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

'36세 MF' 맨유 스콜스의 미친 존재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시즌 초반이 되면 항상 '슬로우 스타터'라는 불안 요소에 시달리며 어려운 행보를 거듭했습니다. 주축 선수들이 전 시즌 빠듯한 경기 일정을 소화했기 때문에 컨디션 정상 회복이 쉽지 않았고 부상자도 있었습니다. 그 여파가 시즌 초반에 나타나면서 답답한 경기를 펼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습니다.

하지만 맨유는 지난 8일 첼시와의 커뮤니티 실드, 17일 뉴캐슬과의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을 통해 최상의 경기력을 과시하며 3골을 작렬했습니다. 첼시전에서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4연패를 저지당했던 울분을 풀으며 자존심 대결에서 승리했고, 뉴캐슬전에서는 상대 밀집수비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며 꾸준히 승점 3점을 얻을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2경기 연속 3골을 넣었던 화력을 놓고 보면 맨유팬들에게 올 시즌 고공행진을 기대하게 합니다.

그 중에서도 중앙 미드필더를 맡는 '생강왕자' 폴 스콜스(36)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첼시전에서는 발렌시아-에르난데스-베르바토프, 뉴캐슬전에서는 베르바토프-플래처-긱스가 골을 넣었지만, 그 선수들이 상대 골망을 흔드는데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했던 선수가 스콜스입니다. 스콜스는 첼시-뉴캐슬전을 통해 능수능란한 경기 조율, 짧은 패스와 롱패스를 가리지 않고 목표 지점으로 정확하게 향하는 경이적인 패싱력을 앞세워 상대의 허리를 장악하며 맨유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첼시전에서는 FA(잉글랜드 축구협회)로 부터 경기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고, 뉴캐슬전에서는 <스카이스포츠>로 부터 평점 10점 만점을 부여 받았습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스콜스의 올해 나이가 36세입니다. 한국 나이로 치면 37세로서 마흔을 앞둔 30대 후반입니다. 그 나이대에 있는 선수가 90분 동안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공을 차는 필드 플레이어로 활동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축구 선수의 평균적인 운동 신경이 평균적으로 20대 후반에 가장 높은데다 30대 중반이면 은퇴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임을 상기하면 스콜스가 현역 선수로서 맹활약을 펼치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것도 세계 최정상급 클럽인 맨유의 주전이자 팀 전력에 없어선 안 될 선수로 꼽히고 있어 36세의 나이가 믿겨지지 않습니다.

물론 스콜스는 지난 시즌 체력 저하에 따른 어려움으로 후반전이 되면 활동 폭이 점점 느려지는 문제점을 노출했습니다. 지난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바이에른 뮌헨 원정 역전패에서 드러난 것 처럼, 압박 능력이 저하되면서 상대 중앙 미드필더들의 빠른 패스 플레이를 차단하지 못했습니다. 몇몇 경기에서는 전반전에 비해 후반전에 폼이 떨어지면서 경기력이 주춤했죠.

하지만 축구 선수가 매 경기, 매 시즌마다 맹활약을 펼칠 수는 없습니다. 스콜스는 첼시-뉴캐슬전을 통해 젊은 선수들보다 임펙트가 넘치는 경기 조율과 패싱력을 뽐냈으며 그 세기가 제법 묵직했습니다. 과거에 비해 체력 및 활동 폭이 떨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장기 레이스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맨유에게 승리가 필요했던 첼시와의 커뮤니티 실드, 뉴캐슬과의 리그 개막전에서라면 스콜스의 '미친 존재감'이 팀에 필요합니다. 노장이 무게를 잡아줘야 젊은 선수들이 믿고 따라올 수 있기 때문에 큰 경기에 대한 부담감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스콜스의 나이를 놓고 보면 이미 은퇴를 하고 남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대교체를 단행중인 맨유로서는 스콜스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세대교체는 무조건 젊은 선수들이 많아야 하기 보다는, 노장이 그동안 실전에서 무수하게 쌓았던 노하우를 젊은 선수들에게 전수하고 후배들이 따라오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그래서 퍼거슨 감독은 36세의 스콜스를 비롯해서 40세 골키퍼 에드윈 판 데르 사르, 37세의 라이언 긱스, 35세의 게리 네빌을 팀 전력의 주축 선수로 활용하며 젊은 선수들의 분발을 키웠습니다.

