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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의 3호골, 강력한 클래스 보여줬다

 

선수의 클래스란 어느 팀에서든, 어느 경기에서든 항상 변하지 않습니다. 반짝 활약 보다는 팀을 위해 꾸준히 제 몫을 다하면서 감독의 인정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하죠. 꾸준함 뿐만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기력의 발전을 거듭하고 또 발전하여 최고의 경기력을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죠. 그것이 자신의 클래스를 오랫동안 밝게 비출 수 있는 최적의 방법입니다.

'산소 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도 마찬가지 입니다. 맨유라는 세계 최고의 팀에서 자신의 클래스를 인정 받은 것만으로도, 팀의 주축 선수로 뛰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겁니다. 그런 박지성의 팀 내 입지를 놓고 4시즌 동안 일희일비의 반응을 나타낼 필요는 없습니다. 성실한 선수는 모든 감독이 사랑한다는 축구의 진리가 존재하듯, 박지성은 이미 프리미어리그와 맨유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힌지 오래 되었습니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여전히 박지성의 입지를 놓고 자극적인 표현을 쓰며 여론을 흔들었습니다. 물론 눈이 높은 축구팬들에게 좋은 시선으로 비춰지지 못했죠. 팬들은 박지성의 선발 출전과 결장 사이에서 길을 잃는 언론의 객관성 부족을 식상해 합니다. 며칠전 KBS TV <옐로우 카드>에서 한준희 해설위원과 이광용 아나운서가 박지성에 대한 일희일비의 반응을 놓고 "제발 박지성을 그만 내버려 두세요"라며 'Let it be'라는 노래를 불렀던 장면은 그를 바라보는 여론의 반응이 어떤지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냄비 성향이 짙은 가혹한 축구 환경 속에서 맨유의 4년차 선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대단할 따름입니다.

특히 지난달 30일 아스날전 종료후에는 '박지성, 퍼거슨의 반쪽 옵션으로 전락하나'는 언론 기사가 등장하면서 박지성의 입지 논쟁이 여론에서 뜨겁게 불거졌습니다. 물론 그 기사는 대다수의 축구팬들에게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이곳 다음 블로거뉴스에서도 '반쪽 옵션'에 대한 비판의 글이 두 개(스포로거님, 김지한님의 글)가 올라왔습니다. '반쪽 옵션'이라는 표현은 여론의 시선을 끌어 모으기 위한 용도로 쓰였을 뿐, 그가 그동안 맨유에서 쌓았던 클래스를 바꾸기에는 당연히 역부족입니다. 선수의 클래스는 어느 누구도 임의로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의 가치 및 입지가 3경기 연속 결장했다고 해서 퍼거슨 감독의 신임을 잃는 것은 아닙니다. 박지성은 올 시즌 4경기 연속 결장 1번, 3경기 연속 결장 2번을 기록했음에도 여전히 자신만의 클래스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큰 부상과 만만찮은 후유증에 시달리며 고생했던 시절에 비한다면 오히려 지금의 클래스가 더 아름답고 값집니다. 박지성 본인은 이번 미들즈브러전을 앞두고 <스포탈 코리아>와 인터뷰를 가지면서 "올 시즌이 맨유 입단 후 최고의 시즌"이라고 자평했습니다. 물론 자신을 오랫동안 끊임없이 괴롭혔던 부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았기 때문에 최고였다고 하지만, 부상이 없었기 때문에 올 시즌에 맹활약을 펼친 경기들이 많았던 겁니다. 그런 선수가 왜 반쪽 옵션 전락에 대한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따름입니다.

그런 점에서 박지성의 미들즈브러전 골은 국내 여론에서 제기되었던 팀 내 입지에 대한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결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문전에서 상대팀 선수와 경합하면서 웨인 루니의 날카로운 패스를 받아 왼발로 기가 막히게 골망을 가른 것이어서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습니다. 자신의 시즌 3호골 이자 3경기 연속 결장 이후에 넣은 골이었기에 더없이 반가운 골이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골 결정력 부족'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불식시킨 골 장면이었기에 연휴를 맞은 축구팬 그리고 국민들을 기쁘게 했습니다.

