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올 시즌 화두는 프리미어리그 우승 탈환 및 '에이스' 웨인 루니입니다. 2009/10시즌이었던 지난 4월 4일 첼시전 이전까지 리그 1위를 달렸으나 루니의 발목 부상 공백을 뼈저리게 실감한 끝에 1-2로 패하고 2위로 내려 앉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루니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결국 첼시에게 리그 우승 트로피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올 시즌에는 루니의 맹활약에 힘입어 리그 No.1 자리를 되찾을지 주목됩니다.
문제는 루니가 자신의 대표적인 단점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롤러 코스터 모드' 입니다. 2008/09시즌까지의 루니는 몇 경기 동안 골을 몰아치는 맹활약을 펼치면 어느 순간에 득점포가 잠잠하는 깊은 침묵에 빠집니다. 그러다가 다시 골을 넣으며 전형적인 롤러 코스터 곡선을 그렸습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공존하던 시절에는 이타적인 역할에 치중했지만, 골 생산에 기복이 심한 기질 때문에 2007/08시즌과 2008/09시즌에 리그 12골에 그쳐 골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아르센 벵거 아스날 감독마저도 루니가 성장을 멈춘것이 아니냐고 지적할 정도였죠.
지난 시즌 및 최근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루니는 지난 3월 21일 리버풀전까지 리그 29경기에서 26골을 작렬하며 거의 1경기당 1골을 넣는 경이적인 골 생산을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3월 31일 바이에른 뮌헨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의 골을 끝으로 남아공 월드컵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상대 골망을 흔들지 못했습니다. 발목 부상 이후 지난 시즌 막판 3경기 및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했지만 컨디션 저하에 따른 무기력한 모습을 떨쳐내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첼시와의 커뮤니티 실드, 뉴캐슬과의 2010/11시즌 리그 개막전에서도 무득점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지난 2경기에서의 루니는 슬럼프를 이겨낼려는 의지가 확고합니다. 아직까지 오랜 골 침묵에 빠져있지만 경기 내용에서는 이타적인 역량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이며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부진을 떨쳐내는 중입니다. 그동안 타겟맨으로 활약했다면 첼시전과 뉴캐슬전에서는 쉐도우로서 평균 이상 몫을 해내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자신은 골을 넣지 못했지만 경기 내용이 좋았던 것은 맨유가 지난 두 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승리할 수 있었던 발판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루니의 쉐도우 전환은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불안 요소를 줄이겠다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의도가 짙습니다. 베르바토프의 공격 조율이 '우승을 원하는' 맨유에게 결과적으로 독이 되었기 때문에 역할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더욱이 베르바토프는 쉐도우임에도 2선과의 연계 플레이에 주력하면서 루니와의 공존이 활발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여기에 루니가 올 시즌 이전까지 부상 이후 컨디션 저하로 골 침묵에 빠진 상태였기 때문에 타겟맨으로 믿고 활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랐습니다. 그래서 올 시즌에는 루니를 쉐도우로 내리게 됐습니다.
그런 루니는 첼시전에서 전반 40분 안토니오 발렌시아, 뉴캐슬전에서 전반 41분 대런 플래처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팀 승리를 공헌했습니다. 공격 포인트를 놓고 보면 골 생산에 주력하기보다는 동료 선수들의 골을 만들어내는 역할에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이 쉐도우의 기본적인 역할입니다. 일각에서는 루니의 골 침묵을 아쉬워하고 있지만 지난 2경기에서는 타겟맨이 아닌 쉐도우로 뛰고 있기 때문에 골 부담에서 자유로워진 상태입니다. 물론 공격수는 골을 요구받지만, 지금 루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골이 아닌 경기에서 맹활약 펼칠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며 그것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루니의 첼시-뉴캐슬전 경기 패턴을 보면 타겟맨으로 뛰었던 지난 시즌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슈팅보다는 연계 플레이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즌에는 골을 노리기 위해 최전방에 고정되어 후방 공격 옵션들의 볼 배급을 기다리는 형태였다면, 올 시즌에는 최전방에서 측면쪽으로 빠지는 패턴으로 활발히 움직이는 상황에서 동료 선수에게 패스를 받고 공급하는 전형적인 쉐도우 성향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공략하는 원터치 또는 스루 패스를 엮으며 미드필더들의 전방 침투 기회의 발판을 열어주면서 공간을 창출합니다.
