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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히딩크, 박수 받고 떠난 '첼시의 영웅'

 

클라우디오 라디에리, 조세 무리뉴, 아브람 그랜트,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4명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는 첼시의 감독을 맡은 것이고 또 하나는 성적 부진 및 여러가지를 이유로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에 의해 경질되었던 지도자들입니다. 첼시 팬들의 박수를 받지 못하고 쓸쓸히 런던을 떠나야만 했던 존재들이죠. 어찌보면 첼시의 잘못된 악순환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은 달랐습니다. 첼시 임시 사령탑 재임기간의 마지막 경기인 30일 FA컵 결승 에버튼전에서 팀의 2-1 역전승을 이끌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이죠. 이제 히딩크 감독은 지난 2월 중순부터 맡았던 첼시 임시 사령탑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에 대한 편안한 마음으로 팀을 떠나 러시아 대표팀 감독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아울러 첼시 팬들의 박수 갈채를 받으면서 런던과 작별하게 됐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이미 첼시팬들과 고별행사를 치렀습니다. 지난 18일 블랙번과의 시즌 마지막 홈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과 팬들의 박수 갈채를 받으며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작별 행사를 했죠.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경질로 팀을 쓸쓸히 떠나야만 했던 다른 4명의 전 첼시 감독과 대조되는 작별 장면 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에서 첼시의 우승을 이끌었으니 그야말로 '영웅'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히딩크 감독이 4명의 감독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 입니다. 아직도 많은 첼시팬들은 역대 첼시의 최고 사령탑으로 '히딩크 감독이 아닌' 무리뉴 감독(현 인터 밀란)을 꼽고 있습니다. 무리뉴 감독은 첼시를 유럽 축구의 '신흥 명문'으로 이끈 존재이기 때문이죠. 또한 라니에리 감독은 첼시가 2000년대 중반 전성기를 달릴 수 있었던 초석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랜트 감독은 첼시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견인했고, 스콜라리 전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었던 지도자입니다. 히딩크 감독과 4명의 명암이 엇갈린 것은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경질 유무에 따른 차이였습니다.

그럼에도 히딩크 감독이 첼시팬들의 박수를 받고 팀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스콜라리 체제에서 좌초하던 팀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첼시의 올 시즌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시즌 초반 1위를 달리며 순항했지만 중반부터 선수들의 경기력 및 체력 저하, 선수단 내분까지 겹쳐 4위로 미끄러지면서 지난 2월 스콜라리 전 감독을 경질했습니다. 또한 이적생 데쿠는 프리미어리그 적응 실패로 팀 전력에 어떠한 공헌을 하지 못했고 드록바-발라크-체흐-카르발류-조 콜은 경기력 부진 및 부상으로 이름값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 드록바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온갖 구설수를 일으키며 팀의 이미지를 먹칠했죠.

그래서 지난 2월 중순 첼시의 임시 사령탑을 맡았던 히딩크 감독에게 주어진 여건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이미 1월 이적시장이 끝나면서 자신이 원하는 다른 팀 선수들을 데려올 수 없기 때문에 한정된 선수층으로만 싸웠던 것이죠.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선수들은 잦은 감독 교체로 전술 흐름에서 완전히 길을 잃은데다 스티브 클라크 전 수석코치가 웨스트햄으로 이적하면서 체력이 약해졌고, 스콜라리 체제에서 불거진 기강 문제가 팀의 불안 요소로 꼽히게 된 것이죠. 더욱이 2월에는 시즌 후반에 접어드는 시점이기 때문에 첼시가 감독 교체를 하는 것 자체가 모험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일반적인 감독이라면 여러가지 난관에 놓인 첼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잉글랜드 BBC는 지난 2월 13일 <히딩크 감독이 첼시에서 몇 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까?>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그중 75%가 우승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나타냈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은 지난 2월 19일 <유나이티드 리뷰>를 통해 "히딩크 감독이 오더라도 첼시의 우승은 힘들 것이다"고 전망했습니다. 이는 첼시가 여러가지 문제에 놓인데다 히딩크 감독이 임시 사령탑을 맡은 시기가 늦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앞날 상황을 비관적으로 봤던 것이죠.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꿋꿋이 좋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첼시 사령탑을 맡은 24번의 경기에서 18승5무1패의 높은 성적을 기록한 것이죠. 승률이 75%였으니 4번 경기하면 3번은 이긴 꼴입니다. 그 중 프리미어리그는 11승1무1패를 기록했으니 리그 4위 부진으로 경질된 스콜라리 체제와 대조적인 행보를 걸었습니다. 여기에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과 FA컵 우승까지 더해지면서, 스콜라리 체제에서의 패착으로 벼랑끝에 있던 첼시의 순항을 이끌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이 첼시에서 좋은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여러 팀 감독을 맡으면서 쌓았던 노하우를 첼시에 그대로 접목했기 때문입니다. 이적시장 기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선수를 영입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조직력에 초점을 맞춘 것이죠. 팀 내 규율을 강화하여 선수단 잡음을 줄이려 했고 '램퍼드-에시엔-발라크' 중심의 안정적인 팀 컬러를 축으로 베스트 일레븐 위주의 선수 기용을 단행 했습니다. 이어 스콜라리 전 감독과 마찰을 빚으며 벤치를 달구던 드록바를 팀 공격의 중심으로 활용하여 대들보의 진가를 믿었습니다.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많은 팬들은 히딩크 감독이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실패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4강 2차전에서 FC 바르셀로나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결승에 오르지 못한 것이죠.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후반 47분 첼시 골망을 흔들지 못했다면 그동안 메이저 대회에서 히딩크 감독을 질기도록 괴롭혔던 '4강 징크스'는 깨질 수 있었습니다. 일부 팬들은 히딩크 감독이 극단적인 수비 축구를 한 것에 반감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파상적인 공격을 비롯 첼시의 취약한 윙어 자원(아넬카가 측면 공격수를 맡을 정도로 날개가 불안했죠. 히딩크 감독 부임 초기에는 투톱이었습니다.)을 고려하면 공격보다는 수비에 무게감이 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감독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겁니다. 또한 수비축구도 어디까지나 축구일 뿐이니까요.

그럼에도 첼시 팬들과 선수들, 그리고 구단 수뇌부들은 히딩크 감독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성적 부진으로 위기에 치닫던 팀을 벼랑 끝에서 구한 것만으로도 감사했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히딩크 감독은 그들에게 다음 시즌에도 감독을 맡을 것을 부탁 받았지만 러시아 대표팀을 위해 이를 거절 했습니다. 첼시 임시 사령탑 계약 기간 종료 후 다시 러시아 대표팀에 돌아가야 하는 신분이기 때문이죠. 물론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지원속에 첼시 사령탑을 계속 맡을 수는 있었지만 끝내 그가 택한 것은 러시아와의 의리 였습니다.

어쨌든 히딩크 감독은 첼시와 아름다운 인연을 맺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팀을 떠나게 됐습니다. 2000년대 이후로는 한국 대표팀을 시작으로 해서 PSV 에인트호벤, 호주 대표팀, 러시아 대표팀에 이르기까지 감독을 맡는 팀마다 승승장구를 거듭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첼시의 감독을 맡아 '영웅'이 된 히딩크 감독의 성공 신화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