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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아스날전 선발 출전 가능성은?

 

'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의 시즌 3호골 장면은 그야말로 멋졌습니다. 현지 방송으로부터 ´슈퍼 피니시(최고의 마무리)´라는 찬사를 얻을 만큼 강력한 임펙트를 남긴 골 장면이었기 때문이죠. 그것도 웨인 루니의 날카로운 전진패스를 받아 강력한 왼발 땅볼 슈팅으로 밀어 넣은 것이어서 팬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주특기인 공간을 찾아 움직이는 과정에서 넣은 골이라는 보너스 요소까지 포함하면 시즌 3호골이 더욱 값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박지성에게 우리들이 기대를 거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오는 6일 오전 3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아스날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선발 출전 여부입니다. 미들즈브러전 골 장면은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라는 이미지를 퍼거슨 감독의 뇌리에 심어준 것이기 때문에 아스날전 선발 출전 전망을 밝게 비추는 것임엔 분명합니다. 후반 30분 루이스 나니와의 교체 장면 또한 비슷한 맥락입니다. 이러한 시각은 박지성의 골 장면에 환호했던 축구팬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언론 기사에서도 은근히 기대하는 늬앙스의 내용을 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박지성 3호골=아스날전 선발 출전'이라는 여론의 반응에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감이 듭니다. '사람의 앞날 인생이 안갯속이다'는 말이 있듯, 박지성의 아스날전 선발 출전 여부는 아직 확정된게 없습니다. 물론 골 장면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 아스날전 출전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이 밝은 것임엔 틀림없지만, 단지 하나의 골 장면만으로 선발 출전을 지나치게 호언 장담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만약 아스날전 선발 라인업에 박지성의 이름이 빠진다면 자기 자신의 마음이 조금 민망하겠죠. 경기 전 선발 라인업이 뜨기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저도 축구팬이기 때문에 박지성의 아스날전 선발 출전을 바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욕심 같아서는 맨유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끄는 골을 넣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저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축구팬들이 바라는 희망사항일지 모릅니다.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좀 더 냉정하고 꼼꼼히 바라봐야 합니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18인 엔트리 제외 이전까지 '박지성 선발 출전'에 부푼 기대를 하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1년전 이야기를 떠올리면 지나친 호언장담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박지성의 아스날전 선발 출전을 섣불리 장담할 수 없는 결정적 이유는 퍼거슨 감독의 전술 운용 때문입니다. 맨유가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서로 다른 포메이션을 구사하는 것이 그 이유죠. 퍼거슨 감독은 프리미어리그에서 4-4-2를 적극적으로 쓰면서 지난달 23일 포츠머스전에서는 4-2-3-1 전형을 운용했습니다. 그런데 챔피언스리그에서는 3경기 연속 4-3-3 포메이션을 구사했습니다. 박지성이 4-4-2의 측면 미드필더로서 공수 양면에 걸쳐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라는 점을 떠올리면 미들즈브러전에서 평소의 경기력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박지성이 4-3-3 혹은 4-2-3-1에 적합한 카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두 개의 포메이션에서 공격 옵션들이 맹활약을 펼치려면, 선수 개인이 지닌 공격력이 무섭고 파괴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박지성이 지닌 개인 공격력은 루니-호날두-나니-테베즈 같은 다른 공격 옵션에 비하면 세기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퍼거슨 감독이 원톱이었던 루니를 왼쪽 윙어로 꾸준히 배치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도 지난달 30일 <스포츠 월드>와의 인터뷰에서 "맨유의 4-2-3-1 전환은 파괴력이 약한 박지성에게 반갑지 않은 전술"이라고 했었죠.

박지성은 한국 대표팀과 교토 퍼플상가, PSV 에인트호벤의 3톱 윙 포워드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팀인 맨유라면 사정이 다릅니다. 맨유는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모여 주전 경쟁을 펼치는 곳이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 전술에 맞는 최적의 선수가 선택될 수 밖에 없습니다. 4-4-2에서는 백업멤버 루이스 나니와 주전 경쟁을 벌여야 하지만(이제는 루니가 경쟁 대열에 합류해서 앞날이 어찌될지는 알 수 없지만) 4-3-3에서는 루니, 호날두 같은 팀 전력의 상징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아무리 미들즈브러전에서 멋진 골을 넣었다고 해서 루니-호날두와 같은 반열에 오르는 것은 아니며, 퍼거슨 감독은 그렇게 가벼운 사람이 아닙니다.