첼시와의 커뮤니티 실드가 그랬습니다. 발렌시아-에르난데스-베르바토프가 골을 뽑았지만 맨유의 공격을 이끈것은 다름 아닌 스콜스 였습니다. 램퍼드-미켈-에시엔으로 짜인 첼시의 터프한 허리를 공략하기 위해 롱패스의 빈도를 높여 상대 박스 부근에서 결정적인 공격 기회를 마련하는 돌파구를 스스로 개척했죠. 특히 발렌시아에게 여러차례 롱패스를 밀어주며 오른쪽 공격 비율을 높이면서 첼시의 왼쪽 수비를 공략하는 밑거름 역할을 했습니다. 그동안 첼시에 약했던 발렌시아는 스콜스의 공격 지원을 받아 과감히 측면을 두드리며 애슐리 콜을 공략했고 그것에 자신감을 얻으며 선제골을 뽑았습니다.

발렌시아의 선제골 또한 스콜스의 패스가 시작점이 됐습니다. 하프라인 부근에 포진했던 스콜스는 전방 오른쪽으로 달려가던 웨인 루니에게 롱패스를 올렸고, 루니는 문전으로 쇄도하던 발렌시아에게 빠른 볼 배급에 의한 땅볼 크로스를 연결하며 선제골을 도왔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발렌시아가 포진한 오른쪽 뿐만 아니라 중앙과 왼쪽에도 빠른 타이밍에 의한 패스 공급을 하며 맨유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공격을 펼치게 됐습니다. 램퍼드-미켈-에시엔은 스콜스 봉쇄 작전은 커녕 공을 차단하는데 급급하며 좌우 공간을 움직이는데 에너지를 허비한 끝에 맨유와의 주도권싸움에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스콜스의 명불허전은 뉴캐슬전에서도 계속 됐습니다. 85개의 패스 중에 79개를 정확하게 연결하며 패스 정확도 92.9%를 기록했고 맨유선수들 중에서 가장 패스가 많았습니다. 상대가 밀집수비를 펼치는 바람에 종 방향으로 활동폭이 넓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36세의 나이가 믿겨지지 않는 부지런한 움직임을 기반으로 척척 패스를 연결하며 동료 선수들이 상대 수비 뒷 공간을 공략할 수 있는 밑거름 역할을 해냈습니다. 여기에 상대 미드필더들의 기를 죽이기 위해 거친 태클까지 불사를 정도로 공수 양면에 걸쳐 맹활약을 펼치는 열의를 다했습니다.

이러한 스콜스의 '미친 존재감'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및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리는 맨유에게 필요한 부분입니다. 스콜스가 예전처럼 거의 매 경기를 소화하기 힘들기 때문에 앞으로 장기 레이스를 치르면서 체력적인 어려움에 직면하는 것은 맨유의 고민거리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스콜스가 있어 든든한 이유는 커뮤니티 실드 같은 큰 경기에서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무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맨유가 로테이션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스콜스의 체력 부담을 줄여주면 올 시즌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것입니다.

스콜스는 지난 6월 말 "2010/11시즌이 되면 은퇴하겠다"고 밝혔지만 며칠 뒤 보류했습니다. 예전만큼 많은 경기를 뛸 수 있는 체력이 아니지만 큰 문제가 없다면 선수 생활을 더 연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패싱력 만큼은 여전히 세계 최정상급이며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독보적인 모습을 그려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수많은 실전 경험에서 다져진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중원을 지배하며 맨유 전력의 구심점을 지키는 중입니다. 체력이 문제가 아니라면 앞으로 더 많은 경기에서 섬세한 공격력을 쏟아낼 것임에 분명합니다. 스콜스와 함께하는 맨유라면 '영광의 시대'는 계속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