박지성의 골은 자신이 퍼거슨 감독의 '반쪽 옵션'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어서 더욱 반갑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경기에 나서면 다른 누구보다 맹활약을 펼치기 위해 이타적인 활약으로 헌신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며 올 시즌 맨유의 주전급 선수로 뛸 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골까지 넣으면서 팀 전력에 꼭 필요한 선수임을 퍼거슨 감독 그리고 국내 여론에게 확실한 임펙트를 남겼습니다.

물론 박지성이 골을 넣었다고 해서 루니-호날두 같은 주연급 선수들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박지성은 오로지 팀을 위해 헌신하는 조연일 뿐, 앞으로도 그 위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며 '위대한 조연'으로 오랫동안 남기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어쩌면 주연과 조연을 구분짓는 것도 무의미할지 모릅니다. 박지성 본인이 지닌 클래스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하다고 평가 받을 자격이 있으니까요. 박지성은 골을 넣는 선수가 아닌, 팀을 위해 몸을 내던지며 궃은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는 철저한 팀 플레이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박지성이 골을 넣을 필요가 없다고 해석하기에는 곤란합니다. 퍼거슨 감독이 그동안 입버릇처럼 "박지성은 골이 부족한 선수"라고 지적했듯, 골을 넣어야만 감독의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골이라는 존재를 논외하더라도, 박지성은 맨유의 주축 선수로 뛸 역량과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러나 선수 출전 권한은 어디까지나 감독이 쥐고있기 때문에 '골을 넣어야 한다'는 퍼거슨 감독의 말은 당연한 소리입니다. 박지성이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골 결정력 부족을 이유로 18인 엔트리에 들지 못했던 전례를 상기하면,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여 골을 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박지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골잡이에 가까운 '포스'로 골을 뽑아내고 있습니다. 지난 3월 풀럼전에서는 자신의 혼자 힘으로 드리블 돌파 과정에서 골을 넣었고 이번 미들즈브러전에서는 현지 방송으로부터 '슈퍼 피니시(최고의 마무리)'라는 찬사를 얻을 만큼 문전에서 강력한 임펙트를 남긴 골 장면이어서 팬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공간을 찾아 이동하는 과정에서 넣은 골이어서 더욱 값집니다. 그동안 세컨볼, 헤딩 경합 과정에서 넣은 골들이 여럿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득점 루트가 이전보다 다변화 되었습니다. 이는 박지성이 감독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클래스를 더욱 빛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미들즈브러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지난 아스날전까지 3경기를 몽땅 쉬었기 때문입니다. 국내 언론에서는 주전 경쟁 탈락과 반쪽 옵션, 지나친 휴식을 운운하며 낮아진 팀 내 입지를 부각시켰지만 퍼거슨 감독의 생각은 이들과 달랐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누구보다 더욱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많은 경기 출전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부상 및 체력 저하를 이유로) 지난달 A매치 차출 이후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했던 박지성에게 과감히 '특별 휴식'을 제공한 것은 당연히 칭찬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퍼거슨 감독의 혜안은 박지성이 미들즈브러전에서 웃을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박지성은 그동안 일정 수준 이상의 꾸준한 맹활약을 펼친 선수이기 때문에 그만한 클래스를 지니고 있던 것이며, 다른 반짝 선수처럼 어느 한순간에 걷잡을 수 없는 추락에 빠질 염려가 적습니다. 그런 박지성의 저력을 퍼거슨 감독이 믿고 있었기 때문에 과감히 휴식을 주었던 것입니다. 또한 3경기 연속 결장은 컨디션 향상을 위한 차원이어서, 이미 사전에 계획되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에 의해 절때로 '반쪽 옵션'이 될 수 없습니다. 최근 맨유로부터 4년 재계약에 구두 합의를 맺었던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아무리 박지성이 3경기 연속 결장할지라도 선수 본인이 지닌 클래스는 웬만해선 쉽게 변할 수 없습니다.

박지성은 미들즈브러전에서 팀의 2-0 완승을 확정짓는 골을 터뜨리며 팀 전력에 없어선 안될 선수임을 입증했습니다. 특히 자신의 골은 마치 불굴의 의지를 표현이라도 하듯, 강력한 한 방으로 자신의 저력을 힘차게 떨쳤습니다. 그는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세계 최고의 무대에 오르기까지 온갖 산전수전 다 겪으며 노력했던 선수이기 때문에 웬만해선 그동안 쌓았던 클래스가 한 순간에 밑으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어쩌면 '내년이면 30세'인 박지성의 클래스는 날이 갈수록 노련해지고 있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