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마라톤이다'는 말이 있듯, 사람의 모든 인생 순리는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과 흡사합니다. 마라톤은 어느 일정한 구간에 빨리 달리는 운동 종목이 아닌 긴 거리를 얼마만큼 페이스 조절을 잘하고 꾸준함을 뒷받침하느냐에 따라 기록이 좌우되기 때문에 꾸준함이 강조될 수 밖에 없습니다.
비단 마라톤 뿐만은 아닙니다. 운동을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은 매일, 주5회, 주3회 운동을 계획하지만 항상 꾸준하게 운동하는 것 없이는 체력 향상의 효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벼락치기식 공부를 하는 것 보다는 평소 꾸준히 학습해서 성적을 올리는 것이 더 좋겠죠. 이렇게 '꾸준함의 미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한국 축구팬들의 최고 관심 대상인 '산소 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가 2005년 여름 올드 트래포드에 입성할때 일부 국내팬들 그리고 현지 여론에서는 그를 '유니폼 판매원'이라고 조롱하면서 맨유의 철저한 벤치 멤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처럼 출중한 개인 능력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습니다. 불과 2006/07시즌까지만 하더라도 그에게는 '약팀 전용-긱스 백업'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여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박지성은 현재 맨유의 베스트 일레븐으로 당당히 이름을 떨치고 있습니다. 박지성의 스승인 이학종 수원공고 감독은 지난해 12월 20일 <조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서 "박지성이 개인 능력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를 얼마나 잘해요. 지성이에게는 그런 것을 활용할 수 있는 머리가 있어요"라며 박지성이 맨유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호날두-루니 같은 개인 능력이 아님을 밝혔습니다.
박지성이 맨유 전력에 없어선 안될 선수가 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앞에서 강조한 '꾸준함' 때문입니다. 그동안 박지성의 경기는 늘 한결 같았습니다. 강한 상대와 약한 상대, 약팀과 강팀을 가리지 않고 항상 꾸준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경기력을 발휘하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기 때문이죠. 극심하게 부진했던 경기가 손에 꼽을 정도로 거의 없었기 때문에 주로 강팀과의 경기에서 주전급 선수로 기용되어 맹활약을 펼칠 수 있었고 25일 열린 인터 밀란전에서도 '슈퍼 풀백' 더글라스 마이콘의 콧대를 쓰러뜨렸습니다.
축구 감독들이 선수를 선호하는 절대적 기준은 꾸준함입니다. 평점 5점과 10점을 넘나들듯 기복이 심한 선수보다는 항상 일정 수준 이상의 경기를 펼치는 선수를 우선적으로 기용한다고 합니다. 후자격에 속한 선수를 기용하면서 마음 졸이지 않고 경기를 지켜볼 수 있는 이점이 있겠지만, 경기에서 항상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후자에 속한 선수들을 위주로 베스트 일레븐을 꾸려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후자가 박지성이고, 전자는 우리에게 '박지성 경쟁자'로 잘 알려진 루이스 나니 입니다.
지난 2007년 5월, 맨유는 1400만 파운드(약 280억원)의 비싼 이적료로 포르투갈 출신 특급 유망주인 나니를 영입했습니다. 바이에른 뮌헨과의 영입 경쟁에서 이긴데다 이적료가 거금이었던 것, 호날두와 유사한 스타일의 선수라는 점에서 퍼거슨 감독의 많은 기대를 받았던 것과 동시에 우리들에게 박지성 경쟁자로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나니는 지난 시즌 4골 11도움, 올 시즌 6골 2도움을 기록해 박지성보다 더 많은 공격 포인트를 쌓았지만 오히려 박지성과의 경쟁에서 철저하게 밀려있는 상황입니다.