첼시전에서는 애슐리 콜-테리가 포진한 상대 왼쪽 공간을 적극적으로 두드리며 발렌시아의 전방 침투를 도왔습니다. 왼쪽 측면에서 박지성이 페레이라의 오버래핑을 꽁꽁 묶으며 상대 수비 시선을 자신쪽으로 유도하면서 애슐리 콜-테리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루니가 두 선수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움직임을 통해 상대 수비에 부담을 주면서, 발렌시아는 전방에서 공을 터치하는 과정에서 빈 공간을 마련하는 이점을 얻게 됐습니다. 그동안 첼시에 약했던 발렌시아는 박지성-루니의 이타적인 경기력에 힘입어 여유롭게 경기를 풀어갔고 루니의 스루 패스를 받아 골까지 넣었습니다.
루니가 첼시전에서 오른쪽을 공략했다면 뉴캐슬전에서는 왼쪽 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루이스 나니의 침투 능력을 최대화 시키기 위해서 였습니다. 나니-스콜스와 빠른 볼 배급에 의한 연계 플레이를 유도하고 뉴캐슬의 오른쪽 풀백 퍼치를 흔들며 상대 오른쪽 측면 뒷 공간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래서 나니는 무리한 개인기를 선보이지 않아도 왼쪽 측면을 자유자재로 드나들고 끊임없이 패스를 밀어준 끝에 팀의 3-0 완승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맨유의 주 포메이션인 플랫 4-4-2는 구조적 측면에서 플레이메이커를 두지 않기 때문에 윙어의 공격 파괴력이 중요합니다. 나니-발렌시아 같은 공격 성향 윙어를 도와주는 루니의 이타적인 능력이 팀의 승리를 이끈 것입니다. 이러한 공격 형태는 호날두와 공존했던 2008/09시즌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루니가 최전방에서 왼쪽 측면으로 내려가 직접 빌드업을 주도하고(왼쪽 풀백까지 내려갈 정도로) 논스톱 패스를 열어주면서 호날두-테베스-베르바토프 같은 공격 옵션들의 골 기회를 열어줬습니다. 그 형태의 공격력이 첼시-뉴캐슬전에서 다시 재현되고 있습니다.
또한 루니의 쉐도우 전환은 다른 공격수들의 골 능력을 키우겠다는 퍼거슨 감독의 복안이 있습니다. 오언-에르난데스는 스피드와 돌파력을 강점으로 골을 생산하는 패턴을 주무기로 삼고 있으며 베르바토프는 타겟맨으로 전환하면서 2경기 연속골을 넣고 있습니다. 특히 베르바토프 같은 경우에는 박스 안에서 골을 노리는 위치선정과 침착성, 다양한 슈팅 기술을 앞세워 상대 수비수를 위협하는 특징이 있으며 레버쿠젠-토트넘에서도 그런 장점이 빛을 발했습니다. 맨유에서는 지금까지 호날두-루니의 조력자로 활약했기 때문에 희생할 수 밖에 없었지만, 먹튀에서 벗어나 부활이 필요한 현 시점에서는 골을 통한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루니가 언제까지 쉐도우를 맡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이름값을 놓고 보면 이타적인 경기력보다는 골이 더 필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축구는 팀 스포츠이며 루니도 그 일원일 뿐입니다. 팀에 적합한 역할을 맡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타겟맨 전환을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분명한 것은, 루니가 쉐도우로 내려가면서 베르바토프가 부활을 향한 자신감을 되찾았고 맨유가 2경기 연속 3골을 넣으며 '슬로우 스타터'의 악명을 떨치는 중입니다. 그리고 맨유는 지난 시즌처럼 루니의 골에 의지하지 않고도 다득점을 창출했습니다. 루니의 올 시즌 최적의 포지션은 쉐도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