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

첼시 EPL 우승, 더 이상 '꿈이 아닌 이유'

 

"나는 올 시즌 개막 이전에 첼시를 프리미어리그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았고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없다"

로이 킨 전 선더랜드 감독은 지난해 11월 2일 잉글랜드 스포츠 채널 <ITV>와의 인터뷰에서 첼시를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의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았습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스콜라리 체제가 순항을 거듭했기 때문에 우승 자격이 있는 팀으로 분류를 했던 것이죠. 이후 첼시는 거듭된 성적 부진으로 추락을 거듭했고 지난 2월 리그 선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 승점 10점 차이로 뒤진 4위에 머물면서 감독 교체를 단행했습니다. 지난 시즌 친정팀 맨유의 우승을 예상했던 킨의 '예언'이 적중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첼시의 임시 사령탑을 맡던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첼시의 리그 우승 여부는 비관적일 것으로 보였습니다. 잉글랜드 공영방송 <BBC>는 지난 2월 13일 <히딩크 감독이 첼시에서 몇 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까?>라는 설문조사를 했지만 75%가 우승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나타냈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도 2월 19일 <유나이티드 리뷰>를 통해 "히딩크 감독이 오더라도 첼시의 (리그) 우승은 힘들 것이다"는 전망할 만큼 첼시의 리그 우승 가능성이 어려웠습니다. 히딩크 감독이 첼시 사령탑을 맡은 시기가 늦지 않았느냐는 것이 공통된 시각 이었습니다.

첼시의 우승이 더 힘들었던 이유는 '맨유의 벽'이 너무 높았기 때문입니다. 맨유가 지난해 12월 26일 스토크 시티전 부터 지난달 4일 뉴캐슬전까지 리그 11연승을 기록하며 거침없는 선두 질주를 펼치면서 '레드 데블스(맨유의 애칭)'의 리그 3연패가 무난한 듯 했습니다. 여기에 포백은 지난해 11월 15칠 스토크 시티전 부터 지난 2월 19일 풀럼전까지 리그 13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고 골키퍼 에드윈 판 데르 사르는 리그 1310분 연속 무실점을 기록할 정도였죠. 지난달 14일 리버풀전 1-4 대패 이전 까지만 하더라도 맨유의 리그 3연패는 '떼 놓은 당상' 이었습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우승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2월 13일 선수단 상견례에서 "맨유와의 승점 차이가 10점 벌어졌지만 예전의 경우나 다른 리그의 예를 보면 시즌 막판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법이다"며 역전 우승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수들에게 전파했습니다. 첼시가 현실적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는 대회는 UEFA 챔피언스리그와 FA컵 같은 토너먼트 무대였지만, 항상 승리에 배고팠던 히딩크 감독에게는 리그 우승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히딩크 감독의 예지는 그대로 들어 맞았습니다. 승점 64점(19승7무5패)으로 68점(21승5무4패)의 맨유를 4점 차이로 추격하게 된 것이죠. 두달 전 10점으로 벌어졌던 승점 차이를 6점이나 좁혔습니다. 맨유가 아직 1경기를 덜 치른데다 리버풀이 승점 67점(19승10무2패)으로 추격하고 있지만, 첼시도 충분히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여건을 충족 했습니다.

