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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허정무호 8전 4승4무가 무패신화라고?



필자는 지난 17일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 종료 후, 포털 사이트 메인에서 이러한 축구 기사 제목을 봤습니다. <'박지성 동점골' 한국, 이란과 1-1 극적인 무승부, WC 예선 무패신화>라는 기사 말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단어가 '무패신화'라는 단어였는데, 이란전을 보면서 '과연 한국 축구가 신화를 이루어낸걸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언론사에서도 무패신화라는 단어를 제목에 내걸었죠. <캡틴 박 '허정무호 무패신화' 완성><'무패신화' 한국축구 "남아공아 우리가 간다"><짜릿했던 승부! 축구대표팀, '무패신화'로 남아공 간다>라고 말입니다. 모 TV 방송국 뉴스에서는 축구 대표팀 소식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우리 축구 대표팀은 이란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박지성의 동점골로 1대1 무승부를 기록하며 20년만에 예선 '무패 신화'를 재연했습니다"라고 보도했는데 TV에서도 무패신화라는 단어를 썼씁니다. 언론에서 '무패신화'라는 단어를 쓰다보니 카페, 게시판, 블로그에서도 그 단어를 계속 접했습니다.

어찌보면 무패신화가 대단할 수 있습니다. 월드컵 최종예선 8경기에서 4승4무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고 지난해 2월 6일 투르크메니스탄전부터 지난 17일 이란전까지 A매치 24경기 연속 패한적도 없었습니다. 24경기 성적이 11승13무였는데, 이긴 횟수보다 비긴 횟수가 더 많았지만 결과론적으로는 패한적도 없었습니다. 패하지 않은 것 그 자체로도 값진 결과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필자는 무패신화라는 단어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축구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패하지 않는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축구는 상대방을 이겨야 하는 경기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월드컵 최종예선 같은 큰 경기에서는 이기는 것이 주 목적입니다. 최종예선 8번의 경기에서 4번을 비겼는데 '신화'라는 단어를 붙일 필요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독자들 혹은 시청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 사실에 적합한 단어를 써야 합니다. 사실에서 틀리면 아무리 좋은 기사 내용이라도 설득력을 잃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승4무를 신화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허정무호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되돌이켜 본다면 '4승4무의 성적이 지나치게 칭찬받을 필요가 있나?'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사실에 대하여 너무 과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허정무호는 최종예선 4승4무를 기록했지만 약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와의 두 번의 경기 전적을 제외하면 북한, 이란, 사우디 아라비아를 상대로 한 6경기에서 2승4무를 기록했습니다. 축구 경기에서 반드시 필요한 '골'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한국은 최종예선 8경기에서 12골을 기록했지만 UAE전을 제외한 나머지 6경기에서 6골에 그쳤습니다. 또한 한국은 4승4무로 B조 1위에 올랐지만 A조 1위 호주의 6승2무와 비교하면 성적이 떨어집니다. 물론 북한, 이란, 사우디와 함께 죽음의 조에 편성되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거두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국이 4승4무의 그저그런 성적으로 B조 1위에 오른 것은 사우디와 이란이 부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중동의 두 강호는 그동안 중요한 대회에서 한국의 발목을 잡았지만, 이번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한국이 강해진 것 보다는 사우디와 이란이 예전같지 않은 무기력함을 나타냈던 것이 허정무호에게 '호재'로 작용했습니다. 만약 사우디와 이란이 예전의 명성 그대로 실력 발휘를 했다면 허정무호는 힘든 결과를 거두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사우디와 이란전에서 압도적인 결과를 거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은 두 나라와의 네 번의 경기에서 1승3무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지난해 11월 사우디 원정에서 역대 사우디전 19년 무승 징크스에서 벗어났고 두 번의 이란전에서는 0-1로 뒤진 상황에서 박지성의 극적인 동점골로 무승부 이상의 감동을 얻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 경기 모두, 골을 넣기 전까지는 답답한 공격 전개와 잦은 패스미스로 졸전을 일관하며 경기를 어렵게 풀어갔습니다. 마치 예전의 답답했던 한국 축구를 보는 것 처럼 이렇다할 변화가 없었습니다. 한 가지 달라진 것이라면 박지성의 클래스가 최근에 이르러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도 이제는 자화자찬해서는 안됩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부터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7번이나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지만 토너먼트 무대에 진출한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에 불과했습니다. 아시아 무대에서는 마음껏 고공행진했는데 세계 무대에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도 아시아 무대에서 여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는데 그것을 두고 '신화'라고 규정짓는 것은 적절치 못한 표현입니다. 이는 한국 축구가 여전히 아시아 무대에서의 성적에 지나친 만족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아시아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다고 할지라도 세계 무대에서 통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역대 18번의 월드컵 대회에서 아시아 팀이 조별 예선을 거쳐 상위 토너먼트에 진출했던 대회는 3번의 대회에 불과합니다. 한국은 아시아팀 치고는 월드컵 본선 진출 경험이 많았는데 이번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4승4무의 성적을 올린 것은 신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허정무호가 신화를 달성하려면 아직 12개월의 시간이 더 남았습니다. 월드컵 본선에서 최소 16강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만약 본선 3경기에서 좋지 않은 성적으로 쓸쓸히 귀국길에 오른다면 최종예선 무패신화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은 아시아 무대에 집착하는 신화 달성이 아닌 세계 무대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우디의 몰락처럼 국제 경기 경험 부족으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언론에서 4승4무의 성적으로 무패신화라고 보도하는 것을 볼때마다 참으로 갑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