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게 있어 3일 첼시전은 반드시 이겨야 할 경기입니다. 첼시를 꺾을 경우 프리미어리그 4연패 가능성이 밝아지기 때문입니다. 첼시와의 승점이 1점 차이로(맨유 72, 첼시 71) 1위를 기록중인데다 이번 경기를 마치면 맨시티 이외에는 강력한 상대와 경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31일 바이에른 뮌헨(이하 뮌헨)전 역전패의 무거운 분위기를 첼시전 승리를 통해 오름세로 극복하여 8일 뮌헨전을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첼시전을 앞둔 맨유의 행보는 순탄치 않습니다. 팀 공격의 절반을 책임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웨인 루니가 오른발 발목 부상으로 결장하기 때문입니다. '강팀에 약한'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토트넘 시절부터 첼시와의 경기에서 어김없이 골을 넣거나 결정적인 골 기회를 마련했던 것이 위안거리지만 루니의 몫을 대신하기에는 스타일이 다릅니다. 하지만 박지성의 공격형 미드필더 포진이라면 이야기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박지성의 폼은 공격형 미드필더에 어울린다
우선, 박지성은 뮌헨전에서 주어진 역할을 충분히 소화했습니다. 일부 기자와 몇몇 축구팬은 박지성이 공격 과정에서 공을 많이 못잡았기 때문에 '박지성 부진'을 강조했습니다.(유감스럽게도 현지 여론까지) 하지만 맨유가 철저히 수비 중심의 경기를 펼친데다 박지성은 상대 오른쪽 공격 루트를 봉쇄하는쪽에 치중했으며 필립 람-알틴톱을 적극적으로 압박했습니다. 공격형 윙어에서 수비형 윙어로 다시 돌아갔기 때문에, 공격 성향의 경기를 펼치기에는 팀의 밸런스가 깨지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박지성 공격력을 비판하는 것이 적절치 못한 이유입니다.
정작 비판을 받아야 할 대상은 맨유입니다. 맨유가 박지성에게 수비 중심의 왼쪽 윙어를 맡기면서 전체적인 공격력이 매끄럽지 못했죠. 맨유의 뮌헨전 문제점은 중원 이었습니다. 플래처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는 바람에 스콜스가 캐릭과 함께 중원을 맡았는데, 스콜스는 좁은 활동 폭 및 체력저하가 두드러지면서 후반 중반부터 뮌헨의 공세에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퍼거슨 감독은 압박에 충실했던 박지성과 캐릭을 공격적인 선수들(베르바토프-발렌시아)로 교체하는 악수를 두고 말았습니다. 박지성과 캐릭의 첼시전 선발 출전을 위한 교체이자, 추가골을 벌기 위한 의도였는데 교체 대상을 잘못 정했습니다.(네빌, 스콜스, 루니를 교체했어야죠.)
만약 맨유가 플래처-캐릭을 중원에 놓고 박지성을 공격형 미드필더에 배치했다면 전반 1분 루니의 선제골 이후 추가골 기회를 얻었을 것입니다. 박지성이 뮌헨 중앙 미드필더인 판 보멀-프라니치의 뒷 공간을 파고드는 움직임 및 루니에게 여러차례 전진 패스를 열어줬다면 경기의 양상이 기존과 뒤바뀔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니-발렌시아-플래처와의 유기적인 공격 연결을 통해 루니의 최전방 고립을 막았겠죠. 박지성이 최근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맹활약을 펼쳤던 이유는 이러한 스타일에 강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결국, 박지성은 뮌헨전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해야 마땅했습니다. 맨유는 박지성 포지션에 대한 컨셉부터 잘못됐습니다.
