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오는 5일 A매치 호주전 출전을 위해 지난달 31일 국내에 입국했습니다. 소속팀에서는 주전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대표팀에서는 주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책임감이 막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호주전에서 한국의 승리를 이끌고 싶다는 것이 '허정무호 에이스' 박지성의 각오입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컨디션이 안좋은 상황에서 국내에 입국했습니다. 맨유에서의 행보가 이를 대변합니다. 박지성은 지난 7월말 팀에 복귀했으나 7월초 훈련에 합류했던 동료 선수들보다 훈련량이 부족해 다른 누구보다 컨디션이 떨어집니다. 문제는 그것이 경기력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퍼스트 터치 불안, 잦은 백패스 연결, 위치선정 불안으로 팀 공격의 템포가 끊어지는 문제점이 나타난 것이죠. 그래서 지난달 20일 번리전에서는 18인 엔트리에 없었고 30일 아스날전에서는 후반 17분에 교체 투입 됐습니다. 일각에서는 박지성의 공격력을 문제 삼으나, 근본적으로는 컨디션 저하가 더 문제입니다.
물론 박지성의 일정은 앞으로 2주 동안 빠듯하지 않습니다. 오는 5일 호주전 이전까지 경기가 없기 때문에 대표팀 훈련에 매진하면 되고, 호주전에 출전하면 일주일 동안 경기가 없으며 12일 맨체스터 시티와의 지역 라이벌을 준비하면 됩니다. 웨인 루니와 벤 포스터 같은 몇몇 동료 선수들이 9일과 10일에 걸쳐 A매치 경기를 치르는 것에 비하면 박지성의 일정이 순조로운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컨디션 저조로 경기력에 이상 조짐을 보인 상황에서 국내에 입국한 것입니다. 지구 반대편을 돌았기 때문에 시차 적응을 해야하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박지성이 대표팀 복귀 이후 컨디션 저하로 고생하는 것은 이미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도 잘 알고 있습니다. 박지성은 지난해 10월, 지난 4월 국내에서 가진 A매치 이후 맨유에서 3경기 연속 결장했습니다. A매치 이후에 가진 경기에서 컨디션 저하로 평소 답지 못한 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이 3경기씩이나 휴식을 부여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계속 쓰고 싶지만 문제는 선수가 국내에서 치르는 대표팀 일정으로 컨디션이 안좋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수의 동의를 얻어 휴식을 준겁니다.
만약 박지성이 호주전 이후에도 컨디션 저하에 시달리면 팀에 이렇다할 도움을 주지 못할 겁니다. 퍼거슨 감독은 최근 2경기 연속 나니-발렌시아 콤비를 선발로 기용했지만 두 선수를 붙박이 주전으로 쓰겠다는 의도보다는 차선책일 가능성이 큽니다. 두 선수의 경기력은 여전히 들쑥날쑥해 팀 전력의 주축으로 맡기기에는 믿음감이 부족합니다. 박지성은 나니-발렌시아보다 더 많은 경험을 지녔으며 퍼거슨 감독이 주문하는 전술 이해도가 뛰어난 전형적인 팀 플레이어입니다. 그래서 박지성의 컨디션 저하는 맨유 전력에 손해가 되는 겁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대표팀에서도 중요한 선수입니다. 맨유가 지난 시즌까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의 공격력에 의존하는 팀 컬러를 지닌 것 처럼, 대표팀에서도 박지성의 영향력은 '맨유 호날두'와 흡사합니다.(공교롭게도, 박지성과 호날두는 한국과 포르투갈 대표팀 주장입니다.) 박지성은 대표팀의 에이스이기 때문에 허정무호에서 적극적으로 중용될 수 밖에 없으며 동료 선수들도 박지성의 움직임을 살피며 전술을 이행해야 합니다. 박지성을 중심으로 공격을 풀어가는 '박지성 시프트'는 지난 2004년 아시안컵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대표팀에서 박지성 의존도가 몸에 벤 것도 오래됐습니다.
그래서 박지성은 앞으로도 국제축구연맹(FIFA)가 주관하는 A매치 데이가 되면 대표팀 경기에 차출 될 것입니다. 모든 선수는 대표팀 훈련 및 소집에 응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박지성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대표팀에 합류해야 합니다. 문제는 대표팀 합류와 시차 적응으로 인한 피로가 자신의 컨디션과 경기력에 적지 않은 부정적 영향으로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국내에서 열린 대표팀 차출 이후 무릎 연골 부상(2004, 2007년) 발목 부상(2006년)으로 신음했고 특히 2007년에는 9개월 동안 경기에 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즌부터는 대표팀 복귀 이후 늘 컨디션 저하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팀 합류가 늦었던 것이 컨디션 저하의 원인으로 작용했죠.
박지성은 대표팀 경기에 차출되면 맨유에서 컨디션 저하로 고전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까지 계속 그랬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 영향이 이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당연합니다. 윙어 자원이 마땅찮은 맨유로서는 박지성의 컨디션 저하가 반갑지 않을 것입니다. 박지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퍼거슨 감독이 우려할 수 밖에 없죠.
문제는 맨유의 일정이 앞으로 빡세질 것입니다. 이번달 부터 칼링컵, UEFA 챔피언스리그 일정을 소화해야하고 내년 1월 부터는 FA컵까지 치러야 합니다. 윙어 전력이 풍요롭지 않은 상황에서(거의 매 경기 선발 출전했던 호날두가 없으므로) 박지성의 출전 횟수는 많아질 것이고 그로 인해 컨디션 저하에 대한 부담감이 커질 것입니다. 여기에 대표팀 차출 여파까지 이어지면, 박지성의 경기력에 지장을 줄 것입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경험이 여럿 있기 때문에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박지성은 지난 시즌보다 올 시즌이 더 힘들고 어려울 것입니다. 지난 시즌에는 무릎 부상 후유증으로 팀에 늦게 복귀했음에도 몸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시간이 필요로 했기 때문에, 동료 선수들보다 1달 늦게 시즌을 치렀음에도 최상의 컨디션으로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컨디션 저하로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호주전 출전을 위해 국내에 입국했기 때문에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가면 시차적응 및 컨디션 향상에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문제는 컨디션이 안좋은 상황에서 호주전에 차출된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박지성이 대표팀 경기 1~2경기 쯤은 빠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대표팀 차출 의무를 이행하는 것보다 소속팀에서 최상의 경기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경기력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축구 선수에게 있어 컨디션은 경기 당일 실력을 좌우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선수 특성에 맞는 대표팀 운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문제는 이것이 K리그 선수와의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박지성을 비롯한 유럽파들의 희생이 필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형평성에 접촉되지 않는다면 팔꿈치에 붕대를 감고 입국한 박주영의 대표팀 차출도 없었겠죠.
대표팀 경기는 월드컵 본선 이전까지는 평가전이 계속 이어집니다. 하지만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유럽파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표팀의 에이스이자 주장인 박지성이 힘든 시즌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맨유에서의 팀 내 입지와 재계약, 월드컵 본선에서의 경기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