물론 우승권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는 팀은 맨유와 리버풀입니다. 그러나 두 팀은 그동안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선수들의 체력이 처지더니 최근 경기력이 저하되는 문제점을 나타내면서 서로 우승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맨유는 최근 4경기에서 1승1무2패(챔피언스리그 포르투전 포함)로 부진한데다 10실점에 선수단 줄부상으로 신음하면서 총체적인 부진에 빠졌습니다. 웬만한 유럽 명문 클럽보다 더 많은 일정을 소화했던 '누적 요인'에 발목 잡히는 바람에 그동안 오름세를 거듭했던 리듬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리버풀은 A매치 데이 이후에 가진 최근 두 경기에서 저조한 경기력을 일관하고 있습니다. 지난 5일 풀럼전에서 20개의 슈팅을 '난사'하고도 경기 종료 직전 요시 베나윤의 결승골로 간신히 승점 3점을 챙기더니 9일 첼시전에서 1-3으로 패하면서 경기력 난조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에이스' 스티븐 제라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이 리버풀의 장점이자 단점인데, 최근 제라드가 사타구니 부상이 재발한 것으로 알려진데다 선수들의 체력 고갈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우승을 장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반면 첼시는 맨유, 리버풀과 다릅니다. 물론 두 팀 못지 않게 많은 일정을 소화하는데다 로테이션이 비교적 활발하지 않은 문제점이 있지만 지금의 오름세 페이스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은 우승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첼시는 히딩크 감독이 부임한 이후 지금까지 11전 9승1무1패의 성적을 거두며 스콜라리 시절과 대조되는 행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첼시 현지 팬들이 '무리뉴와 히딩크는 동급'이라는 찬사를 내보낼 정도로 히딩크 감독의 마법 효과가 빛을 발하는 요즘입니다.

일각에서는 히딩크 감독의 마법을 단순한 '반짝'으로 바라보며 기적이 없을 것임을 예견했습니다. 하지만 히딩크호가 지금까지 하늘을 찌를듯한 오름세를 달릴 수 있었던 것은 팀의 살림꾼인 마이클 에시엔이 부상에서 복귀하면서 부터 였습니다. 스콜라리 체제와 히딩크 체제의 차이점은 에시엔의 존재 유무였기 때문에, 지금의 첼시가 에시엔을 주축으로 지금까지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무리뉴 체제에서 많은 우승을 이끌던 에시엔을 비롯해서 드록바-램퍼드-테리-체흐가 팀 전력의 중심이 되어 히딩크 감독의 마법을 돕고 있습니다.

에시엔이 건재한 첼시는 무리뉴 시절처럼 무결점에 가까운 팀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에시엔이 팀 전력의 중심을 잡아주면서 경기 주도권을 쉽게 장악할 수 있을 뿐더러 수비 집중력이 약해지는 고질적 약점을 만회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램퍼드-발라크 같은 미드필더들의 경기력이 살아나면서 아넬카(말루다)-드록바-칼루의 공격력이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비단 에시엔 뿐만은 아닙니다. 스콜라리 체제에서 외면받던 드록바는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 골을 몰아치며 '드록신'의 면모를 내뿜고 있습니다. 최근 8경기에서 5골을 넣으며 히딩크호의 순항을 이끌게 된 것이죠.

이러한 첼시는 선수단 전체가 단합된 움직임을 발휘하며 더욱 역동적이고 짜임새 있는 팀으로 거듭났습니다. 공격 속도는 빨라지고 수비에서는 좀처럼 빈틈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2000년대 중반 프리미어리그를 호령하던 무리뉴 시절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상대팀 전술에 따라 4-3-1-2, 4-3-3, 4-4-2로 변화할 수 있는 맞춤형 전술을 구사하며 거의 매번 상대의 허를 찌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페이스를 시즌 종료까지 유지하면 우승이라는 결실을 맺을 공산이 있습니다.

첼시는 오는 11일 저녁 11시 볼튼전을 시작으로(국내 방송국에서는 12일 오전 3시에 녹화 중계됩니다.) 에버튼, 웨스트햄, 풀럼, 아스날, 블랙번, 선더랜드 같은 팀을 상대하여 리그 우승에 도전합니다. 다음달 11일 '런던 라이벌' 아스날전에서 이기느냐에 따라 우승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부분 약팀과 상대하기 때문에 승점 관리에 힘을 얻을 전망입니다. 물론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맨유와 리버풀의 향후 행보가 최대 변수겠지만, 최근의 경기력을 놓고 본다면 첼시가 두 팀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히딩크 마법'을 앞세운 첼시의 리그 우승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지난 시즌 맨유의 우승을 맞췄던 킨의 예언이 올 시즌에도 적중할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