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보기 드물었던 부진이었습니다. 그동안 일정 수준 이상의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면서 팀 전력의 '믿을맨'이라는 인상을 심어줬던 그였기에 이번 FC 포르투전에서의 활약상이 뜻밖이었습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경기에 임했던 그는 왜 이번 경기에서 부진했을까요.
'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8일 오전 3시 45분(이하 한국시간) 포르투와의 2008/09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포르투전에 선발 출전했으나 후반 13분에 교체 되었습니다. 그는 이날 맨유의 4-3-3 포메이션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더불어 좌우 측면을 활발히 스위칭하며 상대 문전을 두드리는 등 좌우 측면을 활발히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패스 성공률이 56%(41개 시도 23개 성공, UEFA 홈페이지 기준)에 그친 것은 자신의 움직임에 비해 비효율적인 공격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박지성의 부진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지난달 28일과 지난 1일 국내에서 A매치를 치른데다 오랜 시간 동안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서 팀에 늦게 합류했던 것이 컨디션 저하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는 시차 적응이라는 또 하나의 부담거리가 있었습니다. 한국-잉글랜드 사이의 시차가 크다보니 컨디션을 빠르게 회복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가졌던 A매치 이후의 맨유 경기에서 결장하거나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펼쳤던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며, 지난 6일 아스톤 빌라전 결장 또한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동안 박지성이 맨유 경기에서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적절한 체력 안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 체제에서 몇몇 경기를 거를 수 있었기에, 산소탱크 충전이 100% 완료된 상황에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는 최상의 컨디션이 아닌 상황에서 경기를 치렀기 때문에, '맨유 격파'를 벼르던 포르투 수비수들을 벗겨내고 동료 선수들과 유기적인 호흡을 발휘하기에는 몸이 따라주지 못했습니다.
포르투전에서는 전반전보다 후반전에서의 움직임이 활발했고 동료 선수들과 패스를 주고 받는 경우가 빈번했지만, 이를 역으로 받아들이면 경기 이전까지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포르투전을 중계했던 서형욱 MBC ESPN 해설위원이 전반 21분 박지성의 크로스가 부정확하게 향하자 "오늘 박지성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 쉬운 패스를 두번이나 놓치고 있다"는 말을 내뱉었던 것이 이를 대변해주죠. 결과적으로, 박지성은 포르투전을 치르기에는 몸 상태가 완벽하게 준비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퍼거슨 감독 입장에서도 박지성을 포르투전 선발 카드로 기용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지난 아스톤 빌라전에 결장한데다 앞으로 1주일에 두번씩 경기를 치러야 하는 살인적인 일정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에, 박지성을 포르투전에 꼭 출전 시켜야만 하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그의 몸은 감독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할 수 밖에 없었죠.
컨디션도 컨디션이지만, 맨유의 4-3-3 변신 또한 박지성의 부진을 부추겼습니다. 4-4-2를 근간으로 하는 맨유는 때로는 4-3-3, 4-2-3-1로 전환하면서 포메이션 다변화를 꿈꿨지만 이렇다할 성과 없이 모두 실패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번 포르투전에서는 그동안 침체되었던 분위기 전환을 위해 4-3-3의 변화를 시도했지만, 선수들의 역할 혼란으로 팀 전력이 우왕좌왕거리면서 전반 35분 이후부터 4-4-2로 원상복귀 했습니다.
특히 '스콜스-캐릭-플래처'로 짜인 미드필더 조합은 전반 35분 동안 중원에서 위치가 계속 중복되면서 패스 미스를 남발하는 문제점을 남겼습니다. 이렇다보니 포르투에게 역습 기회를 허용한 경우가 많았고 박지성의 움직임마저 불필요하게 늘어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습니다. 가뜩이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그가 왼쪽 측면 수비 뒷공간, 중원으로 여러 차례 수비 가담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설령 그가 이러한 어려움을 딪고 100% 이상의 진가를 발휘하더라도 풀타임을 소화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박지성의 패스와 크로스는 시간이 갈수록 부정확하게 향하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전반 중반부터 패스가 끊어지는 아쉬움을 남기면서 포르투에게 여러 차례 공격 기회를 내주더니 후반 5분에는 하프라인에서 스콜스의 패스를 받는 타이밍을 놓치는 실수까지 범했습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이유 또한 컨디션 저하였죠. 제 아무리 출중한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라 할지라도 컨디션이 정상 수준에 있지 못한다면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없습니다. 올 시즌 무리한 경기 출전을 거듭하고 있는 호날두가 지난 시즌 활약상에 미치지 못했던 것도 컨디션과 밀접하죠.
