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 입니다.
지난 2월 성적 부진에 시달리던 첼시의 임시 사령탑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 감독의 '마법 본능'이 점점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우승권에서 멀어지던 첼시의 승승장구를 이끌더니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면서 두 대회 우승을 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이번 리버풀전에서는 그동안 안필드 원정에서 힘겨운 모습을 보였던 첼시의 승리를 이끌며 자신이 마법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의 첼시는 9일 오전 3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안필드에서 열린 2008/09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리버풀전에서 3-1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전반 5분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전반 38분과 후반 14분에 걸쳐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가 두 번이나 헤딩골을 작렬하는 멋진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그러더니 후반 21분 디디에 드록바가 팀의 승리를 확정짓는 쐐기골을 넣으며 승리의 미소를 머금게 되었습니다. 첼시는 홈에서 열리는 2차전을 비기거나 0-1로 패하더라도 4강에 진출하기 때문에, 이번 1차전 승리가 더욱 값졌습니다.
히딩크 마법, 안필드 원정에서 통했다
첼시 승리의 주역은 두 골을 넣은 이바노비치였지만 진정한 수훈갑은 히딩크 감독입니다. 그는 이번 안필드 원정에서 자신이 마법사라는 것을 리버풀 팬들에게 유감없이 과시하여 첼시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원정 1차전에서 3골을 넣은 것은 의외의 결과였기 때문에, 사실상 첼시가 4강 진출의 70~80%는 확정지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사실 1차전은 첼시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첼시는 안필드에서 열린 리버풀과의 역대 전적에서 75전 10승16무49패의 엄청난 열세를 보인데다 최근 다섯번의 리버풀 원정 경기에서도 단 1승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원정 4경기에서는 3무1패를 기록하여 원정에 약한 모습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리버풀은 최근 챔피언스리그 10경기 연속 무패행진과 프리미어리그 4연승의 오름세를 구가하는 등 선수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습니다. 특히 '제토라인' 제라드-토레스 콤비의 척척맞는 호흡은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톤 빌라도 막지 못했죠.
그래서 히딩크 감독에게는 자신의 마법 기질에 있어 최대의 고비가 이번 안필드 원정이었습니다. 지난 2월 첼시 사령탑 부임 이후 그동안 강팀과의 경기가 드물었기 때문에 자신의 마법이 중대 기로에 놓였던 셈이죠. 그동안 첼시가 안필드 원정에 취약했기 때문에,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자신이 마법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하려면 이번 리버풀전에서의 좋은 결과가 전제될 수 밖에 없었으며 결국 안필드에서 승리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첼시의 승리 비결은 히딩크 감독의 용병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리버풀 전술의 특징을 파악하여 그에 적절한 전술을 구사했던 것이 마법의 원동력이 되었던 셈입니다. 리버풀의 공격 전술이 '제토라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들을 꽁꽁 견제하여 실점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죠. '테리-알렉스' 센터백 조합은 전반 5분 토레스에게 골을 허용했지만 이후 85분 동안 두 선수의 발을 철저히 묶는데 성공했습니다. 여기에 이바노비치와 마이클 에시엔, 애슐리 콜까지 후방 수비에 가담하면서 '테리-알렉스' 조합을 적절하게 지원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수비 전술은 리버풀과 상대하는 어느 팀이든 충분히 구사할 수 있는 작전이죠.
정작 히딩크 감독이 노린 것은 '제토라인'으로 연결되는 공격루트를 차단한 것이었습니다. 리버풀의 왼쪽 측면을 맡는 '아우렐리우-리에라', '알론소-루카스'로 짜인 더블 볼란치 조합과 제라드 사이의 공간을 벌리는데 주력하면서 미드필더진과 제토라인의 물줄기가 통하지 않도록 비트는 작전을 구사한 것이었습니다. 에시엔이 중원을 활발히 움직이며 알론소-루카스 조합의 중앙 공격을 쉴틈 없이 차단하더니 미하엘 발라크와 살로몬 칼루가 오른쪽 라인에서 리버풀 공격을 끊으면서 제토라인의 공격력을 반감 시켰습니다.
평소보다 공격적인 전술 또한 리버풀의 허를 찌르기에 충분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그동안 공격보다 안정에 무게감을 실어주는 전술을 즐겨 구사했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이전의 양상과 대조되는 경기력을 펼쳤습니다. 콜과 이바노비치는 적극적인 오버래핑으로 말루다-칼루의 측면 공격에 힘을 실어줬고 에시엔과 발라크가 상대 문전을 자주 두드리면서 첼시가 적극적으로 공격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여기에 램퍼드의 날카로운 패싱력을 중심으로 리버풀의 포백과 '알론소-루카스' 조합 사이를 공략하는 공격 기회를 여러 차례 창출하여 리버풀을 흔들었습니다. 이는 안필드 원정에서 세 골을 퍼부을 수 있는 결정적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첼시의 완벽한 전술에 공략당한 리버풀은 토레스의 선제골 이후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른 시간에 골을 넣으며 승리를 예감하는 듯 했지만 미드필더진과 제토라인 사이의 유기적인 공격 패턴이 뜸해지면서 첼시 수비의 끈끈한 견제에 말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이바노비치에게 두 번이나 헤딩골 일격을 맞으면서 우왕좌왕했고 드록바에게 무너지면서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리버풀을 꺾겠다'는 히딩크 감독의 작전이 성공적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히딩크 감독은 부상으로 이번 리버풀전 결장이 유력시 되었던 드록바와 아넬카를 경기에 투입 시켰습니다. 드록바는 경기 내내 강력한 포스트플레이와 저돌적인 문전 돌파로 리버풀 수비진을 흔드는 맹활약을 펼쳤으며 아넬카는 후반 33분에 교체 투입되어 부지런히 문전을 휘저었습니다. 특히 히딩크 감독의 드록바 기용은 '부상 연막작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라운드에 복귀시킨 타이밍이 절묘했습니다.
그리고 조세 보싱와가 부상 당한 오른쪽 풀백 자리에 21세 영건 마이클 멘시엔이 아닌 센터백을 맡는 이바노비치를 기용한 작전 또한 성공적이었습니다. 이바노비치가 멘시엔보다 경험이 많고 듬직한데다 헤딩골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에 히딩크 감독이 주저없이 기용했고, 그동안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던 이바노비치는 두 골을 넣으며 히딩크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습니다.
첼시에게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안필드 원정 이었습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이에 개의치 않고 팀의 승리를 위한 적절한 작전과 선수구성, 그리고 수많은 팀에서 단련되었던 두둑한 배짱과 특유의 여유로 '리버풀 격파'를 위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리버풀의 상징인 안필드도 히딩크 감독의 마법을 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