나니에게는 박지성이 자랑하는 꾸준함이 부족합니다. 어떤 날에는 호날두급의 활약을 펼쳐 팀 승리를 공헌하지만 평소에 무리한 드리블 돌파와 잦은 슈팅 난사, 지나친 볼 끌기 등으로 팀 공격 템포를 끊는 부진한 활약을 일관하면서 퍼거슨 감독의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난해 5월 3일 웨스트햄전에서는 비신사적인 플레이로 퇴장당하자, 퍼거슨 감독은 나니를 향해 어떠한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불과 2년 전까지 나니를 '긱스의 대를 이을 선수', '맨유의 차기 에이스'라고 치켜 세웠지만 지금은 박지성을 더 중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맨유 경기를 보더라도, 박지성과 나니의 팀 내 입지는 대조적입니다. 두 선수는 지난 16일 더비 카운티전에 나란히 선발 출장했는데 박지성은 평소의 활약을 그대로 펼쳤던 반면에 나니는 골을 넣으며 팀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19일 풀럼전에서는 박지성이 선발 출장한 반면 나니는 벤치를 지켰습니다. 22일 블랙번전에서는 나니가 '인터 밀란전을 준비하던' 박지성을 대신하여 선발 출장했지만 팀의 실점과 연관된 뼈아픈 실수를 저지르면서 후반전에 질책성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25일 인터 밀란전에서는 박지성이 선발 출장하여 마이콘을 철저히 압박했지만 나니는 벤치를 뜨겁게 달구는데 그쳤습니다. 이것이 꾸준한 경기력을 발휘하는 선수와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발휘하는 선수의 차이점입니다. 더욱이 나니는 방출설에 시달리는 등 맨유에서의 앞날이 불투명합니다.
일부 팬들은 박지성이 호날두와 루니처럼 눈에 띄게 화려한 공격력으로 골을 넣지 못하는 것을 폄하합니다. 물론 박지성이 더 좋은 선수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골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퍼거슨 감독이 지적하고 있기 때문에) 팀 역할에 충실하는 박지성의 성실함과 일정 수준 이상의 경기력을 발휘하는 꾸준함, 그리고 맨유 선수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이타적인 활약은 맨유의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특히 박지성이 소화하는 임무는 팀에서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박지성은 인터 밀란전에서 후반 37분 체력 저하로 힘에 부치자 실점 위기의 뼈아픈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다행히 수비진이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만큼 박지성의 임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축구에서 팀의 승리를 공헌하는 시발점이 수비이기 때문에 '수비형 윙어' 박지성은 엄청난 책임을 짊어지고 경기를 뛰고 있습니다. 팀 승리를 결정짓는 골을 넣지 않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았을 뿐이지, 동료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살림꾼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감독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축구의 절대적인 진리라 할 수 있습니다.
박지성이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 조 콜, 조세 보싱와(이상 첼시) 마이콘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과의 정면 승부에서 우세를 점했던 것은 그들을 제압하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노하우는 그동안 많은 경기에서 출장했던 꾸준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 자신의 출중한 개인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꾸준함 때문에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감독인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좋아하는 것이며 조세 무리뉴 인터 밀란 감독 조차도 박지성의 진가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일부에서는 박지성이 매 경기 선발 출장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품어 아직까지 그를 '벤치성'으로 조롱합니다. 하지만 박지성이 퍼거슨 감독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퍼거슨 감독은 야프 스탐, 데이비드 베컴, 로이 킨, 뤼트 판 니스텔로이 같은 세계 최정상급 스타들 조차 방출시키거나 다른 팀에 보낼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자랑하는 선수에 끌려 다니는 감독이 아닙니다. 항상 꾸준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에게 인정 받았던 것이며 맨유에 없어선 안될 주축 선수로 당당히 그 가치를 빛내고 있는 겁니다.
박지성의 꿈은 맨유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는 것입니다. 맨유가 유럽과 세계를 제패했던 클럽이기 때문에 더 이상 높은 고지에 오를 필요 없이 최정상 고지에 오랫동안 있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축구 선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목표일지 모르죠. 현재 잉글랜드 언론에서 박지성의 4년 재계약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퍼거슨 감독이 여전히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그가 지금의 한결같은 꾸준함으로 맨유에서 오랫동안 당당한 반열에서 자리매김할지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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