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의 존재감이 무겁게 느껴졌던, 맨유에서의 전술적인 영향력이 컸음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경기였습니다. 박지성의 존재감 여부가 이날 경기의 승패를 좌우했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의 맨유는 31일 오전 3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알리안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09/10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바이에른 뮌헨(이하 뮌헨)전에서 1-2로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전반 1분 웨인 루니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후반 32분 프랑크 리베리에게 동점 프리킥골을 허용했고 후반 46분 이비차 올리치에게 역전골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맨유는 뮌헨전 역전패로 다음달 8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리는 2차전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부담감을 안게 됐습니다. 박지성은 뮌헨의 오른쪽 공격을 철저히 막았지만 그를 후반 24분에 교체시킨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판단이 결국에는 악수로 이어져 맨유의 역전패 원인이 되었습니다.
박지성, 뮌헨의 오른쪽 공격 봉쇄 성공
박지성은 뮌헨전에서 4-2-3-1의 왼쪽 윙어를 맡았습니다. 중앙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판 보멀과 경합을 벌이거나 아니면 오른쪽에서 리베리 봉쇄에 주력할 수 있었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국내 여론이 예상했던 역할과는 다른 양상 이었습니다. 이날 박지성은 로번의 백업 멤버인 알틴톱, 세계 최정상급 오른쪽 풀백인 필립 람을 봉쇄하는쪽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한마디로, 뮌헨의 오른쪽 공격을 차단하는 임무에 주력했습니다.
우선, 맨유의 시작이 좋았습니다. 전반전 킥오프와 동시에 얻어낸 나니의 오른쪽 코너킥 상황에서 루니가 문전 정면으로 쇄도하여 왼발 선제골을 넣었습니다. 당시 루니의 골 장면은 노마크 상황에서 이루어졌는데, 나니가 오른쪽 코너킥을 올린 공이 판 보멀의 머리를 맡고 방향이 꺾여지면서 루니의 마크맨이었던 데미첼리스의 시선이 흐트러졌습니다. 그래서 맨유는 전반 1분 루니의 골 이후 수비수들을 골문 밑으로 내리고 미드필더들을 포백과 간격을 좁히는 수비 위주의 전술로 안정적인 경기를 펼쳤습니다. 전반 20분 볼 점유율에서 41-59(%)의 열세를 나타냈던 것이 이를 증명하죠.
그래서 박지성은 공격보다는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쳤습니다. 왼쪽 골문까지 내려가는 수비 가담을 통해 알틴톱-필립 람의 오른쪽 공격을 봉쇄하거나, 하프라인 부근에서 뮌헨 후방의 공격 연결을 차단하기 위해 전방 압박을 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전방 압박 보다는 에브라와의 간격을 좁혀 알틴톱-람을 마크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알틴톱이 오른쪽에서 돌파를 가하면 끈질기게 따라 붙어 활동 경로를 흐트러 뜨리며 상대의 집중력과 힘을 빼놓았고, 람이 오버래핑을 펼칠때는 근접 마크보다는 중앙으로 침투하는 길목을 미리 선점하여 상대를 측면쪽에 가두었습니다. 그래서 에브라가 람의 돌파를 저지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박지성의 압박은 맨유의 경기력에 큰 힘이 됐습니다. 만약 박지성이 없었더라면 맨유의 전반전은 선제골 이후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맨유가 플래처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세우고 스콜스-캐릭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쓰면서 볼 키핑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것이 상대에게 역습을 허용하는 불안한 모습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른쪽에서는 리베리가 네빌을 뚫고 전방으로 질주하여 슈팅하는 장면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캐릭이 오른쪽에서 협력 수비를 펼쳐 간신히 리베리를 봉쇄했지만, 중원에서 플래처가 없는 시간이 많다보니 공을 오랫동안 소유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박지성이 뮌헨의 오른쪽을 봉쇄한 것은 경기 흐름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뮌헨이 람의 오버래핑과 알틴톱의 측면 돌파에 이은 볼 배급이 박지성의 압박에 막혀 제때 이루어지지 못했죠. 그래서 뮌헨은 리베리에 대한 공격 의존도가 커졌고 이것을 맨유 선수들이 협력수비로 차단하여 실점 위기를 넘겼습니다. 물론 리베리는 현란한 드리블로 맨유 선수들을 하나둘씩 제칠 수 있었으나 또 하나의 수비벽을 넘기에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박지성이 뮌헨의 오른쪽을 막아냈기 때문에 다른 동료 선수들이 리베리 봉쇄에 주력했던 것이죠. 이를 다르게 말하면, 맨유의 선수들이 박지성의 수비력을 믿고 경기를 치렀던 것입니다.