그리고 박지성은 맨유의 4-3-3 카드에 어울리는 카드가 아닙니다. 4-3-3에서 스리톱의 핵심은 선수 개인이 지닌 공격력이 필수인데, 박지성이 지니고 있는 개인 공격력은 무서운 파괴력을 자랑하는 다른 공격 옵션에 비해 부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맨유의 벤치 멤버인 루이스 나니에 비해 공격 포인트가 부족하고 상대 수비를 뒤흔드는 개인기까지 부족할 정도죠. 물론 PSV 에인트호벤 시절에는 4-3-3에서 팀 공격의 에이스 역할을 맡았지만 에인트호벤과 맨유의 클래스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게다가 박지성이 에인트호벤과 맨유에서 맡는 역할 또한 서로 다르죠.
박지성 스승인 이학종 수원공고 감독은 지난해 12월 20일 <조이뉴스 24>와의 인터뷰에서 "박지성이 개인 능력에서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는 얼마나 잘해요. 지성이에게는 그런 것을 활용할 수 있는 머리가 있어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는 박지성 개인이 지닌 공격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박지성이 지난해 9월 13일 리버풀전에서 결장했던 원인 또한 맨유의 4-3-3 변신과 밀접했습니다. 이날 맨유는 '루니-베르바토프-호날두'로 짜인 스리톱을 구사하여 전방을 흔드는데 주력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루니와 호날두는 2000년대 중반 뤼트 판 니스텔로이를 중심으로 했던 '킹 뤼트 시스템'에서 좌우 윙 포워드로 뛰었던 선수들입니다. 어찌보면 퍼거슨 감독이 포르투전에서 4-3-3을 구사하면서 박지성을 윙 포워드로 배치했던 것은 거의 '모험'에 가까웠던 카드나 다름 없었습니다. 만약 박지성이 호날두와 나니, 루니, 테베즈 처럼 출중한 팀 전력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공격력을 지녔다면 이번 포르투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을지 모르죠.(컨디션을 논외로 하자면 말입니다.)
박지성의 패스가 56%에 그쳤던 것도 4-3-3과 밀접합니다. 4-4-2에서는 짧고 정교한 패스를 통해 패스 성공률을 높였지만 4-3-3에서는 동료 선수들과의 간격이 벌어지는 장면이 늘어나면서 패스가 떨어질 수 밖에 없었죠. 더욱이 크로스를 올려야 하는 빈도가 늘어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측면에서 몇 차레 부정확한 크로스를 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워낙 크로스에 강점을 발휘했던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겁니다. 41개의 패스를 시도하여 23개만 성공했으니, 4-3-3에 완벽히 녹아들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맨유의 4-3-3 변신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은, 그동안 맨유가 4-3-3으로 좋은 결과를 거두었던 적이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몇몇 경기에서는 쉽게 통할 수 있었지만 중요한 길목에서 선수들의 평소 활약이 따라주지 못하면서 무너졌던 적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맨유는 어디까지나 4-4-2를 근간으로 하는 팀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박지성이 스리톱의 윙 포워드로 뛰는 일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지닌 공격력보다 동료 선수들의 공격력을 도와주기 위한 이타적인 활약에 힘을 쏟았던 박지성이 최적의 활약을 펼칠 수 있는 곳은 4-4-2의 측면 공간이었습니다.
박지성은 이번 포르투전에서 부진했지만 워낙 저력이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컨디션을 서서히 되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포르투전 출전으로 실전 감각을 키웠던 만큼, 오는 11일 선더랜드전 혹은 16일 포르투와의 8강 2차전에서 좋은 경기력을 펼칠 것으로 기대됩니다. 포르투전 부진을 약으로 삼아, 앞으로 시즌 종료까지 팀에 헌신하는 경기를 펼치면서 '퍼거슨 감독이 원하는' 공격 포인트를 기록할 수 있는 활약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