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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나니가 잘해야 박지성이 더 잘한다

 

'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은 국내에 이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서 '강철 체력의 소유자'로 명성을 떨쳤던 선수입니다. 넓은 활동량과 부지런한 움직임을 앞세워 그라운드를 폭발적으로 질주하는 장점을 지녔지만 90분 동안 지친 기색 없이 경기에 임할 수 있는 튼튼한 체력이 있었기에 오랫동안 뛰어다닐 수 있었습니다. 한 경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으며 모든 열정을 다하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자 저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의 강철 체력은 시즌 막판인 현재, 완전히 바닥난 상황입니다. 얼마전 국내에서 가진 A매치 두 경기를 뛰고 돌아오면서 체력과 컨디션이 정상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8시간이 넘는 한국과 잉글랜드의 시차, 10시간이나 되는 이동거리, 그리고 A매치 출전 여파 때문에 팀에 늦게 합류하면서 자신의 몸을 회복시킬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지난 6일 아스톤 빌라전에서 휴식을 취하고도 이틀 뒤 포르투전에서 몸 상태가 썩 좋지 못한 모습으로 극도의 부진을 펼친 것은 어쩔도리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컨디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량이 월등한 선수라 할지라도 경기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90분 동안 경기를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컨디션이 나쁘면 자신의 탁월한 기량을 맘껏 쏟을 수 없는데다 평소보다 체력 고갈이 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포르투전에서 나타난 박지성의 체력 저하는 이미 예견된 결과이자 당연한 현상이었던 겁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포르투전 종료 후 "박지성은 믿을 수 없는 체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A매치 두 경기를 치르고 돌아와 휴식을 주었지만 특유의 강한 체력을 발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박지성을 보면 팀 전체의 컨디션이 어떤지 알 수 있다"며 박지성의 체력 저하를 아쉬워 했습니다. 이에 박지성은 "항상 대표팀 차출 이후에 갖는 경기가 어려웠다. 포르투전에서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다"며 자신의 체력과 컨디션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했죠.

문제는 맨유의 살인 일정을 박지성이 어떻게 소화하느냐입니다. 맨유는 챔피언스리그와 FA컵 결승에 진출할 경우 5월말까지 45~50일 동안 최대 14경기를 치러야 하는 바쁜 일정에 직면했습니다. 두 대회 우승에 실패하더라도 아직 경기를 더 치러야 하기 때문에, 박지성의 몸이 걱정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강철 체력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죠.

지난 시즌 막판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를로스 테베즈의 체력이 저하되면서 '무한 스위칭'으로 대변되었던 맨유의 창 끝이 약해졌던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 시즌 막판은 더 힘듭니다. 지난 시즌에는 칼링컵에서 조기 탈락했지만 올 시즌에는 칼링컵에서 우승한데다 클럽 월드컵과 UEFA 수퍼컵까지 치르는 살인 일정을 치렀기 때문에 시즌 막판이 더 힘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두꺼운 선수층의 힘으로 잘 이겼지만 이제는 부상 선수들이 하나 둘 씩 속출하는데다 팀들끼리의 순위 및 우승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체력적인 문제가 더 두드러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박지성은 남은 잔여 경기까지 팀의 전 경기에 출전하지 않습니다. 평소처럼 몇몇 경기를 쉬면서 체력과 컨디션을 보충하여 다음 경기를 착실히 준비하겠죠. 하지만 자신의 포지션에서 뛸 수 있는 루이스 나니, 라이언 긱스의 폼이 시즌 막판에 급격히 저하된 것은 오히려 자신의 출전 시간이 평소보다 더 늘어나는 악영향이 될 수 있습니다. 팀의 우승 여부를 결정짓는 시즌 막판에 경기력이 떨어진 선수를 꾸준히 기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이죠. 더욱이 체력 저하로 고전하는 현 상황에서 출전 시간이 많아지는 것은 피로누적 및 부상을 염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박지성의 부상이 걱정될 수 밖에 없습니다. 2006년 9월부터 2년 동안 3번의 큰 부상으로 1년 2개월 동안 부상과 싸우면서 자신의 진가를 꾸준히 떨치지 못한데다 2007/08시즌에는 9개월 부상 후유증으로 퍼스트 터치까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결장을 거듭했던 악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7월 출국 인터뷰에서 "부상 없는 시즌을 보내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그동안 부상의 악령이 자신을 지겹도록 괴롭혔습니다. 아무리 박지성이 몸 관리에 충실하더라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에는 부상이 많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앞날이 걱정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현재 몸이 피로한 상황에서 남은 일정을 무사히 소화하려면 휴식이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나니-긱스의 부진으로 자신의 출전 빈도가 늘어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박지성이 그동안 맨유 경기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꾸준한 맹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로테이션 시스템 차원에서 몇몇 경기를 거르면서 산소탱크를 충전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자신의 백업 멤버인 나니가 비중이 떨어지는 경기에 주로 모습을 내밀면서 적절한 체력 안배를 했기 때문에 주로 강팀과의 경기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었죠.

박지성이 시즌 막판을 무사히 넘길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나니가 제 기량을 찾아야만 합니다. 긱스는 최근 처진 공격수로 더 많은 모습을 내밀고 있는데다 노쇠화에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논외 대상으로 볼 수 있지만, 나니는 줄곧 왼쪽 윙어로 뛰었기 때문에 박지성과의 포지션이 겹칩니다. 나니가 앞으로도 실망스런 활약을 펼친다면 박지성의 몸이 더 무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어서 그의 분발이 절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국내 팬들은 나니가 부진한 활약을 펼칠 때 마다 '박지성의 팀 내 입지는 문제 없다'는 위안 섞인 반응을 나타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박지성이 시즌 종료 및 오는 6월 A매치 3경기까지 무난한 일정을 소화하려면 나니의 맹활약이 필수입니다. 나니가 잘해야 박지성이 체력 안배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맨유의 공격력이 더 강해지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 박지성은 자신의 체력과 컨디션을 완전히 회복하여 시즌 막판에 제 몫을 다할 수 있습니다.

맨유는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을 쓰는 팀으로서 특히 체력 소모가 많은 미드필더진에('과다 출전' 호날두는 논외) 붙박이 주전을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니는 박지성의 경쟁자이자 동반자 역할을 했습니다. 문제는 나니의 경기력이 올 시즌, 특히 시즌 막판에 떨어졌다는 점인데 동반자로서의 제 구실을 끝까지 다해야 합니다. 맨유에서 네 시즌 동안의 성실한 활약으로 퍼거슨 감독의 깊은 신뢰를 받았던 박지성의 팀 내 입지는 더 이상 따질 필요없이 굳건하기 때문에, 나니가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아야 합니다. 그저 박지성이 시즌 종료까지 맨유의 빡빡한 일정을 잘 이겨내고 허정무호에 합류하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