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선더랜드전에 출전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사흘전 FC 포르투전에서 A매치 차출 여파로 피로 누적에서 말끔히 벗어나지 못했는데 선더랜드전에서 최상의 경기력으로 싸운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가 컸습니다. 선더랜드전과 FC포르투전에서 휴식을 취하여 체력과 컨디션을 정상 수준으로 되찾기 위한 시간적 여유가 필요했던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1주일에 2경기를 치러야 하는 맨유의 빡빡한 일정 속에서 이러한 여유를 취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동안 일정 수준 이상의 꾸준한 맹활약을 펼친데다 맨유팬들이 뽑은 3월의 선수에 선정될 정도로 지난달까지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팀의 우승 여부와 직결되는 중요한 시기에 거의 매번 모습을 내밀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루이스 나니와 라이언 긱스의 폼이 시즌 막판들어 내림세에 빠진데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기복이 심한 경기력을 일관하면서 '믿을맨'이었던 자신의 활용 빈도가 높은 것은 당연합니다.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체력과 컨디션이 좋지 않은 박지성을 무리하게 출전시키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야속할 수 밖에 없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그동안 선수 보호 차원에서 박지성이 중요한 경기에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몇몇 경기를 거르게 하는 체력적인 배려를 했습니다. 이러한 패턴대로라면 선더랜드전에 결장하거나 후반전에 교체 투입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더랜드전에서 웨인 루니가 4-4-2의 왼쪽 윙어로 선발 출전했던 것은 윙어로 쓸 수 있는 자원이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분명 선더랜드전 선발 출전은 무리였지만, 앞으로 많은 경기를 치러야 하는 팀의 사정상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박지성의 선더랜드전 부진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포르투전 이후 몸 관리를 철저히 하더라도 정상적인 컨디션을 회복하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에 선더랜드전에서 몸이 무거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맨유 선수단 전체적으로 평소에 발휘했던 경기력을 마음껏 뽐내지 못하고 저조한 활약상을 일관했지만, 그 중 한 명이 '강철체력'의 소유자였던 박지성이었던 것은 맨유의 체력적인 문제가 우려될 수 밖에 없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포르투전 종료 후 "박지성을 보면 팀 전체의 컨디션이 어떤지 알 수 있다"고 말한 것이 그 예 입니다.
이날 박지성의 경기력은 지난 포르투전 처럼 팀 공격에 어떠한 실마리를 열어주지 못했습니다. 평소에 비해 움직임이 둔해지고 활동폭까지 좁아지면서 공을 터치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죠. 후반 23분 교체되기까지 17개의 패스를 시도했는데(13개 성공) 지난 포르투전에서 후반 13분 교체되기까지 41개의 패스(23개 성공)를 시도했던 활약상과 대조적이었습니다. 포르투전에서 56%에 그친 패스 정확도가 문제였다면 선더랜드전에서는 패스 횟수가 눈에 띄게 부족했죠. 태클은 4번 시도하여 3번이나 실패했으니, 수비에서도 좀처럼 인상적인 모습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박지성은 지난달 말 A매치 차출 이전과 이후의 활약이 전혀 대조적입니다. 3월 경기에서는 공수 양면에 걸쳐 제 실력을 발휘하며 '3월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팀의 부진 속에서도 자신을 향한 호평이 끊임없이 쏟아졌죠.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지난날의 영광이었을 뿐입니다. 박지성은 A매치 여파로 팀에 늦게 복귀하면서 시차 적응과 컨디션 회복에 주력했지만 아직까지 최적의 몸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해야 할 팀의 여건도 아쉽지만, 그보다 더 안타까운것은 그동안 하늘을 찌를듯 했던 자신의 종횡무진 활약이 종적을 감췄다는 겁니다.
이러한 행보는 박지성 뿐만이 아닙니다. 이영표(도르트문트)는 최근 발등 부상으로 2~3주 동안 경기에 출전할 수 없으며 조원희(위건)는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면서 일찌감치 시즌아웃 되었습니다. 한국-유럽간의 시차와 10시간이나 되는 이동거리, 그리고 국내에서 A매치 두 경기를 치러야 하는 체력적인 부담이 세 명의 유럽파에게 좋지 않은 악영향을 안겨주게 된 것입니다. 조원희는 북한전에서 무리하게 출전했던 것이 문제였지만, 박지성과 이영표는 올 시즌 팀에서 많은 경기를 소화했던 것이 '누적' 되어 시즌 막판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의 부진 원인을 무조건 일정탓으로 돌리는 것은 무리입니다. 박지성 뿐만 아니라 맨유의 주축 선수들도 지친 몸을 이끌고 그라운드를 밟고 있습니다. 맨유의 일정이 다른 팀들에 비해 빡세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선수 각자가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맨유의 시즌 막판 희비 및 선수 개인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축구 선수는 어디까지나 그라운드에서 발휘하는 실력으로 말하기 때문에, 박지성이 시즌 막판 슬럼프에 빠지지 않도록 열심히 정진하기 위해서는 컨디션 향상은 물론 경기력 개선에 대한 의지가 요구될 수 밖에 없습니다.
현재 박지성의 경기력에는 뚜렷한 장점이 묻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몸도 문제지만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뛸 수 있는 움직임과 활동량이 저하되면서 동료 선수의 공격 기회를 돕는 이타적인 활약에 대한 효용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그동안 짧고 정교한 패스로 많은 재미를 봤지만 이제는 패스 마저 부정확한데다 시도 조차 활발하지 않습니다. 돌파도 제대로 되지 않고 수비시의 집중력이 조금 흐트러졌으니, 그동안 오름세를 거듭했던 포스를 되찾아야만 슬럼프에 대한 우려를 떨치는 것과 동시에 팀 공격에 절대적인 공헌을 할 수 있습니다.
박지성으로서는 휴식을 통해 지쳤던 몸을 회복시키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나, 팀의 사정상 그럴 여건이 아니기 때문에 단 1~2개의 장면이라도 임펙트가 강렬한 경기력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나니-긱스의 폼이 올라오면 무리하게 출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본인의 체력 및 컨디션 관리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재 박지성이 처한 문제는 오직 본인의 문제가 아닌 복합적인 상황에서 처해진 문제이기 때문에,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본인의 의지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다른 불안 요소까지 잠재우며 부진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부상이 많았던 전적이 있는 만큼, 자신에 대한 퍼거슨 감독의 선수 기용이 좀 더 유연하길 바랄 뿐입니다.
그런 박지성에게 있어 시즌 막판은 중요합니다. 맨유가 최근 프랑크 리베리(바이에른 뮌헨) 안토니오 발렌시아(위건) 니콜라스 베르톨로(벤필드)같은 뛰어난 재능을 지닌 윙어들에 대한 영입 눈독을 들이고 있어, 다음 시즌 팀 내 입지에 별 다른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시즌 막판에 자신의 존재감을 퍼거슨 감독에게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임펙트가 필요합니다.
그동안 팀 내에서의 성실한 활약으로 진화를 거듭했고 적지 않은 시련을 잘 이겨냈던 그였기에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고비를 충분히 넘었으면 하는 바람이며, 지금의 부진이 슬럼프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금의 고비를 슬기롭고 빠르게 넘겨 앞으로 자신의 축구인생이 더 빛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