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마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를 둘러싼 지구촌 축구팬들의 최대 관심은 퀸투플(5관왕) 달성 여부 였습니다. 클럽 월드컵과 칼링컵 우승은 물론 프리미어리그 2위 리버풀을 승점 10점 차이로 따돌리고 1위를 질주하면서 5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것으로 기대를 모았기 때문이죠.
이러한 맨유의 행보는 시즌 전, 다른 명문 클럽보다 많은 경기와 대회를 치르는 불리함에 발목 잡힐 것이라는 현지 축구 전문가들의 반응을 뒤엎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지금의 맨유 멤버가 1998/99시즌 트레블(3관왕)을 달성했던 주역보다 더 강하다"며 자신의 제자들이 10년 전 제자들보다 더 훌륭한 성과를 거둘 것이라며 5관왕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죠.
그러나 시즌 종료를 불과 50여일 앞둔 현재, 맨유 앞날에 대한 먹구름이 잔뜩 끼었습니다. 지난달 14일과 22일 리버풀과 풀럼을 상대로 무기력하게 패하더니 지난 8일 포르투전 2-2 무승부로 삐걱거리며 승승장구를 거듭했던 지난날의 성과와 대조된 행보를 그려가고 있습니다. 지난 6일 아스톤 빌라전에서는 3-2의 역전승을 거뒀지만 몇몇 선수들의 극심한 부진과 느린 패스전개, 상대 공격수를 놓치는 허술한 마크와 집중력 등등 전체적인 경기 내용에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물론 맨유는 시즌 중반에도 빡빡한 경기 일정은 물론 선수들의 줄부상 여파로 '최대 위기설'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습니다. 지난 1월 25일 토트넘전 이후 프리미어리그 20개 팀 중에서 가장 많은 부상 선수(12명)를 보유했던 것이 그 발단이었죠. 그때는 퍼거슨 감독의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을 바탕으로 두꺼운 선수층을 골고루 활용하면서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칼링컵과 FA컵에서 약팀들을 상대했기 때문에 유망주들과 백업 멤버들의 출전 횟수가 늘어나면서 주전 선수들이 체력을 충분히 안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팀의 우승과 직결된 시즌 막판에는 다릅니다. 오랫동안 경기를 거듭할수록 선수들의 체력과 컨디션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퍼거슨 감독의 전술 운용에 커다란 골칫거리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많은 경기를 치르면서 에너지 소모가 많았던 '누적 요인'도 한 몫을 했죠. 최근에는 주축 선수들이 세계 각지에서 A매치를 치르면서 몸이 완전치 않습니다. 만약 맨유가 챔피언스리그와 FA컵 결승에 진출한다고 가정하면, 지난 6일 아스톤 빌라전을 시작으로 5월 28일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까지 50여일 동안 총 16경기를 치르는 살인 일정을 견뎌내야만 합니다. 아무리 강철 체력을 지닌 소유자라도 1주일에 2경기를 거뜬하게 소화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특히 박지성이 지난 8일 포르투전에서 체력 저하로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은 맨유 선수들의 현 상황이 어떤지를 대변합니다. 퍼거슨 감독은 경기 종료 후 "박지성을 보면 팀 전체의 컨디션이 어떤지 알 수 있을 것이다"고 박지성을 기준 삼으며 맨유 선수들의 체력과 컨디션이 저조하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그와 동시에, 앞으포 충분한 휴식 없이 많은 경기를 소화해야 할 맨유 선수들의 활약상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 것이죠.
지금이 시즌 중반이었다면 로테이션 시스템으로 충분히 위기를 넘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즌 막판에는 각 팀들의 순위 및 우승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주축 선수들의 경기 출전 횟수가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매 경기가 살얼음판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모두 중요한 경기이기 때문에 주축 선수들의 체력, 컨디션 저하는 물론 줄부상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입니다. 이미 리오 퍼디난드, 조니 에반스, 안데르손,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같은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진데다 웨인 루니의 몸 상태가 급격이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만약 또 다른 주축 선수들이 부상당하면 맨유에게는 커다란 전력 손실이 될 것입니다.
