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감독이 지난달 20일 에버튼전 이후 박지성에게 3경기 연속 결장과 함께 '특별 휴식'을 부여한 선택이 결국 옳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선택은 맨유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이라는 최고의 결과로 이어졌으니, 어느 누구도 이러한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를 두고 일부 국내 여론에서는 박지성이 주전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냐는 추측을 했지만, 퍼거슨 감독의 전술 운용 구상에는 '박지성'이라는 이름 석자가 여전히 포함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박지성은 지난 2일 미들즈브러전과 6일 아스날전에서 2경기 연속골을 넣으며 자신을 끝까지 믿은 스승의 기대에 부응한 것과 동시에 지난 2005년 맨유 입단 이후 최고의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박지성의 오름세 행보는 끝없는 내림세에 빠졌던 지난달(4월)과 엇갈린 희비를 그려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8일 이라크전과 4월 1일 북한전을 치르기 위해 국내에 입국하고 잉글랜드 현지로 돌아가면서 컨디션이 저하되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이한 것이죠. 지구 반대편인 잉글랜드의 시차에 완전히 적응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문제는 지난 2월 이란 원정 이후 바쁜 일정을 소화했던 것이 누적이 되어 경기력과 컨디션, 체력을 좀처럼 정상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박지성은 지난달 8경기에서 산소탱크의 저력을 뽐내지 못했습니다. 3경기 연속 결장을 포함하여 총 5경기를 쉬었고 나머지 3경기에서는 선발 투입했지만 50~60분대 뛰었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국내 여론은 박지성의 입지를 놓고 많은 논란거리들을 쏟아올리는데 열을 올렸습니다. 주전 경쟁 탈락을 비롯해서, 퍼거슨 감독이 승리를 필요로 할때 제외되는 카드, 퍼거슨 감독이 지나친 휴식을 부여하고 있다 등등 펙트(Fact)와 전혀 맞지 않는 즉흥적인 추측들이 오갔습니다. 특히 한 언론사에서는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의 반쪽 옵션이 되나?´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쓰며 그의 낮아진 팀 내 입지를 집중 부각시켰죠.
하지만 우승과 직결된 시즌 막판에 퍼거슨 감독이 컨디션이 떨어진 선수를 적극 중용할리는 없습니다. 만약 박지성이 스쿼드가 얇은 팀의 주축 선수였다면 무리한 출전을 거듭하며 부상의 위험성을 키웠을지 모릅니다. 박지성은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안고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많은 경기를 뛸 수 없는 한계가 있는게 사실입니다. 맨유는 두꺼운 선수층을 기반으로 로테이션 시스템을 쓰기 때문에 박지성이 무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최근 3경기 연속 결장했던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사실, 박지성의 3경기 연속 결장은 선수 본인과 코칭스태프 사이에서 사전에 약속되었던 것입니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에게 충분한 휴식 기회를 제공하여 정상적인 컨디션을 되찾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한 것이죠. 원래는 지난달 30일 아스날전에 후반 막판 교체로 투입하여 2경기 연속 결장으로 끝날 수 있었지만, 경기 막판에 리오 퍼디난드가 예기치 못한 갈비뼈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는 점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미들즈브러전 종료 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최근 박지성에게 휴식을 부여한 것은 월드컵 최종예선을 위해 한국에 다녀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대표팀에서 지칠대로 지쳐서 돌아왔다. 약 2주 정도는 여유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했고 이제 그는 완전히 제 모습을 되찾았다"고 박지성에게 휴식을 부여했던 자신의 선택이 적중했음을 알렸습니다. 만약 박지성이 제대로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면 미들즈브러전과 아스날전 골 장면은 없었을지 모를 일이며, 지금 이 시점까지 평소의 경기 감각을 찾는데 어려움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박지성의 미들즈브러전 골은 자신의 위상을 크게 키우는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가 됐습니다. 4월 내내 팀 전력에 어떠한 공헌을 하지 못했지만 미들즈브러전에서 단 한 방에 자신의 강렬함을 쏟은 것이죠. 이는 아스날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 선발 출전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아스날전에는 국내 축구팬들에게 '과연 아스날전에 선발 출전할까?'라는 의구심을 받았지만, 퍼거슨 감독은 미들즈브러전에서 멋진 골 장면을 연출한 박지성을 한번 더 믿었습니다. 3경기 동안 쉬었기 때문에 아스날전에서 잘할거라 판단했던 것이죠.
사실 박지성은 맨유 4-3-3에 어울리는 카드가 아닙니다. 선수 개인이 지닌 공격력이 루니-호날두-테베즈 같은 다른 공격 자원에 비하면 위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아스날전 이전까지의 박지성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스날전 선발 라인업이 뜰때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팬들의 반응은 '과연 박지성이 4-3-3에서 좋은 활약 펼칠까?'라는 의구심에 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스날전에서의 박지성은 루니, 호날두 못지 않은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부지런한 움직임과 폭 넓은 활동폭으로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커버하면서 90분 동안 팀 공격의 활기를 쏟았죠. 자신의 저력을 믿고 기용한 퍼거슨 감독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기에 그에 걸맞는 보답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박지성이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많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해 맨유를 떠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하지만 부상 많은 박지성이 루니와 호날두처럼 많은 경기를 뛰기에는 한계가 따를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또한 팀의 측면 미드필더로서 한 경기에 쏟는 에너지가 다른 누구보다 많기 때문에, 몇몇 경기를 거르면서 산소탱크를 충전해야만 다음 경기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는 겁니다. 또한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충분한 휴식 기회를 얻을 수 있었기에 매 경기 매 순간마다 믿음직스런 모습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이는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팀 전력에 없어선 안될 선수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박지성은 올 시즌 4경기 연속 결장 1번, 3경기 연속 결장 2번을 기록했습니다. 휴식을 취하기 위한 차원에서 몇 경기를 거른 것이죠. 하지만 박지성의 입지는 팀 내에서 약화되거나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팀 내 전술적인 가치가 더 높아졌다고 봐야 합니다. 그것을 선수 본인이 미들즈브러전과 아스날전에서 스스로 증명했던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명장인 퍼거슨 감독의 혜안은 박지성이 최근 두 경기에서 귀중한 골을 넣을 수 있었던 긍정적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 맹활약의 일등공신으로 치켜세울 자격이 있습니다. 역시, 선수를 바라보는 명장의 '눈'은 다른 누구와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