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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의 새로운 경쟁자, 웨인 루니

 

'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의 포지션 경쟁자는 루이스 나니입니다. 두 시즌 동안 치열한 주전 다툼을 벌이며 선의의 경쟁 구도를 형성한 끝에 결국 박지성이 우위를 점했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지난달 30일 아스날과의 경기 전 인터뷰에서 나니에 대해 "올 시즌 박지성이 보여준 활약은 완벽할 정도로 뛰어났다. 그래서 나니가 계속해서 박지성의 활약에 밀렸다"며 그가 박지성의 존재감에 밀려 팀의 철저한 벤치 멤버가 되었음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4월 8경기에서 이렇다할 중용을 받지 못했습니다. 최근 3경기 결장을 포함 총 5경기를 쉬었고 나머지 3경기에서는 선발 투입했지만 50~60분대 뛰었을 뿐입니다. A매치 북한전 차출 이후 팀에 늦게 복귀하면서 시차 적응과 컨디션 회복에 어려움을 겪더니 경기력, 컨디션, 체력이 이전보다 많이 떨어지면서 부진했던 것이죠. 지난 3월 팀 내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맨유팬들에 의해 '3월의 선수'에 선정되었던 행보와 대조적입니다. 올 시즌 나니와의 경쟁에서 완전히 우위를 점했지만 주전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가 빠진 듯한 모습이었죠.

박지성은 올 시즌 맨유의 주전으로 뛰었습니다. 그동안 '약팀 전용-긱스 백업'으로 머물더니 지난해 4월 AS로마 원정이 터닝 포인트가 되어 중요한 경기때 마다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었고 올 시즌에는 더 확고했습니다. 지난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결장이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오히려 팀 내에서의 위상은 지난 시즌보다 더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웨인 루니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팀 내 입지에 어떠한 영향을 받지 않는 핵심 선수들과는 격이 다릅니다. 박지성은 로테이션 시스템 차원에 의한 주전 멤버 반열에 올랐던 것이었을 뿐이죠.

그런 박지성에게 새로운 포지션 경쟁자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루니 입니다. 맨유가 지난 3월 리버풀, 풀럼전에서 최악의 패배를 당했음에도 4월 8경기에서 6승2무의 놀라운 성적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에 하나는 루니의 성공적인 왼쪽 윙어 전환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루니는 지난달 11일 선더랜드전에서 4-4-2의 왼쪽 윙어로 선발 출전하더니 지금까지 왼쪽 윙어와 4-3-3의 원톱을 오가며 고른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선더랜드전에서는 전반 19분 왼쪽 측면에서 폴 스콜스의 헤딩 선제골을 빨랫줄 같은 크로스로 어시스트하여 팀의 2-1 승리를 공헌했습니다.

그동안 맨유 경기를 꾸준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맨유의 공격 전술이 최근에 성공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기존에는 4-4-2의 무한 스위칭을 근간으로 삼거나 호날두의 측면 돌파를 축으로 하는 드리블 돌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4-4-2에서 투톱 공격수가 최전방으로 빠르게 침투하는 좌우 윙어에게 많은 골 기회를 제공하거나(대표적인 경기가 지난달 26일 토트넘전) 4-2-3-1, 4-3-3 같은 포메이션으로 공격 옵션들 개인이 지닌 공격 역량을 최대화 시키는 콤비 플레이 전술을 두루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루니의 역량을 완전히 끌어 올리겠다는 퍼거슨 감독의 계산입니다. 그동안 호날두에 의존하는 공격력을 일관했지만 이제는 팀 전술의 초점을 루니쪽으로 쏠리게 했습니다. 지난 시즌부터 원톱과 왼쪽 윙어, 그리고 왼쪽 수비 뒷 공간까지 부지런히 뛰는 경기력을 발휘했던 경험이 있는데다, 이타적인 활약을 펼치면서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할 수 있는 다재다능함을 자랑하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의 전술 역량을 끌어 올리기에 충분했던 선수였던 것입니다.