퍼거슨 감독이 챔피언스리그에서 4-3-3을 즐겨쓰는 이유는 8강과 4강에서 만난 포르투와 아스날이 중앙 공격을 즐겨 쓰는 팀들이기 때문입니다. 16강 1차전 인터 밀란 원정에서 4-2-3-1을 썼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죠. 중원에서 상대팀의 패스를 꽁꽁 차단하기 위해 세 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나란히 선발로 기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공격 옵션에 세 명을 배치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챔피언스리그는 프리미어리그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토너먼트 경기이기 때문에 전술에서 상대팀을 압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박지성은 인터 밀란 원정에서 왼쪽 윙어로 선발 출전했지만 더글라스 마이콘의 공격을 봉쇄하는 임무를 맡은것이어서 공격력 강화를 위한 투입으로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맨유가 지난 아스날과의 4강 1차전에서 4-3-3을 구사한 것은 1-0 스코어 이상으로 매우 성공적 이었습니다.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가공할만한 공격력을 봉쇄하기 위해 '안데르손-캐릭-플래처'로 짜인 중앙 미드필더 조합을 꾸린 것은 맨유가 경기 내내 주도권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또한 측면에서 중앙으로 대각선 침투하여 골을 노리려는 나스리-월컷의 활동 반경을 좁힌 것 또한 값진 소득이었죠. 이렇다보니 아스날 원톱으로 뛰었던 엠마뉘엘 아데바요르는 경기 내내 고립된 활약을 일관했습니다. 여기에 공격진에서는 루니-호날두가 측면에서 상대 수비를 흔들고 원톱 테베즈가 빠른 움직임으로 팀 공격에 활기를 쏟으며 가공할만한 공격력을 과시했습니다.

하지만 2차전은 1차전과 전혀 다른 내용의 경기력이 펼쳐질 것임에 분명합니다 .아스날이 맨유와의 1차전에서 4-2-3-1 작전에 실패한데다 로빈 판 페르시가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했기 때문에(만약 경기 당일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2일 풀럼전에서 두 골 넣은 니클라스 벤트너가 나올 수 있습니다.) 2차전에서는 '아데바요르-판 페르시(벤트너)' 투톱으로 짜인 4-4-2를 쓸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스날이 주로 4-4-2를 쓰는 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맨유도 4-3-3을 버리고 4-4-2 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박지성의 아스날전 선발 출전 가능성이 커집니다.

물론 루니의 왼쪽 윙어 포진과 테베즈의 선발 출전 여부는 박지성의 아스날전 선발 출전의 또 다른 변수 입니다. 루니는 자신이 뛰었던 최근 6경기 중에 5경기를 왼쪽 측면에서 활약했고 테베즈는 미들즈브러전에서 후반 9분에 교체 투입했지만 아스날전 출전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만약 퍼거슨 감독이 아스날 원정에서 골을 노리는 경기를 펼친다면 판타스틱4(루니-호날두-베르바토프-테베즈)를 과감히 선발 투입 시킬수도 있지만, 1차전을 1-0으로 이겼기 때문에 테베즈 또는 베르바토프가 빠질 수도 있습니다. 2차전 원정경기는 1-0 리드를 지키거나 무실점 경기를 펼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박지성의 선발 출전을 조심스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만약 박지성이 아스날전에 선발 출전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에게 혹은 퍼거슨 감독에게 실망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도 축구의 일부인데다 맨유는 박지성의 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맨유의 4-3-3, 4-4-2 채택 여부에 따라 선발 출전이 가려질 가능성이 큽니다.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각기 다른 포메이션을 구사하는 퍼거슨 감독의 전술 운용 속에서 박지성이 아스날과의 챔피언스리그 2차전이 열릴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 선발로 모습을 내밀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