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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국 축구 공격수 문제, 신영록이 해답이다



부제 : 한국 정통파 공격수들의 부진과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은?

1.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90년대 말, 한국 축구 대표팀에는 3명의 정통파 공격수가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황선홍과 최용수, 김도훈이 바로 그들이죠. 세 선수는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뛰어난 득점 실력을 발휘하며 많은 팬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세 선수 뿐만은 아닙니다. 이동국과 김은중 같은 정통파 공격수 외에도 안정환이라는 개인기와 순발력이 뛰어난 쉐도우 공격수까지 등장해 '공격수 풍년'을 이루었습니다.

2.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10년 전과 다릅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 처럼, 한국 축구에 구조적인 변화들이 있었지만 그 행보는 긍정이 아닌 부정의 색깔을 띄었습니다. 황선홍과 최용수, 김도훈이 대표팀에서 은퇴한 이후부터 누구도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자리매김하지 못했습니다. 본프레레호와 아드보카트호에서는 이동국이 '포스트 황선홍'으로 떠오르는 듯 했지만 2006년 4월 십자인대 부상 이후 3년 동안 슬럼프에 시달리는 불운에 시달렸습니다.

이동국 뿐만은 아닙니다. 81년생의 조재진, 82년생의 남궁도 같은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정통파 공격수들도 기대만큼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두 선수 모두 기복이 심했던 것을 비롯해서 몇몇 국제 대회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태극마크를 달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선수 밑으로 내려가면 정통파 공격수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84년생 3인방인 김동현과 정조국, 정윤성은 한때 청소년 대표팀 부동의 공격수로 활약했지만 지금은 K리그에서 조차 어떠한 이름값을 뽐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동현과 정윤성은 지난해 시즌부터 기나긴 침체에 빠졌으며 정조국은 광대뼈 부상을 비롯해서 경기력 저하 등등 총체적인 슬럼프에 빠진 상황입니다.(참고로, 김동현은 올 시즌 K리그 13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쳤습니다.) 86년생의 양동현은 잦은 부상으로 성장이 오랫동안 더뎠던 것이 아쉽죠. 그나마 87년생의 신영록이 터키 리그에 진출하여 이름값을 떨치고 있지만, 수원에서 경기 출전이 많지 않았던 것이 한때 기량이 정체되었던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이것 때문에 2007시즌 종료 후 지방팀으로 이적하려고 했죠.)

3. 이 같은 현상은 정통파 공격수로 주목받았던 선수들이 성장통을 이기지 못한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부상과 부진의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현대 축구가 요구하는 공격수 스타일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죠. 굳이 많이 뛰지 않더라도 최전방에서 헤딩으로 공중볼을 떨구거나 혹은 동료 공격수에게 패스하거나, 상대 수비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파고들어 골 기회를 노리거나, 자신이 직접 골을 해결하는 것이 정통파 공격수의 역할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공격수들이 그라운드를 지배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현대 축구는 공격수들에게 다양한 능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존 공격수 역할을 비롯해서 측면과 중앙, 혹은 최전방과 미드필더진을 활발히 오가며 다른 공격 옵션들과 유기적인 공격 전개를 이어가는 스타일이 필수 옵션으로 자리매김한 것이죠. 어느 공간에서든 궃은 역할도 겸할 수 있고 때로는 최전방으로 침투하는 선수에게 크로스를 올려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자신이 직접 공간을 파고들거나 또는 역습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끝까지 골 기회를 노리는 개인 역량까지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사뮈엘 에토, 페르난도 토레스, 카림 벤제마 같은 정통파 공격수가 아닌 선수들이 타겟맨으로 맹활약을 펼친 것은 현대 축구의 공격수 변화를 상징하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K리그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수준급 외국 공격수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K리그 팀들의 전반적인 공격력이 예전보다 몇배 이상 좋아졌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국내 공격수들이 외국인 공격수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말았던 것이죠. 최근 몇 년 동안 K리그 상위 득점 순위에서 외국인 공격수들의 숫자가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조재진과 남궁도, 정윤성, 김동현, 정조국, 신영록 같은 정통파 공격수들은 K리그 팀에서 외국인 공격수들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린 공통점이 있었습니다.(그 중, 조재진은 2004년 수원에서 나드손-마르셀 투톱에게 밀리더니 김동현과의 서브 경쟁에서 밀리면서 4-4-2의 측면 미드필더로 뛰었습니다. 차범근 감독이 김동현 스타일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죠.)

