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4월 8경기에서 6승2무를 기록했습니다. 지난달 리버풀전과 풀럼전에서 1-4, 0-2의 패배의 위기를 딛고 승률 75%의 성적을 올린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끕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리버풀의 끈질긴 추격 속에서도 여전히 1위를 달리고 있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는 라이벌 아스날을 1-0으로 꺾고 결승 진출 티켓 획득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공수 전반에 걸쳐 경기력이 무르익고 있어 앞으로도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맨유의 오름세 행보와는 다르게, '4월 사나이'였던 박지성의 맹활약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습니다. 지난달 맨유팬들이 선정한 '3월의 선수'에 오르며 팀내 위상을 크게 끌어올렸지만 이번달에는 3경기에만 모습을 내밀었습니다. 3경기 모두 선발로 투입되었지만 50~60분대에 경기력 및 컨디션 저하로 교체된 것이어서 팀 전력에 이렇다할 공헌을 하지 못했죠. 이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아스날과의 경기 전 루이스 나니의 거취를 두고 "올 시즌 박지성이 보여준 활약은 완벽할 정도로 뛰어났다. 그래서 나니가 계속해서 박지성의 활약에 밀렸다"라며 박지성의 존재감을 인정했지만, 현실은 차갑고 냉정했습니다.
그런 박지성은 지난 23일 포츠머스전 부터 이번 아스날전까지 3경기 연속 선발 라인업에 빠졌습니다. 포츠머스전과 26일 토트넘전에서는 18인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고 아스날전에서는 후보 명단에 포함되었죠. 특히 아스날전은 당초 박지성의 선발 출전이 예상되었던 경기였지만 팀 전술(4-3-3)의 이유로 베스트 일레븐에 빠졌죠. 제가 며칠전 맨유-FC포르투전을 통해 강조했던 것 처럼, 박지성은 맨유 4-3-3에 적합한 카드가 아닙니다. 또한 4-4-2에서는 백업 멤버 루이스 나니와 경쟁해야 하지만, 4-3-3이라면 웨인 루니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개인 공격 역량이 팀 내 톱클래스인 선수들과 선발을 다투어야 하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박지성의 내림세 행보는 한달 전 A매치 차출 후유증 때문이었습니다. 박지성은 차출 이전까지 공수 양면에 걸쳐 제 실력을 발휘하며 '3월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지만, 차출 이후에는 팀에 늦게 복귀하면서 시차 적응과 컨디션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더니 8일 포르투전과 11일 선더랜드전 부진까지 겹치면서 아직까지 최적의 몸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물론 시즌 초반이나 중반이었다면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여 실전 감각을 되찾는데 주력했을지 모르지만, 우승 경쟁이 치열한 시즌 막판에는 컨디션이 좋은 선수들이 선발에 자주 중용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박지성의 아스날전 및 3경기 연속 결장은 한달 동안 누적된 컨디션 저하 때문이었던 겁니다.
그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박지성을 대하는 일부 언론들의 성급한 보도였습니다. 그동안 국내 언론에서는 박지성이 2~3경기 연속으로 빠질때마다 '위기'라는 단어를 운운하며 팀 내 입지가 축소되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습니다. 최근에는 '지나친 휴식', '너무 쉰다'라는 즉흥적인 표현까지 등장할 정도로 박지성 입지에 대한 이런 저런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한마디로 박지성을 흔들겠다는 것이죠. 물론 박지성의 입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기사들은 축구팬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눈이 높은' 축구팬들은 더 이상 박지성의 입지와 관련된 기사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박지성의 입지를 논하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맨유에서 네 시즌 동안 활약하면서 퍼거슨 감독의 신뢰를 얻은데다 어느 정도의 팀 내 위상을 심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체격이 평범한 동양인 선수가 세계 최고의 팀으로 꼽히는 맨유에서 그 정도의 반열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그동안 맨유에서 큰 부상으로 부침에 시달린데다, 경기를 뛸때마다 남들에 비해 많이 뛰면서 체력 소모가 컸기 때문에 거의 매 경기마다 선발에 투입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박지성은 지금까지 맨유의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했으며 로테이션 시스템에 의한 주전 멤버로 뛰었을 뿐입니다. 맨유는 다른 팀 처럼 베스트 일레븐 체제가 아닌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박지성의 연속 결장은 절때로 '지나친 휴식'이 될 수 없습니다. 박지성은 며칠전 자신의 다큐멘터리에서 "무릎 수술을 3번 밖에 받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특히 '3번 밖에'라는 말을 강조하더군요. 