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았지만 끝내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습니다. 박지성 선발 출전 및 맹활약, 그리고 맨유의 우승을 간절히 바랬던 국내 축구팬들에게는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박지성은 이날 4-3-3의 오른쪽 윙 포워드로 선발 출전하여 65분 동안 어느 정도 제 몫을 했지만 문제는 '바르셀로나 격파'를 위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전술이 패배를 자초한 것입니다.
우선, 맨유의 0-2 완패는 퍼거슨 감독의 전술적인 패인이 컸습니다. 이날 맨유는 경기 내용과 결과 모두 만족스럽지 못했을 뿐더러 팀 고유 컬러나 다름없는 화끈한 공격력 또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수비도 불안하고 공격도 제대로 풀리지 않으니, 그야말로 90분 동안 졸전을 펼친 것이었습니다. 특히 공격이 아쉬웠습니다. 박지성을 비롯한 공격진과 미드필더진은 바르셀로나 진영을 뚫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마치 나사 빠진 톱니바퀴 같았습니다.
맨유가 시즌 막판 4-3-3을 자주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은 '플래처-캐릭' 더블 볼란치 콤비가 공수 양면에 걸쳐 팀 밸런스를 안정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플래처는 좁은 공간에서 경기를 오밀조밀하게 풀어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맨유 미드필더 중에서 가장 4-3-3에 어울리는 선수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플래처가 지난 아스날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퇴장으로 결승전에 못나오면서 왼쪽 중원에 대한 수비력에 무게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퍼거슨 감독은 바르셀로나전에서 플래처가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4-3-3을 '고집' 했습니다. 플래처의 공백을 라이언 긱스가 메웠지만 이 선수는 공격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입니다. 애초부터 플래처의 마땅한 대안이 없었던 셈이죠. 그러더니 긱스가 사비 에르난데스의 패스를 좀처럼 끊지 못하면서 상대팀에게 왼쪽 공간에서 많은 공격 기회를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안데르손까지 부진하면서 팀의 중원이 이렇다할 무게감을 실어주지 못했고, 결국에는 바르셀로나의 압박에 밀리는 답답한 경기 운영을 펼쳤습니다. 최근 안데르손의 폼이 떨어진 것을 비롯해서 폴 스콜스가 90분을 소화하기 힘든 노장 선수라는 것 까지 더하면, 퍼거슨 감독은 4-3-3을 버리고 4-4-2 포메이션을 구사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럼에도 퍼거슨 감독은 4-3-3에 집착합니다.
만약 퍼거슨 감독이 바르셀로나전에서 4-3-3을 쓸 의지가 있었다면 박지성을 왼쪽 윙 포워드로 출전시켜야 했습니다. 미드필더진에서 플래처 공백에 대한 대안이 없다면 새로운 방도를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르셀로나의 왼쪽 공격이 전반전에 잘 풀리지 않았던 이유는 박지성이 실비뉴-이니에스타로 통하는 공격 길목을 철저히 차단했기 때문이죠. 전반 11분과 45분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스위칭하던 리오넬 메시의 돌파를 끊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수비적인 진가가 왼쪽에서 터졌다면 플래처의 공백을 메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박지성을 왼쪽에 배치했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왼쪽 윙 포워드 웨인 루니가 카를레스 푸욜를 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루니는 평소의 황소같은 저돌적인 움직임과 달리 푸욜의 밀착 견제를 좀처럼 뚫지 못했습니다. 푸욜의 정면쪽으로 파고 들다가 오히려 힘 싸움에서 밀린 것입니다. 반면 박지성은 상대의 견고한 압박 속에서도 넓은 활동량으로 커버하여 부지런히 최전방을 누비는 선수입니다. 빈 공간 창출이 능하기 때문에 바르셀로나 수비진의 압박을 뚫기 위해 사력을 다하면서 루니-호날두가 문전으로 치고 드는 과정에서 절호의 슈팅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퍼거슨 감독은 전반 40분 이후부터 4-3-3에서 4-4-2로 전환하여 자신의 전술적인 패착을 스스로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더니 후반 시작과 함께 안데르손을 빼고 테베즈를 투입하여 박지성을 왼쪽 윙어로 배치하면서 또 다시 전술을 바꿨습니다. 박지성이 왼쪽 측면에서 푸욜을 공략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팀 공격이 살아날 기미를 보였죠.
하지만 후반 20분에는 골을 넣기 위해 박지성을 빼고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를 투입하면서 공격의 밸런스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더니 4분 뒤에 메시에게 추가 실점을 허용하면서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죠. 상대의 견고한 압박을 뚫기 위한 공격 루트를 완성시켜 골을 넣으려면, 호날두-루니 중에 한 명을 빠른 시간안에 교체 시키면서 스콜스를 투입 시켰어야 했습니다. 퍼거슨 감독으로서도 팀의 상징인 호날두와 루니의 교체 여부를 놓고 고민했을지 모르지만, 골과 우승을 위해서라면 과감히 빼야 하는 용단을 내렸어야 했습니다.
만약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왼쪽 윙어로 놓는 4-4-2 전술을 구사했더라면 경기 내용 및 결과는 달라졌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맨유의 패배는 퍼거슨 감독 본인 스스로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플래처 없는 맨유의 4-3-3은 앙꼬 없는 찐빵과 같은 존재지만 그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차선책은 박지성 말고는 없었습니다. 물론 퍼거슨 감독과 맨유 코칭스태프, 선수들도 0-2 패배를 아쉬워하겠지만 생애 첫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은 박지성에게는 '모스크바 악몽'때 처럼 악몽같은 결과가 되풀이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