그런 루니는 원톱 이외에도 왼쪽 윙어 혹은 윙 포워드로 뛰면서 팀 공격의 확실한 실마리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뛰었던 최근 5경기 중에 4경가 왼쪽 측면에서 뛰었던 경기여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박지성의 출전과 상당히 밀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26일 토트넘전에서는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투톱 공격수에서 왼쪽 윙어로 전환하여 2골 1도움을 올리며 0-2로 뒤지던 팀의 5-2 역전승을 이끌었으며 30일 아스날전에서는 원톱 테베즈를 뒷받침하여 왼쪽 측면을 부지런히 휘저으며 상대 오른쪽 풀백 바카리 사냐를 집중 공략 했습니다. 그뿐만은 아닙니다. 아스날전에서는 오른쪽 윙어 호날두와 활발한 스위칭을 하며 팀 공격의 윤활유 역할을 척척 해냈습니다.

얼핏보면 루니의 왼쪽 윙어 전환이 박지성의 컨디션 저하를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물론 맞습니다. 시즌 막판에는 우승과 직결된 중요한 경기들이 많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은 선수는 많은 출전 기회를 부여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박지성의 최근 3경기 연속 결장 또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입니다. 감독 입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팀의 우승 행보를 막을 수 있는 불안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빠른 시일내에' 수습할 수 있는 대체 카드가 절실히 필요 했습니다. 그 선수가 바로 루니였습니다.

그런데 루니의 컨디션은 시즌 후반들어 완전히 물이 올랐습니다. 그동안 잦은 부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이제는 그동안의 부침에서 벗어나 자신의 기량을 만개하고 있죠. 여기에 루니의 입지가 팀 내에서 절대적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박지성의 연속 결장은 단지 컨디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박지성이 맨유의 4-2-3-1, 4-3-3에서 매력적인 공격 옵션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그동안 블로그를 통해 여러 차례 강조했고 한준희 KBS 해설위원도 지난달 30일 <스포츠 월드>를 통해 "4-2-3-1은 파괴력이 약한 박지성에겐 반갑지 않은 전술"이라고 했습니다. 두 포메이션은 윙어 개인이 지닌 공격력이 무섭고 파괴적이어야 하기 때문이죠. 세계 최고의 팀인 맨유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루니가 앞으로도 왼쪽 윙어로 출전할 가능성은 큽니다. 최근 '베르바토프-테베즈' 같은 최전방 공격 옵션들의 경기력이 완전히 물이 오르면서 자신이 최전방에 올라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더욱이 루니는 원톱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화 시킬 수 있는 최적의 포지션이 아니기 때문에(퍼거슨 감독은 지난해 7월 데일리 메일을 통해 투톱에서의 쉐도우 자리가 최적의 자리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시즌 종료까지는 최전방보다는 왼쪽에서 모습을 내밀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맨유가 3경기 연속 4-3-3 전술을 구사하고 있어(반면에 프리미어리그에서는 4-4-2를 적극적으로 쓰면서 4-2-3-1까지 혼용하고 있죠.) 루니의 역량을 뒷받침하는 공격력이 무르익을 전망입니다. 박지성으로서는 팀의 새로운 공격 전술 속에서, 무언가의 확실한 반전 카드를 꺼내들어야만 합니다.

박지성과 웨인 루니. 주 포지션은 다른 선수들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포지션에서 경쟁 체제를 그려가고 있습니다. 두 선수의 경쟁을 유도한 퍼거슨 감독은 자신이 즐겨 구사하는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을 통해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을 끌어 올리기로 유명한 지도자입니다. 이러한 경쟁 체제는 선수의 경기력 발전은 물론 팀을 강하게 만듭니다. 경쟁 대열에서 도태되면 '긱스 후계자'였던 나니처럼 철저히 벤치를 지키게 됩니다.

그런 박지성은 올 시즌 나니와의 주전 경쟁에서 이겼지만, 루니라는 새로운 경쟁자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또 한 번 확실히 끌어 올려야 합니다. 베르바토프-테베즈의 활약 여부가 변수겠지만, 루니의 왼쪽 윙어 출전이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질 것임에 분명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예전의 컨디션을 되찾는 것이 절실할 뿐입니다. 그동안 어려운 고비를 잘 이겨냈던 박지성이기에 잘해낼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