쳤습니다. 노이어 선방이 없었다면 맨유가 대량 득점으로 이겼을지 모르죠. 오언은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드는 공격력을 선호하며 2차전에서는 적어도 골 기회가 찾아올 것임에 분명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 골망을 흔드는 것이 그의 임무이자 '맨유 7번'의 숙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