그러면서 자신의 왼발 발목에 금이 새겨진 자국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종횡무진 뛰고 있는게 믿겨지지 않더군요. 수많은 부상 속에서도 어려움을 딛고 경기에 뛰고 있다는 것이 그저 대단할 따름입니다. 그에게 호날두처럼 거의 매 경기에 선발 출전하기를 원하고 그에 걸맞는 활약을 기대하는 것, 그리고 꾸준한 골을 바라는 것은 정말 지나치고 가혹한 겁니다. 퍼거슨 감독은 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수 생활 오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일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박지성이 다시 비상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충분하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4월 5일 AS로마 원정을 통해 부상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지난해 9월 21일 첼시전에서는 선제골을 넣으며 자신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결장시켰던 퍼거슨 감독의 코를 납작하게 눌렀습니다. 지난해 11월 8일 아스날전에서는 팀의 패배 속에서도 경기 종료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을 발휘하며 그 이후부터 두달동안 거의 매 경기마다 선발로 뛰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언급한 경기들은 맨유에게 있어 중요한 경기였습니다. 일부 언론과 팬들이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에 의해 맨유의 승리가 필요할 때마다, 중요한 경기마다 제외되는 카드'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렇게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물론 중요한 경기에서는 제가 언급한 경기보다 더 많이 뛰었죠.
박지성은 그동안 팀 내에서의 성실한 활약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 받았으며 적지 않은 시련까지 잘 이겨냈습니다. 해외 진출만 올해로 10년차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산전수전 다 겪었으며 그만한 노하우도 풍부합니다. 또한 자신이 현재 주어진 고비를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지 우리들보다 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경기력 저하 및 3경기 연속결장에 대한 순탄치 않은 행보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자기 싸움일 뿐이며, 박지성은 지금까지 잘 이겨냈습니다.
맨유는 엄연히 세계 최정상급의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속한 팀이자 세계 최고의 팀입니다. 그런 팀에서의 로테이션 경쟁은 당연한 것이며 박지성도 네 시즌 동안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박지성 개인이 지닌 역량이 루니-호날두-테베즈-베르바토프 같은 '맨유 판타스틱4'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3경기 연속 결장하는 현실은 당연히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박지성은 맨유와 안맞는다'고 주장하지만, 박지성은 PSV 에인트호벤의 붙박이 주전 선수로서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며 배우기를 원했던 선수였을 뿐입니다. 이러한 박지성의 도전 정신 만큼은 절때로 폄허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초심을 지금까지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면, 그는 여전히 '맨유 잔류 및 재계약'을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올 시즌에는 '만년 벤치멤버'였던 대런 플래처가 팀의 확고한 주전 선수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동안 몇 시즌 동안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 지난해 여름 이적을 고려했지만 퍼거슨 감독의 만류로 잔류했던 것이죠. 그러던 그가 올 시즌에 이르러 자신의 기량을 완전히 꽃피웠습니다. 플래처도 완전히 성공했는데 박지성도 못할게 없습니다. 어쩌면 올 시즌 중반 혹은 지난달 '3월의 선수'로 선정 되면서 이미 그 꿈을 이루었을지 모르죠. 이는 박지성이 지닌 저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퍼거슨 감독은 경기 출전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기로 잘 알려진 지도자이며 팀을 위해 헌신하여 노력하는 선수를 좋아합니다. 그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박지성입니다. 박지성에게는 자신의 위상을 다시 한 번 끌어 올릴 기회가 분명히 올 것입니다. 맨유의 올 시즌 마지막인 5월 일정이 빠듯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기회는 빨리 찾아올 겁니다. 짧게는 이번 주말 미들즈브러전이 되겠죠. 비록 아스날전을 포함해서 3경기 연속 결장했지만, 박지성의 열정은 여전히 꺼지지 않았으며 다시 비상할 것임이 틀림 없습니다. 그래서 박지성을 또 믿고 싶습니다. 그는 의지와 불굴, 그리고 성실을 모두 상징하는 한국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