맨유 전력의 문제로 꼽히는 호날두의 부진과 수비진의 집중력 저하에 대한 '근본 원인'또한 과도한 일정 때문입니다. 호날두는 거의 매 경기에 선발 출전하는 '혹사'에 시달리면서 지난 시즌의 놀라운 활약을 좀처럼 뽐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15골을 넣으며 득점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지난 시즌 이맘때 즈음에 27골을 넣었던 것과 비교하면 턱 없이 부족한 수치입니다. 여전히 불안정한 골 결정력과 심한 기복, 동료 선수들을 활용하는 지능, 상대 선수들의 압박을 제치는 기교 등 전반적인 공격력이 지난 시즌보다 뒤쳐지면서 맨유 공격력에 꾸준한 공헌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비가 강하면 팀 전력이 좋아진다'는 축구의 진리처럼, 그동안 맨유가 순항을 거듭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강력한 수비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지난 2월 19일 풀럼전까지 리그 13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고 골키퍼 에드윈 판 데르 사르가 리그 1310분 연속 무실점을 기록할 정도로 '무결점 수비'의 진수를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맨유는 최근 4경기에서 10골이나 허용했고 특히 지난달 14일 라이벌 리버풀전에서는 1-4 대패의 망신을 당했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포르투전 종료 후 "최근 많은 골을 허용하고 있어 수비진을 점검해야 한다"고 했던 것은 맨유의 위기가 수비에서 비롯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에브라-오셰이(네빌)로 짜인 좌우 풀백의 경기력이 떨어진 것도 문제지만, 그동안 맨유 수비의 중심축으로 활약했던 네마냐 비디치의 경기력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것은 퍼거슨 감독이 되짚어 봐야 할 고민거리 입니다. 비디치도 호날두 못지 않게 많은 경기에 출전했던 선수이기 때문이죠. 최근들어 상대 공격수를 마크하는 집중력과 압박능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은 선수 컨디션에 문제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퍼디난드, 에반스, 브라운 같은 센터백 자원들이 부상으로 신음중인데다 오셰이와 네빌의 경기력도 이전보다 많이 떨어지면서, 어느 누구도 비디치를 대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비디치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지만 팀 내 사정상 여전히 많은 경기를 뛰어야만 하는 현실입니다.
맨유의 위기를 초래한 또 하나의 문제는 퍼거슨 감독입니다. 맨유에서 23년간 장기집권하면서 온갖 어려움을 잘 이겼음에도 최근들어 자신의 실수로 위기의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죠. 리버풀전과 풀럼전에서는 후반 중반에 어느 누구도 납득하기 힘든 선수교체를 단행하다 막판에 골을 허용하는 찬물을 끼얹고 말았습니다.
아스톤 빌라전 3-2 승리는 페데리코 마케다의 천금같은 역전골로 간신히 무승부 위기를 넘겼지만 포르투전에서는 그동안 맨유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4-3-3 변신을 꾀하면서 공격과 수비 모든 전력이 비틀어지는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특히 개인 공격력이 다른 공격 옵션에 비해 부족한 박지성을 윙 포워드로 올린 것은 퍼거슨 감독의 명백한 선수 기용 실수입니다. 3톱의 윙 포워드는 개인이 지닌 파괴적이고 무서운 공격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날 경기 초반부터 졸전을 거듭하다 전반 35분부터 4-4-2로 원상복구한 것은, 퍼거슨 감독 스스로 4-3-3이 잘못된 선택임을 겸허히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감독 스스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팀 전력에 어떠한 이득을 안겨줄 수 없습니다.
맨유에게 있어 시즌 막판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합니다. 올 시즌 목표인 5관왕 여부와 직결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어느 한 경기, 매 장면마다 소홀함이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과도한 일정과 선수들의 체력 저하 및 부상에 대한 염려, 퍼거슨 감독의 오판 등등 많은 불안 요소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현실 속에서 그토록 원하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물론 맨유는 저력이 있는 팀이기 때문에 충분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빠듯합니다. 이는 맨유가 5관왕은 커녕 '떡실신(떡이 될 정도로 녹아웃됨)'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5관왕이라는 해피엔딩으로 시즌을 마무리해야 할 퍼거슨 감독이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두고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