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라이벌 아스널 원정에서 불의의 패배를 당했습니다. 최근 아스널에 강한 전적을 자랑했지만 여러가지 불안 요소가 맞물리면서 승점 획득에 실패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거의 굳히는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습니다.
맨유는 1일 저녁 10시 5분(이하 한국시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2010/11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5라운드 아스널전에서 0-1로 패했습니다. 애런 램지가 후반 11분 맨유 박스 정면에서 로빈 판 페르시가 찔러준 오른쪽 패스를 이어받아 자신의 오른발로 맨유 골망을 흔들며 아스널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맨유의 최근 7번 연속 아스널전 무패(6승1무), 아스널이 최근 리그 7경기에서 1승5무1패로 부진했던 흐름이 모두 끝나는 순간 이었습니다.
이로써, 맨유는 리그 1위(21승10무4패, 승점 73)를 지켰지만 2위 첼시(21승7무7패, 승점 70)와의 승점 차이가 3점으로 좁혀졌습니다. 오는 9일 오전 0시 10분 첼시전에서 이겨야 우승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아스널은 리그 3위(19승10무6패, 승점 67)를 유지했습니다. 박지성은 아스널전에서 풀타임 출전했으나 경기 종료 후 <스카이스포츠(5점)><골닷컴 영문판(5.5점)>에 의해 최저 평점을 부여 받았습니다. 후반 11분 하프라인 부근에서 램지의 움직임을 놓쳤던 수비 실수가 실점의 빌미로 작용했습니다.
'최저 평점' 박지성 실수, 하지만 맨유의 결정적 패인은 따로 있다
맨유는 아스널전에서 4-4-2로 나섰습니다. 판 데르 사르가 골키퍼, 에브라-비디치-퍼디난드-파비우가 수비수, 박지성-안데르손-캐릭-나니가 미드필더, 루니-에르난데스가 공격수를 맡았습니다. 그동안 아스널전에서는 4-3-3을 즐겨 구사했지만 최근 루니-에르난데스 투톱이 완성되면서 스리톱을 포기했습니다. 수비시에는 루니가 쉐도우를 맡으면서 4-4-1-1로 변형됐죠. 아스널은 4-2-3-1로 맞섰습니다. 스체스니가 골키퍼, 클리시-코시엘니-주루-사냐가 수비수, 윌셔-송 빌롱이 더블 볼란치, 나스리-램지-월컷이 2선 미드필더, 판 페르시가 공격수로 출전했습니다. 파브레가스가 훈련 도중 부상을 당하면서 결장했던 공백을 램지가 메웠습니다.
우선, 박지성이 램지를 막지 못했던 실수는 맨유가 실점을 허용했던 1차적 원인이 됐습니다. 후반 9분 발렌시아 투입에 의해 중앙 미드필더로 전환했으나 너무 앞쪽에서 자리잡았던 위치 불안으로 램지가 맨유 진영쪽으로 접근하는 빈 공간을 내주고 말았죠. 캐릭과의 간격을 유지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지난해 9월말 볼턴전 교체 투입 이후 7~8개월만에 4-4-2의 중앙 미드필더를 맡으면서 중원 감각이 익숙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는 것과 다른 경우입니다. 전반전에는 공수 양면에서 분주했으나 후반 초반부터 경기 집중력이 떨어진 여파가 램지를 막지 못했던 또 하나의 원인으로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맨유의 아스널전 패배를 박지성 '실수만으로' 돌리는 것은 무리수입니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에게 중앙 미드필더를 맡겼던 이유는 안데르손 부진에서 비롯됐습니다. 안데르손이 중원에서 직선쪽으로 활동 폭을 넓히지 못한데다 패스 타이밍 조절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맨유가 아스널과의 허리 싸움에서 밀리는 문제점을 초래했습니다. 맨유는 아스널전에서 선 수비-후 역습을 활용했지만 중원 장악이 떨어지면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흔드는 역습의 임펙트가 떨어졌죠. 그래서 퍼거슨 감독이 후반 9분에 발렌시아를 투입하여 박지성을 중앙 미드필더로 세웠습니다. 박지성은 중원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기 이전에 램지를 놓쳤지만, 그 장면 또는 맨유 패배가 '박지성 탓'은 절대 아니라는 뜻이죠.