박지성의 공격형 미드필더 기용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난 시즌과 올 시즌 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즌의 박지성은 철저한 '수비형 윙어' 였습니다. 적극적인 수비 가담과 집요한 압박, 절묘한 커팅을 통해 상대 측면 옵션을 견제하며 반대쪽 측면에 있는 호날두의 수비 부담을 덜었습니다. 하지만 올 시즌의 박지성은 수비적이 아닌 공격적인 선수입니다. 맨유가 시즌 초 부터 점유율 축구를 펼치면서 박지성의 폼이 공격적으로 변했고, 지난 1월 역습 축구로 전환하면서 박지성이 주도하는 역습이 팀의 새로운 공격 루트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그런 박지성의 지난 시즌과 올 시즌 움직임이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공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입니다. 지난 시즌의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이 인정했듯, 공이 없을 때 강했습니다. 공을 잡지 않는 상황에서도 동료 선수들의 공격 활로를 열어주거나 상대 수비들의 압박을 분산 시켰습니다. 올 시즌의 박지성은 공이 없을 때 여전히 강하지만, 동료 선수에게 공을 받을 때의 움직임이 부지런하며 그 과정에서의 위치선정이 절묘했습니다. 맨유가 종적인 공격 패턴을 즐겨 구사하면서 직선적인 플레이에 강한 박지성의 공격력이 물이 올랐습니다. 특히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말입니다.
박지성, 첼시전에서 미켈 제압할까?
박지성의 첼시전 선발 출전 가능성은 매우 큽니다. 뮌헨전 후반 24분 교체가 첼시전에 대한 의도가 짙었음을 의미하죠.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가장 잘 아는 지도자이고 잘 아끼는 성향이기 때문에 뮌헨-첼시-뮌헨으로 이어지는 빠듯한 일정에서 지치지 않도록 '배려'를 했습니다. 그 배려라 함은 박지성의 무릎을 보호하기 위함이죠. 결과론적으로 박지성 교체는 악수가 되었지만, 박지성은 그 교체를 통해 첼시전에서 자신의 역량을 맘껏 끌어 올릴 수 있는 에너지가 다른 누구보다 풍부합니다.
첼시전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 포진에 무게감이 실립니다. 스콜스가 뮌헨전에서 풀타임 뛰었기 때문에 첼시전에 선발 기용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래서 중원은 캐릭-플래처 조합으로 짜여질 것입니다. 2선은 나니-박지성-발렌시아가 담당할 것이며 원톱이 베르바토프 입니다. 맨유가 강팀과의 경기에서 4-2-3-1을 구사하여 미드필더진을 두껍게 구축하는 만큼, 그 틀은 루니가 부상으로 빠져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맨유는 루니가 빠졌던 지난달 7일 울버햄턴전과 28일 볼턴전에서 베르바토프를 원톱으로 올려놓았기 때문이죠.(긱스의 선발 출전이 적절치 못한 이유는 베르바토프와의 공존으로 팀의 공격 템포가 느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2월 25일 인터 밀란전 및 올 시즌 초반이 그 예)
박지성의 첼시전 공격형 미드필더 포진의 장점은 미켈을 공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첼시 미드필더진의 약점이 미켈의 느슨한 홀딩 능력 때문입니다. 미켈은 기본적인 수비 능력이 출중한 선수지만 순간적인 집중력이 약하며 상대 중앙 옵션에게 뒷 공간을 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 밀란전에서 슈네이데르에게 공략 당했던 것이 대표적 예죠. 그리고 압박이 잘 안되면 거친 파울을 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켈의 습관을 박지성이 철저히 이용하면 맨유에게 승산이 따를 수 있습니다.(참고로, 박지성과 나이지리아 대표팀의 핵심인 미켈과의 매치업은 '미리보는 남아공 월드컵'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베르바토프의 최전방 고립을 막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박지성이 종적인 움직임을 통한 전진패스에 강점을 발휘하는 성향이며 패스 타이밍이 최근에 빨라졌기 때문에 베르바토프에게 적지 않은 볼 배급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베르바토프는 한 번 공을 잡으면 2차 공격을 즐기는 성향이기 때문에 나니-박지성-발렌시아가 최전방과 거리를 좁혀 유기적인 공격 패턴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캐릭-플래처로 짜인 더블 볼란치가 첼시 미드필더와의 중원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야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박지성의 공격형 미드필더 포진 배경은 루니의 활동 부담을 덜어주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박지성이 미드필더진과 최전방을 넓게 커버하며 부지런히 뛰다보니 루니가 최전방에서 골에 전념할 수 있었죠. 그 대표적인 경기가 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 1~2차전 이었습니다. 이러한 박지성의 특성이 첼시전에서 빛을 발하면, '강팀에 약했던' 베르바토프가 첼시 골망을 흔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합니다. 베르바토프가 루니처럼 박지성에게 공을 받을 수 있는 움직임에 능동적인 모습을 보이면, 박지성 효과가 살아날 수 있고 맨유가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