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라이벌 아스날을 2-1로 꺾고 시즌 3승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맨유의 2골은 필드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는 루니의 페널티킥 골, 또 하나는 아부에 디아비의 자책골 이었습니다. 매끄러운 공격 과정에서 골을 넣은 장면은 단 한번도 없었으며 14개의 슈팅 중에 유효 슈팅은 단 3개 뿐이었습니다.
이날 4-5-1 포메이션을 구사한 맨유의 경기 내용은 답답했습니다. 미드필더에서 공격진으로, 긱스에서 루니로 이어지는 공격 전개가 매끄럽지 못한데다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리기에 바쁘면서 단조로운 공격 루트를 일관했습니다. 그래서 팀 전체가 동적인 움직임 없이 상대 수비진을 뒤흔드는 임펙트를 주지 못해 필드골을 넣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럴수록 최전방을 부지런히 움직이거나 좁은 공간을 오밀조밀하게 파고들며 상대 수비의 뒷 공간을 노리는 공격 전개가 필요하나, 그 역할을 담당하는 박지성이 후반 17분 교체 투입되기 전까지는 공격 옵션 전원이 자기 스타일에 안주하려 했습니다.
선발로 출전했던 공격 옵션 전원은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원톱으로 출전한 루니는 90분 동안 17개의 패스를 시도한데다 패스 성공률 64.7%(11개 성공)에 그칠 정도로 평소보다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긱스는 루니와의 간격을 좁히지 못한데다 패스마저 활발하지 못해 원톱의 최전방 고립을 부추기고 말았습니다.
나니와 발렌시아의 부진은 더 심각했습니다. 패스 성공률에서 각각 66.7%(27개 시도 18개 성공) 56.3%(16개 시도 9개 성공)의 저조한 기록을 세운데다 시도 횟수도 적었고, 짧은 패스보다는 크로스와 백패스 위주의 무리하고 비효율적인 공격을 시도하며 팀 공격의 답답함을 가중 시켰습니다. 전방을 활발히 치고드는 움직임도 무디면서 루니-긱스에게 많은 공격 기회를 주지 못했습니다. 4-5-1 포메이션이 좌우 윙어의 활발한 공격력이 필수임을 상기하면, 나니와 발렌시아의 부진이 팀 공격의 저하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맨유의 경기 내용 부진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두 가지 실수 때문 이었습니다. 하나는 긱스를 4-5-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시킨 것입니다. 루니-베르바토프 투톱을 앞세운 4-4-2 카드를 꺼내들었다면 두 공격수가 미드필더진으로 내려가 공격을 전개하며 경기를 손쉽게 풀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긱스가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으면서 루니의 활동 반경이 최전방으로 제한되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패스 양질에 기복이 있는 긱스보다 짧은 패스 위주의 베르바토프가 4-5-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포진했다면 경기의 질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참고로 베르바토프는 지난 5월 10일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4-5-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박지성을 선발에서 제외한 것입니다. 박지성은 아직 컨디션이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에 나니-발렌시아에게 밀렸지만 클래스에서는 두 윙어를 압도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팀의 공격 전개시 어느 위치에서 공을 잡거나 빈 공간을 창출해야 하는지, 어느 선수에게 패스해야 하는지, 그리고 아스날을 요리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감독 입장에서는 박지성을 풀타임으로 쓸 수 없더라도, 단단한 수비 조직력을 자랑하는 아스날을 제압하려면 박지성의 공간 창출을 앞세워 초반부터 기선 제압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박지성의 아스날전 선발 제외는 나니-발렌시아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렸음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나니-발렌시아의 부진으로 팀의 침체된 공격력을 반전 시키기 위해 박지성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것도 후반 17분 골이 필요로 하는 승부처 상황에서 박지성을 투입 시킨 것입니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선택한 것은 나니-발렌시아 체제를 밀고 나간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스스로 인정 했습니다. '박지성은 승리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제외되는 선수'라는 일부 국내 팬들의 잘못된 편견을 깨기에 충분합니다. 박지성은 두 윙어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박지성의 선발 제외는 공격력 문제로 비춰볼 수 있습니다.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이 원하는 '골 넣는 윙어'가 아닙니다.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골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 공격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죠.
만약 호날두가 맨유에 존재했다면 박지성은 변함없는 맨유의 주전이었을 것입니다. 호날두가 한쪽 공간에서 골에 치중하고 박지성이 다른 공간에서 이타적인 활약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에 팀의 측면 공격이 균형 잡혔을 것입니다. 하지만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지금은 나니의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나니가 왼쪽 공간에서 공격 포인트를 노리고 박지성 또는 발렌시아가 오른쪽에서 이타적인 활약을 펼치는 측면 경쟁 체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왼쪽에서 '절친' 에브라와 장단을 척척 맞추던 박지성이 올 시즌 오른쪽 출전 비중이 커진것도 이 때문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과 발렌시아를 공존이 아닌 경쟁 관계로 묶은 것입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이 의도하던 계획은 이번 아스날전에서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나니-발렌시아 조합은 파괴력이 떨어지는데다 팀 공격의 효율성을 가져다주지 못했기 때문이죠. 나니-발렌시아 조합이 성공하려면 나니의 잠재력이 폭발해야 하고 발렌시아가 최전방쪽으로 좀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하나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나니-발렌시아 조합은 맨유의 측면을 이끄는 이상적인 조합이 아니었던 겁니다. 물론 위건같은 약팀과의 경기에서는(5-0 맨유승) 통하는 조합일지 몰라도 아스날 같은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강팀용 선수' 박지성의 존재감만 커질 뿐입니다.
박지성은 지금까지 퍼거슨 감독의 지시대로 경기에 임했기 때문에 골을 결정짓는 활약보다는 이타적인 활약에 몸이 베었습니다. 단기간에 공격력이 폭발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수비적이고 이타적인 활약에 국한된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PSV 에인트호벤, 그리고 허정무호에서 팀 공격의 중심 역할을 맡았고 골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상대 골망을 흔들 정도로 기본적인 공격력이 갖춰진 선수입니다. 호날두가 없는 맨유에서는 공격력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됐고,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따라서 맨유의 측면 공격이 살아나려면 박지성의 컨디션이 정상적으로 올라와야 합니다. 그 시간이 빠를수록 맨유의 공격력이 점점 향상 될 것입니다. 물론 아스날전에서 자신을 선발 투입시키지 않은 퍼거슨 감독의 실수는 아쉬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이 앞으로 나니-발렌시아 측면 카드에 고정된 자세를 보이지 않도록 하려면 박지성 본인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뭔가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