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천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4)가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상징인 등번호 7번은 공석이 되었습니다. 맨유 7번은 축구 영웅중의 영웅에게 부여되는 번호로서 어느 선수가 그 영광을 이어받을지 축구팬들의 관심과 초점이 모여있는 상황입니다.
우선, 맨유의 7번은 당시 팀내에서 가장 월등한 실력을 뽐내던 선수들의 전유물입니다. 바비 찰튼, 조지 베스트, 스티브 코펠, 브라이언 롭슨, 에릭 칸토나, 데이비드 베컴, 그리고 얼마전까지 맨유 에이스로 맹위를 떨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7번 계보를 이어갔습니다. 등번호의 무게감과 상징성을 고려하면, 차기 7번 선수는 이들에 필적할 수 있는 선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7번을 받을 유력한 후보로 꼽혔던 웨인 루니가 10번을 고수하면서 맨유 7번 계보의 행보가 걷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기존 선수들 중에서 7번을 받을 적임자가 눈에 띄지 않는데다 유망주에게 주기에는 성장 실패에 따른 위험 부담까지 안고 있어야 합니다. 카림 벤제마(리옹) 프랑크 리베리(바이에른 뮌헨) 안토니오 발렌시아(위건) 사뮈엘 에토(FC 바르셀로나) 같은 맨유 이적이 유력한 후보 자원들도 맨유 혹은 프리미어리그 적응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만약 등번호 7번을 받을 마땅한 적임자가 없다면 오랫동안 공석이 될 것입니다. 맨유는 지난 2006년 7월말 뤼트 판 니스텔로이를 레알 마드리드로 보냈는데, 판 니스텔로이의 등번호 10번은 1년 동안 결번이 되었다가 2007년 여름 루니가 10번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판 니스텔로이의 사례를 들춰보면, 7번을 공석으로 놓는 것도 맨유로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7번이라는 상징성을 위해서는 공석으로 두기 보다는 누군가가 빠른 시일내에 호날두의 등번호를 대체해야 합니다.
맨유 7번 후계자 문제가 어려워진 또 하나의 이유는 7번이 최고의 실력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호날두의 이적으로 맨유 7번에 대한 패러다임이 '맨유 7번=맨유 최고의 선수'라는 개념에서 '맨유 7번=충성심'으로 확대 되었습니다. 팀 전력을 좌지우지하는 실력은 물론 팀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한 선수가 7번을 받을 자격을 얻게 된 것입니다. 맨유 7번 계보는 팀의 전통이자 역사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충성심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호날두 때문입니다. 베스트-롭슨-칸토나-베컴 같은 맨유 7번 출신 선수들은 팀에 대한 충성심이 각별했던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호날두는 레알 마드리드로 가고 싶다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구단을 곤혹스럽게 했고, 지난해 여름에는 현지 언론을 통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지 못하는 나는 현대판 노예"라고 말한 바람에 맨유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만약 팀에 대한 충성심이 결여된 선수가 7번 계보를 물려받는다면 맨유로서 골치아프게 됩니다. 이는 맨유 7번의 상징성이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죠.
그런 가운데, 한국 축구팬들은 "박지성이 맨유 7번 받을 자격이 있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박지성이 맨유에 오랫동안 잔류하는 것을 꿈꾸고 있는데다 4시즌 동안 팀에 대한 헌신적인 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충성심에서 이미 검증되었다는 것이 그 요지입니다. 맨유 7번 계보가 실력보다 충성심을 전제조건으로 한다면 박지성이 유력한 후보임에 틀림 없습니다. 루니가 10번을 고수했고,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9번을 계속 이어받을 현 상황에서는 박지성도 7번을 받을 적임자 중에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박지성은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축구 스타이기 때문에 국내 축구팬들이 '7번 적임자가 없으면 박지성이 받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지성이 맨유 7번을 받으면 한국 축구팬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기 때문이죠. 세계 최정상급의 팀에서 그 팀을 상징하는 등번호를 받는 것은 영광입니다. 여기에 충성심이라는 존재까지 얽혀있다는 것도 국내 팬들의 기대감을 한껏 키우고 있습니다.
박지성이 대표팀의 7번이자 주장, 에이스로 맹위를 떨치는 것도 '긍정 포인트'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대표팀 주장 박지성은 베컴이 맨유와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으로 맹위를 떨쳤던 면모와 흡사한 '포스'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국내 팬들의 기대 심리를 높이는 또 하나의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코펠-칸토나-베컴-호날두는 미드필더로 뛰었던 선수들입니다. 칸토나와 호날두 같은 경우에는 공격수도 겸했지만 박지성도 팀이 4-3-3을 가동할 때는 윙 포워드로 출격했습니다.
또한 박지성은 7번과 많은 인연을 맺었던 선수입니다. 축구와 처음 인연을 맺었던 산남 초등학교 시절(5~6학년 즈음에 세류 초등학교로 전학갔죠.) 등번호가 7번이었습니다. 그러더니 교토 퍼플상가와 PSV 에인트호벤에서 7번으로 활약했고 지금의 대표팀에서는 7번을 맡고 있습니다. 7번과의 인연이 어쩌면 맨유에서 이어질 가능성이 제법 구실을 갖췄습니다.
문제는 7번에 걸맞는 경기력입니다. 박지성은 대표팀에서 에이스로 활약중이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골을 잘 넣었습니다. 하지만 맨유에서는 공격적인 역할보다는 궃은 역할쪽에 무게감을 실었고, 다른 공격 옵션들에 비해 골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퍼거슨 감독이 그동안 "박지성은 골을 잘 넣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을 정도니까요. 지금까지 맨유 7번 계보를 이었던 선수들의 공통점이 하나 같이 공격력이 당대 맨유 최고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박지성이 부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박지성은 맨유의 확고한 주전이 아닌 로테이션 시스템에 의해 몇몇 경기를 거르면서 강팀과의 경기 출전에 초점을 맞추던 선수입니다. 맨유 7번 계보의 주인공들은 팀 내 입지에 어떠한 영향 없이 그라운드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선수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박지성의 7번 등극 가능성은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충성심이라는 기대심리가 작용하면 앞으로 어찌될지 모를 일입니다. 박지성이 맨유 7번을 받게 될 지 아니면 다른 선수가 그 주인공이 될 지, 혹은 오랫동안 공석으로 남을지 앞으로가 주목됩니다.
p.s : 최근 맨유 7번으로 활약했던 선수들의 공통점은 이름이 7글자입니다. 칸토나(Cantona)-베컴(Beckham)-호날두(Ronaldo)가 그런 예죠. 맨유 영입설로 주목받는 벤제마(Benzema)도 7글자입니다. 박지성은 6글자이지만 이름 사이에 '-'이 포함되면 7글자(Ji-sung)가 됩니다. 그동안 등번호 7번과 인연이 많았는데, 한가지 특이한 요소를 필자가 머릿속으로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