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잘 나가는 클럽 끼리의 진검승부입니다.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이탈리아 세리에A 2연패와 3연패는 물론 올 시즌 리그 독주 체제를 질주하고 있는 터라 리그 전체의 자존심까지 걸렸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인터 밀란이라는 두 거성이 UEFA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제대로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두 팀은 오는 25일 오전 4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쥬세페 메아차에서 열리는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정면 승부를 벌입니다.
이번 대결은 팽팽한 전력을 자랑하는 팀들의 대결이어서 지구촌 축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물론 그라운드를 수놓는 선수들의 대결이 치열할 전망입니다. 여기에 '앙숙 관계'로 통하는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과 조세 무리뉴 인터 밀란 감독의 지략 대결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피튀기는 축구 전쟁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맨유vs인터 밀란, 외나무 다리에서 '빨리' 만났다
마르첼로 리피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은 지난해 8월 3일 이탈리아 일간지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를 통해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는 맨유 또는 인터 밀란이 우승할 것 같다"며 빅 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컵)를 들어올릴 후보군으로 맨유와 인터 밀란을 꼽았습니다. 맨유가 디펜딩 챔피언인데다 인터 밀란이 지난해 여름 조세 무리뉴 감독을 영입했기 때문에 두 팀의 우승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생각한 것이죠.
그런데 리피 감독이 우승후보로 꼽았던 맨유와 인터 밀란이 결승전과 4강전도 아닌 16강전에서 피할 수 없는 혈투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미리보는 결승전'이라고 하기에는 외나무 다리에서 빨리 만났습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마냥 신나는 일이지만 대회 우승을 노리는 두 팀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죠. 무리뉴 감독은 "맨유와 만나기를 바랬다"며 특유의 당당한 자신감으로 대답했지만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은 "16강 조추첨때 인터 밀란과 경기하지 않기를 바랬다. 전력이 강하기 때문이다"며 인터 밀란을 부담스러워하는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맨유는 올 시즌 4관왕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입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2위 리버풀과의 승점 차이를 7점으로 벌린데다 칼링컵 결승전에 진출했기 때문에 최소 더블 우승이 유력시되나 퍼거슨 감독의 야심은 '모든 대회 우승'이기 때문에 두꺼운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의 힘을 앞세워 모든 대회에서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맨유에서 23년간 장기 집권한 퍼거슨 감독으로서도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전까지 '빅 이어 획득 숫자가 부족하다'는 현지 언론의 지적을 받았던 만큼 내심 이번 대회 우승을 꿈꾸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인터 밀란은 맨유보다 더 필사적이고 칼을 갈고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 세리에A 3연패를 이끈 로베르토 만치니 전 감독을 챔피언스리그 우승 실패를 이유로 경질시키고 2003/04시즌 FC 포르투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무리뉴 감독을 영입한 것은 54년만에 빅 이어를 들어 올리겠다는 열망이 크기 때문입니다. 인터 밀란이 그 꿈을 이루려면 16강에서 맨유라는 강자를 반드시 꺾어야 합니다.
감독 전적vs2차전 홈팀 우세, 흥미로운 기록대결
맨유와 인터 밀란이 챔피언스리그에서 유일하게 격돌했던 것은 1998/99시즌 8강전이었습니다. 당시 맨유는 1~2차전 합계 스코어에서 3-1(1승1무)의 우세를 거두고 트레블 달성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십년이면 강산이 변하기 때문에, 십년 전과 전혀 다른 팀 컬러를 갖춘 두 팀의 맞대결이 어떤 결과를 맺을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맨유 킬러' 무리뉴 감독이 인터 밀란의 지휘봉을 잡고 맨유와 상대하기 때문이죠. 무리뉴 감독은 포르투와 첼시 사령탑을 맡던 시절 퍼거슨 감독의 맨유를 상대로 12전 7승4무1패의 압도적인 전적을 자랑하며 퍼거슨 감독과 맨유를 이기는 방법을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포르투 사령탑을 맡던 2003/04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는 맨유를 누르고 대회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고 2004/05시즌과 2005/06시즌에는 맨유를 제치고 첼시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더욱이 맨유는 인터 밀란과 상대하면서 챔피언스리그 디펜딩 챔피언의 '16강 징크스'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2004/05시즌 우승팀인 리버풀은 다음 시즌 16강에서 벤피카에 무릎을 꿇었고 2005/06시즌 우승팀인 FC 바르셀로나는 다음 시즌 16강에서 리버풀에게 덜미를 잡혔습니다. 2006/07시즌 우승팀인 AC밀란 역시 아스날과의 2차전에서 '원정팀의 무덤'으로 꼽히는 홈에서 두 골을 내주고 무너졌습니다. 그 다음 희생양이 맨유의 차례가 될 수 있는데, 16강 상대가 '맨유 킬러' 무리뉴 감독의 인터 밀란이어서 8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언뜻보면 맨유가 기록 대결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 처럼 보이지만, 맨유에게는 인터 밀란을 압도할 수 있는 기록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최근 세 시즌 동안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승리팀의 기록을 보면 2차전을 홈으로 치렀던 팀들 중에서 71%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습니다. 인터 밀란과의 2차전을 홈으로 치르는 맨유에게는 일정상 유리한 고지에 있습니다. 이 때문에 무리뉴 감독은 24일 맨유전을 앞둔 공식 기자회견에서 "맨유는 이번 경기에서 공격 전술을 구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쥬세페 메아차에서 승리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라며 1차전 원정에서 비기기 작전, 2차전 홈 경기에서 이기는 작전을 펼칠지 모를 맨유를 잔뜩 경계 했습니다.
