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이번 월드컵 최종예선 8경기에서 12골을 넣었습니다. 하지만 약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전 2경기 6골 넣은 것을 제외하면 북한, 이란, 사우디 아라비아와 6경기를 가지면서 6골에 불과했습니다.
'지한파' 압신 고트비 이란 대표팀 감독은 지난 17일 한국전 종료 후 "한국은 한 골을 넣기 위해 너무나 많은 기회를 필요로 하고 있다"며 한국 대표팀의 골 문제 원인을 공격 전술 문제로 꼬집었습니다. 골을 넣기 위해 온갖 작전들을 구사하고 있지만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죠. 많은 슈팅을 날리면서도 좀처럼 골망을 가르지 못하는 골 결정력 부재는 한국 축구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대표팀의 골이 부족하다는 것은 월드컵 본선이 우려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지난 4월 1일 북한전에서는 후반 42분 김치우의 프리킥 결승골이 터지기 전까지 19개의 슈팅을 놓치는 불안한 골 결정력을 일관했습니다. 71-29(%)의 압도적인 볼 점유율 우세와 80-70(%)로 앞선 패스 성공률, 그리고 21개의 슈팅으로 9개의 북한보다 2배 더 많은 골을 시도하여 북한 문전을 사정없이 두드렸음에도 결과는 좋지 않았던 것이죠. 골운이 따랐다면 이 경기를 어렵게 이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북한전 뿐만은 아닙니다. 여러 차례 완벽한 득점 기회가 있었음에도 대부분의 슈팅은 허공을 가르거나 골키퍼 품에 안기고 말았습니다. 골망을 가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슈팅시의 위치가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전방에서 공격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상대 압박을 벗겨내기전에 골문과 거리가 먼 곳에서 슈팅을 남발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박주영-이근호' 투톱은 활동반경에서 겹치는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어 서로의 공격 시너지 효과를 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골을 넣으려는 선수들의 의지가 안일한 것이 아니냐는 여론의 지적도 있습니다.
축구는 상대팀보다 더 많은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입니다. 허정무호가 월드컵 본선에서 16강에 진출하려면 본선 무대에서 다득점 축구로 승리해야 합니다. 과정이 중요해야 결과가 중요하듯, 골 넣는 과정에 대한 효율성이 필요합니다. 남은 12개월 동안 월드컵 16강 진출에 올인하기 위해서는 골을 넣을 수 있는 확실한 전략이 필요하며, 그것이 허정무 감독과 태극 전사가 직면한 지상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일본 럭비가 해답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카다 다케시 일본 축구 대표팀 감독은 지난해 1월 7일 일본인 축구 지도자회의에서 공격 전술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일본 럭비를 축구에 접목시키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소식은 다음 날 일본 스포츠 전문 매체 스포츠네비를 비롯한 여러 스포츠 언론의 메인 뉴스로 보도되었죠.
일반인들 관점에서 볼 때, 축구와 럭비의 결합은 쌩뚱(?) 맞습니다. 축구공을 럭비 기술처럼 가슴에 끌어안고 뛰는 모습이나 럭비의 거친 몸싸움 기술을 이용해 상대팀 선수를 넘어뜨리는 장면, 골대 안에 들어가 럭비의 득점 기술인 터치다운을 시도하는 것 등을 생각할 수 있겠죠.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장면들은 필자 두 눈으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못봤습니다. 오카다 감독이 주장하는 일본인만 할 수 있는 축구는 일본인 특유의 비상한 머릿속에 나올지 모를 일이죠.
오카다 감독이 시도할 축구 스타일은 자신의 와세대 선배가 만들었던 럭비 이론을 접목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과거 와세대 럭비부와 일본 럭비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고 오니스 데쓰노스케(95년 타계)가 주장한 키워드인 '접근-전개-연속'을 현 일본 국가대표팀 전술에 인용해 세계 축구의 전술을 흉내내지 않고 일본인만이 가능한 축구를 확실히 하겠다고 당시 일본인 지도자회의에서 다짐했다고 합니다.
오니스가 창시한 '접근-전개-연속'이라는 이론은 서양인과의 체력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몸집 작은 일본인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키워드입니다. 이 전법은 1960년대 와세다 대학에서 확립되었으며 '접근'은 좁은 공간에서의 싸움, '전개'는 민첩합과 기술을 살리는 것, '연속'은 지구력으로 공격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오카다 감독이 추구하는 전술의 최대 핵심은 '기술 축구' 입니다. 오카다 감독은 지난해 1월 1일 아사히 신문에서 "일본 선수들의 개인기는 세계 톱 레벨이다. 공격 펼칠 때 상대팀 선수와의 접촉을 피하면서 좁은 공간에서도 상대팀 선수를 효율적으로 제치는 그런 축구를 하고 싶다"며 일본팀에 접목시킬 새로운 전술을 공개하며 럭비 이론까지 접목 시키겠다는 거죠.
오카다 감독은 "과거에 만들어진 럭비 이론은 아직 살아 있다"며 탈 아시아를 꿈꾸는 일본 축구에 접목 시키겠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오노 쓰요시 일본 축구협회(JFA) 기술 위원장도 "이 이론은 일본인의 대표적인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특히 연속이란 키워드는 일본 대표팀을 상대하는 팀들이 싫증낼 정도로 같은 것을 반복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 대표팀은 그동안 골 결정력 향상을 위해 많은 훈련을 했지만 성과는 미흡했습니다. 맨땅에서 축구를 시작했던 근본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선수들의 발목이 유연하지 못했고, 그 결과 성인이 되어서도 날카로운 슈팅을 날리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골 결정력을 높이기 위한 차선책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한계를 커버할 수 있는 무언가의 존재가 필요한 상황이죠.
오카다 감독이 주장하던 접근-전개-연속이라는 일본 럭비 이론은 한국 대표팀이 골 결정력을 높이기 위한 참고 사항이 될 것입니다. '접근'은 공격 옵션들이 최전방에서의 오밀조밀한 곳에서 골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위한 과정이고, '전개'는 박지성-이청용의 빠른 측면 공격과 김정우-기성용의 전진패스와 스루패스 같은 공격 방식을 최대한 살리는 전술 방식입니다. 그리고 '연속'은 쉴세없이 공격하고 스위칭하여 상대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격 전술이 될 것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무한 스위칭'과 유사한 전술이죠.
물론 오카다 감독의 계획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일본 축구의 고질적인 단점인 '걸출한 공격수' 부족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죠. 접근-전개-연속을 실행할 수 있는 미드필더 자원이 풍부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마무리할 수 있는 공격수가 마땅찮았습니다. 그러나 한국 공격수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박주영, 이근호, 신영록 등 개인 역량이 뛰어난 공격수들이 여럿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스리톱으로 범위를 확장하면 박지성, 이천수, 최성국, 이청용 같은 득점 및 어시스트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까지 가세할 수 있습니다.
한국 축구의 골 결정력이 살아나려면 슈팅 연습 이전에 공격 전술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슈팅 자세가 완벽하더라도 그 위치가 골문과 거리가 있으면 정확도가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상대 수비수를 제치지 않았으면서도 무리하게 슈팅을 날리거나, 상대 압박을 제칠 수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개인 전술 이해도 부족에 따른 패스미스로 역습을 허용하는 것이 허정무호의 문제점입니다. 공격 옵션들의 개인 역량을 살리면서 접근-전개-연속과 같은 일본 럭비 이론을 통해 공격 전술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