박지성 중앙 미드필더 전환은 맨유 중원의 취약함을 의미합니다. 후반 39분 오언 투입 이후에는(OUT 캐릭) 루니가 박지성과 함께 중앙 미드필더를 맡았을 정도로 말입니다. 스콜스-플래처는 각각 징계 및 부상으로 아스널전에 가용할 수 없었고, '38세' 긱스는 4일전 샬케 원정을 뛰면서 현실적으로 아스널전 선발 출전이 힘들었습니다. 캐릭은 혹사 모드였으며 안데르손의 기량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왼쪽 측면에서 사냐의 오버래핑을 차단하는데 주력했던 박지성을 중앙으로 이동시켰던 퍼거슨 감독의 작전은 완전히 적중하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 이었습니다. 박지성이 루니와 더불어 실점 이전까지 맨유의 공격수 및 미드필더들 중에서 제 구실을 했던 선수였기 때문이죠. 맨유의 아스널전 '결정적 패인'은 팀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사진=아스널전 패배를 발표한 맨유 공식 홈페이지 (C) manutd.com]
맨유는 지난달 2일 웨스트햄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4일에 한 번 간격으로 빠듯한 경기 일정을 치렀습니다. 선수들의 체력 저하가 불가피했죠. 4일전에는 샬케 원정을 위해 독일로 이동했고 이번에는 북런던에서 아스널전을 치르면서 체력이 고갈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팀 전체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죠. 반면 아스널은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었습니다. 지난 3월 중순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에 의해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탈락한 이후 프리미어리그 경기에만 전념했습니다. 최근 프리미어리그 7경기에서 1승5무1패로 부진했지만 맨유 선수들보다 컨디션이 좋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낮경기였기 때문에 맨유 선수들이 점점 힘에 부치면서 집중력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체력 저하는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했던 팀들의 똑같은 불안 요소였습니다. 맨유-샬케-바르사-레알 마드리드가 주말에 모두 다 패했죠. 맨유는 아스널에게 0-1, 샬케는 바이에른 뮌헨에게 1-4, 바르사는 레알 소시에다드에게 1-2, 레알 마드리드는 레알 사라고사에게 2-3으로 무너졌습니다. 맨유의 아스널전 패배의 근본적 원인이 체력임을 입증하는 꼴입니다. 그래서 경기 초반부터 수비 중심의 경기를 펼쳤지만 아스널 진영쪽으로 접근하는 움직임이 다소 무거웠습니다. 아스널 진영에서는 에르난데스에게 공이 잘 연결되지 못하면서, 박지성-루니-안데르손만 움직이는 느낌 이었습니다. 그런데 안데르손도 평소에 비해 적극성이 부족했죠. 에르난데스-나니-안데르손은 철저하게 부진했습니다.
맨유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조커 효과가 없었습니다. 후반 9분 안데르손을 대신해서 투입했던 발렌시아는 6개의 크로스를 모두 부정확하게 연결하며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했습니다. 그동안의 체력 저하로 몸이 방전된 결과입니다. 왼쪽 윙어로 전환했던 나니도 이렇다할 활약이 없었습니다. '좌 나니-우 발렌시아' 측면 조합의 영향력은 그동안 미미했던 문제점을 남겼는데 아스널전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후반 28분 출전했던 베르바토프(OUT 에르난데스)는 2008년 여름 맨유 이적 이후 아스널전에서 단 한 번도 골을 넣지 못했습니다. 강팀에 약한 징크스는 이번 경기에서 여전했죠. 후반 39분 모습을 드러낸 오언은 출전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앞에서 제기했던 중원 문제점을 보충하면, 맨유의 아스널전 패배는 중원에서 경기를 풀어갈 적임자가 없었습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첼시를 무너뜨렸던 긱스, '패스 메이커' 스콜스, 중원에서 여러 역할을 척척 소화하는 플래처가 각기 다른 이유로 결장했습니다. 캐릭이 아스널전에서 공수 밸런스를 맞춰줬다면 또 한 명의 미드필더는 맨유의 공격을 지휘하는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안데르손이 그 역할을 성실히 이행하지 못하면서 박지성이 대신 소화했습니다. 후반 막판에는 캐릭의 교체로 루니까지 중원에서 내려왔죠. 이러한 플레이메이커 부재는 루니-에르난데스 투톱의 위력이 반감되는 연쇄적 문제점으로 확대됐습니다. 파브레가스 공백을 최소화했던 아스널과 대조적이며, 모드리치(토트넘) 스네이더르(인터 밀란) 같은 플레이메이커들의 맨유 이적설이 또 다시 불거질 것 같은 예감입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의미있는 것은 박지성이 풀타임 출전했습니다. 현지 언론에 의해 최저 평점을 받았지만 퍼거슨 감독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램지 골 여부를 떠나, 자신의 역량을 퍼거슨 감독이 믿었음을 뜻하죠. 전반전에 사냐 봉쇄에 성공하면서 다른 아스널 선수가 소유했던 볼을 커팅하는 부지런함을 과시했고, 전반 18분과 38분에는 루니와의 2:1 패스-원터치 패스를 정확하게 연결하거나, 왼쪽 측면 및 중앙까지 넓게 움직였습니다. 후반 초반에 페이스가 떨어졌지만 그 이후에는 다시 회복하려는 의지가 역력했죠. 최저 평점을 피할 수 없었지만 경기 종료까지 맨유의 추격을 위해 그라운드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팀 전체의 부진 속에서 경기 내용이 뒷받침했기 때문이죠. 적어도 나니-발렌시아보다는 박지성의 폼이 더 나았던 아스널전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