특히 맨유는 지난 시즌 바르셀로나와의 4강 1차전 원정 경기에서 리오넬 메시를 집중 견제하는 수비 작전으로 0-0 무승부를 거둔 뒤 2차전 홈 경기에서 폴 스콜스의 중거리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런 만큼 인터 밀란과의 일정에서 유리한 고지에 있습니다. 결국, 두 팀의 대결은 감독 전적과 2차전 홈팀 우세 전적 중에 하나가 깨질 것으로 보여 치열한 '기록 대결'을 방불케 할 것으로 보입니다.
호날두-루니-박지성vs즐라탄-아드리아누-마이콘, '스타워즈' 맞대결
맨유와 인터 밀란의 경기는 잉글랜드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문 클럽끼리의 대결인데다 특급 스타들도 즐비해 그야말로 '스타워즈'로 불릴 만합니다. 지구촌 축구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스타들이 챔피언스리그를 빛낼 예정이어서 어떤 결말을 맺을지 자못 흥미롭습니다.
우선, 두 팀이 자랑하는 '득점기계'들의 대결에 이목이 쏠립니다. 각각 맨유와 인터 밀란에서 자국리그 팀 내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3경기 12골)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24경기 14골)의 맞대결이 관심사입니다. 호날두가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동시 득점왕에 오르며 맨유의 더블 우승을 이끌었다면 즐라탄은 유럽에서 가장 멋있게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로 유명합니다.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두 선수의 득점포가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호날두 5경기 0골, 즐라탄 6경기 1골) 이번 경기에서 신들린 득점포로 팀 승리를 이끌지 주목됩니다.
축구계의 '악동'으로 유명한 웨인 루니와 아드리아누의 맞대결도 관심사입니다. 두 선수는 최근 연이은 득점포로 팀의 승리를 이끄는 물오른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얼마전 부상에서 복귀한 루니는 지난 19일 풀럼전과 22일 블랙번전에서 골을 넣었는데 한 번 좋은 분위기를 타면 이후 몇 경기동안 거침없는 활약을 펼치는 스타일이어서 인터 밀란전에서 득점포를 뽑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동안 인터 밀란 퇴출설로 바람잘날 없었던 아드리아누는 최근 6경기에서 4골을 넣으며 붙박이 주전 자리를 되찾은 것은 물론 무리뉴 감독의 확실한 신임을 얻었습니다.
전술적으로는 박지성과 더글라스 마이콘의 맞대결이 주목됩니다. 박지성은 맨유의 왼쪽 미드필더이고 마이콘은 인터 밀란의 오른쪽 풀백이어서 90분 동안 쉴세 없는 공방전을 펼칠 예정입니다. 두 선수 모두 폭발적인 기동력과 끈질긴 압박 수비를 자랑하는 선수들입니다. 박지성은 맨유 공수의 연결고리이고 마이콘은 인터 밀란 오른쪽을 거의 독점하는 활약을 펼치고 있어, 두 선수 중에서 누가 맞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느냐에 따라 두 팀의 승패가 엇갈릴 공산이 큽니다. 국내팬들 입장에서는 박지성이 브라질 국가대표 주전 선수이자 세계적인 오른쪽 풀백인 마이콘의 콧대를 부러뜨리길 바라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맞대결입니다.
이 외에도, 불과 몇년전까지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로 이름 떨쳤던 36세 라이언 긱스(맨유)와 37세 루이스 피구(인터 밀란)의 '노장 미드필더 맞대결', 리오 퍼디난드(맨유)와 하비에르 사네티(인터 밀란)의 '수비 맞대결', 마이클 캐릭(맨유)과 설리 알리 문타리(인터 밀란)의 '중원 맞대결'에 이르기까지 맨유와 인터 밀란의 대결은 지구촌 축구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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