그러더니 뮌헨의 공격은 후반전에 이르러 리베리쪽으로 공격 패턴이 쏠렸습니다. 알틴톱-람의 공격이 박지성에게 철저히 제압당하면서 후반전에 오른쪽 공격을 줄였습니다. 프라니치-판 보멀로 짜인 뮌헨의 중앙 미드필더들은 왼쪽에 쏠리는 공격 패턴을 나타냈으나 후반 중반부터 집중력과 체력이 떨어졌습니다. 왼쪽에서 외롭게 공격을 전개하던 리베리도 결국 맨유의 압박에 걸려들었죠. 무엇보다 알틴톱이 오른쪽 측면 위주의 공격이 아닌 중앙에서 골 기회를 노리며 돌파를 시도한 것은 박지성의 견제를 피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알틴톱은 중앙을 맡을 수 있는 선수지만, 박지성과의 정면 대결에서 밀리면서 중앙으로 이동한 것은 오른쪽 공격에서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박지성 교체, 맨유의 역전패로 이어지다
박지성의 후반 24분 교체는 다음달 3일 첼시전 선발 투입을 위한 체력 안배 의도 였습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뮌헨-첼시-뮌헨으로 이어지는 강팀과의 일전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의 무릎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번 경기에 대한 풀타임 출전을 낙관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결국에는 퍼거슨 감독의 '악수'로 이어졌습니다. 박지성-캐릭이 빠지고 베르바토프-발렌시아가 투입하여 4-4-2로 전환하면서 맨유의 공격과 수비 밸런스가 흔들리는 문제점으로 이어졌습니다.
박지성은 69분 동안 15개의 적은 패스 횟수를 기록했습니다.(10개 성공) 공격력이 약했던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동료 선수들과 공을 주고받으며 패스 횟수를 늘리기보다는 상대 후방 옵션 뒷 공간을 노리는 패스를 연결하며 뮌헨에게 수비 부담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맨유는 박지성이 빠지는 순간부터 측면 공격이 저하되는 문제점에 직면했습니다. 나니-발렌시아가 측면에서 공을 받을때의 위치를 잡지 못하거나 상대 측면 뒷 공간을 노리는 패스 연결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뮌헨의 공격 기세가 살아났습니다. 그러더니 네빌이 리베리에게 흔들리면서 후반 32분 프리킥을 허용했고, 이것이 리베리의 동점 프리킥 골로 이어졌습니다.
퍼거슨 감독의 박지성 교체는 경기 종료 직전의 또 다른 위기 상황으로 몰렸습니다. 리베리의 동점골 이후 골문에서 2~3차례 결정적인 실점 위기를 넘겼고, 긱스-발렌시아가 리베리-알틴톱-람 봉쇄에 실패하면서 수비력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더니 후반 46분 에브라가 올리치에게 공을 빼앗기고 오른쪽 문전 쇄도 및 슈팅 기회까지 허용하며 결국 역전골을 허용했습니다. 결국, 맨유는 박지성을 교체하는 실수를 범하여 두 골을 내준 끝에 1-2로 역전패 당했습니다.
이번 경기에서는 박지성의 존재감이 맨유에서 막중했음을 알 수 있었던 경기였습니다. 이날 맨유는 수비 위주의 경기에 중점을 두었는데 그 중에서 박지성이 가장 튼튼한 수비 역할을 수행하며 팀의 1-0리드에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뮌헨의 공격을 여러차례 커팅하여 맨유의 수비력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2선 깊숙한 공간에서 적극적인 압박을 펼치던 박지성을 빼는 패착을 범했고 이것이 맨유의 결정적인 패배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첼시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박지성을 아껴야하는 퍼거슨 감독의 마음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뮌헨전에서 1-0 리드를 오랫동안 지키며 승리하려면 박지성을 풀타임 기용했어야 마땅했습니다. 뮌헨은 공격력이 뛰어난 팀 컬러를 자랑하기 때문에 후반 막판에 골을 넣을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지성을 아끼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정작 아껴야 할 선수는 박지성이 아닌 루니였습니다. 루니는 얼마전에 무릎 염증이 생기면서 뮌헨전 풀타임 출전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루니는 경기 종료 직전 부상으로 그라운드를 빠져나오면서 맨유의 앞날 행보가 궁지에 몰리게 됐습니다. 박지성의 존재감이 맨유에서 얼마만큼 무거웠는지를 실감했던 뮌헨전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