한국 대표팀도 마찬가지 입니다. 박주영과 이근호가 투톱 공격수로 활약중이지만 사실 두 선수는 전형적인 공격수가 아닙니다. 박주영이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쉐도우 공간에서 자신의 역량을 살리는 유형이라면 이근호는 측면 옵션 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유병수, 이승렬, 조동건 같은 영건 공격수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정통파가 아닌 빠른 순발력과 화려한 기교로 상대 수비를 따돌리는 유형의 선수들입니다. 그중 조동건은 4-2-3-1을 쓰는 성남의 원톱 공격수로 뛰고 있으며 이승렬은 최근 서울에서 측면 미드필더까지 겸하고 있습니다. 한때 허정무 감독이 원하던 스트라이커로 꼽혔으나 최근 수원에서 슬럼프에 빠진 서동현과 하태균도 이들과 비슷한 유형의 선수들이죠.

4. 한국 축구의 문제점은 정통파 공격수들이 맥을 못추는 것을 비롯해서 서로 비슷한 유형의 공격수들이 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회택-차범근-최순호-황선홍으로 이어진 한국 축구를 빛낸 정통파 공격수 계보가 끊긴 것도 이 때문이죠. 반면에 '박주영-이근호' 투톱이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현대 축구가 원하는 공격수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황선홍에 비해 최전방에서의 파괴력이 약한 것이 흠이지만, 분명한 것은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뛸 역량이 충분하다는 선수들입니다.

하지만 박주영-이근호 투톱으로는 대표팀의 공격 문제를 커버하기가 어렵습니다. 두 선수 모두 골을 해결하려는 모습을 나타내면서 활동 반경이 겹치고 있기 때문이죠.(세부적인 스타일은 서로 다르지만) 박주영이 쉐도우 역할에 치중하면서 타겟맨이 되어야 할 이근호의 역할이 애매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박주영의 볼 터치가 많아진 반면에 이근호가 최전방에서 고립되면서 최근 A매치 5경기 연속 무득점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공격력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월드컵 16강 진출은 힘들 것임이 분명합니다. 공격수의 다재다능한 역할로 4-4-2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현대 축구의 흐름과는 맞지 않는 부분입니다.

5. 이러한 공격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박주영-이근호 투톱과 다른 유형의 선수를 대표팀에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바로 신영록입니다. 박주영-이근호-유병수-조동건-이승렬과 스타일이 전혀 다른데다 대표팀에서는 양동현보다 더 검증되었고, 최근 정통파 공격수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그 이유죠. 최근에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A매치 경기에 뛰지 못했지만 대표팀에 포함될 기회는 여전히 무궁무진합니다.

신영록은 최전방에서의 절묘한 위치선정과 저돌적인 움직임, 빠른 문전 쇄도, 상대 수비수를 지치게 만드는 악착같은 몸싸움을 자랑하는 타겟맨입니다. 최전방 이외에도 미드필더진과 공격진 사이를 활발히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이 있고 K리그 시절에는 중거리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또한 문전에서는 자신이 직접 골을 해결하기보다는 궃은 역할에 충실하면서 다른 공격 옵션의 화력을 돕는 장점까지 있습니다. 수원 시절 차범근 감독으로부터 "신영록은 문전 앞에서의 움직임이 한국에서 최고 수준이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죠.

그동안 신영록의 성장이 더뎠던 원인은 수원에서 많은 경기에 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군에서 풀타임으로 뛰었던 시즌이 2008시즌에 불과할 정도로 1군 벤치와 2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죠. 하지만 최근에는 터키 1부리그 부르사스포르의 주전 공격수로 맹위를 떨치고 있기 때문에 실전 감각에서는 더 이상의 문제가 없어졌습니다. 수비력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 현대 축구의 흐름까지 더하면, 신영록의 가치는 계속 커질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신영록이 지난달 허정무 감독의 대표팀 호출을 받았던 원인은 자신의 기량이 허정무호에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비록 햄스트링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못했지만) 공격수 개인 기량이 다른 축구 강국에 비해 떨어지는 한국 축구의 실정에서는 자신만의 특징이 차별화된 선수가 필요합니다. 신영록은 '박주영-이근호에게 없는' 정통파 공격수 부재까지 해결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한국 축구의 공격수 문제는 언젠가 신영록이라는 해답으로 풀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