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탱크' 박지성이 83분 동안 9.99km를 누비며 인터밀란의 발을 꽁꽁 묶었습니다. 측면에서 자주 공 다툼을 벌였던 인터밀란 오른쪽 풀백 더글라스 마이콘과의 대결에서 우세를 점했습니다.
박지성은 25일 오전 4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쥬세페 메아차에서 열린 인터밀란과의 2008/09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원정 경기에서 왼쪽 윙어로 활약했습니다. 그는 특유의 짠물수비로 마이콘을 꽁꽁 묶으며 인터밀란의 오른쪽 측면 공격을 철저히 봉쇄했습니다. 공격에서는 9.99km를 뛰는 엄청난 활동량을 선보이며 마이콘을 곤혹스럽게 했습니다. 적어도 두 선수와의 맞대결을 놓고 보면 박지성의 승리였습니다.
우선, 인터밀란과의 원정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맨유의 수비 전략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무리뉴 감독은 경기 전 "맨유는 이번 경기에서 공격적인 전술을 구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쥬세페 메아차에서 승리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라며 맨유가 1차전에서 수비 위주의 경기력을 펼칠거라 장담했는데, 맨유는 그와 정반대로 경기 시작부터 공격을 주도하면서 인터밀란의 수비 진영을 흔들었습니다. 전반전까지 볼 점유율이 50-50이었고 슈팅 숫자에서 11-6으로 앞서면서 원정팀 치고는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던 겁니다.
비록 맨유의 공격 마무리는 아쉬웠지만 적어도 '무실점 수비'를 펼쳤기 때문에 홈에서 치르는 2차전 일정이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날 선발 출장했던 조니 에반스와 존 오셰이는 불과 얼마전까지 부상으로 고생했지만 이날 경기에서 '즐라탄-아드리아누' 투톱의 발을 꽁꽁 묶으면서 팀의 무실점에 큰 공헌을 세웠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경기 전까지 에반스의 출장이 힘들거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인터밀란을 의식한 연막작전으로 드러났으며 소기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최근 세 시즌 동안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진출 팀의 71%가 2차전을 홈에서 치른 팀이라는 점에서, 맨유의 1차전 무실점 수비가 값진 역할을 했습니다.
맨유가 무실점 수비를 펼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원동력은 박지성 이었습니다. 박지성이 인터밀란의 오른쪽 공격수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기동력을 자랑하는 마이콘의 오버래핑을 끈질기게 차단한 것은, 인터밀란의 오른쪽 날개가 부러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었습니다. 여기에 오셰이가 인터밀란의 왼쪽 공격까지 봉쇄하면서 상대팀의 공격은 중앙쪽으로 몰렸고, 중앙을 지키던 사네티와 문타리가 '플래처-캐릭' 조합에 의해 공간 장악에서 밀리면서 '즐라탄-아드리아누' 투톱이 전방에서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박지성이 마이콘을 봉쇄했던 것은 맨유가 인터밀란과의 경기 주도권에서 밀리지 않았던 결정적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이콘이 자랑하는 폭발적인 오버래핑을 저지하기 위해 전방에서 밀착 수비를 가한 것은 상대방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는 인터밀란의 오른쪽 공격이 뜸했던 이유라 할 수 있겠습니다. 후반전에는 마이콘이 박지성의 왼쪽 공간 돌파를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할 정도로 세리에A를 평정했던 공격력이 '박지성의 수비에' 무너지고 말았던 겁니다.
박지성의 진면목은 수비에서만 빛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반 초반부터 왼쪽 측면과 중앙을 활발히 휘젓는 폭 넓은 움직임과 민첩한 몸놀림으로 상대 미드필더진과 마이콘을 뚫는 과감한 경기 운영을 펼친 것이죠. 전반전에 마이콘을 공략하면서 2번의 정확한 크로스로 베르바토프에게 골 기회를 마련했고 후반전에는 측면과 중앙으로 침투하는 돌파력에 힘이 실리면서 마이콘쪽을 집중 공략했습니다. 동료 선수들이 후반 막판 마이콘쪽을 위주로 골 기회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역력했을 만큼, 박지성의 적극적인 플레이가 빛났던 겁니다.
아쉬운 장면도 있었습니다. 후반 21분 상대팀 문전으로 침투하는 과정에서 호날두의 짧은 패스를 슬라이딩하여 슈팅을 시도했지만 오른발이 공에 닿지 않았던 겁니다. 호날두의 패스가 약간 왼쪽으로 향했다면 박지성이 골을 넣을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공이 조금 오른쪽으로 빗나갔습니다. 만약 이것이 슈팅으로 연결되었다면 박지성의 슛이 골로 들어갈 가능성이 컸습니다. 하지만 경기 내용에서 최상의 활약을 펼쳤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경기에서 제 몫을 다했습니다.
박지성의 수비는 이번 경기에서도 증명한 것 처럼 자신이 맨유에서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강점이었습니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FC 바르셀로나전 1~2차전에서 상대팀 에이스이자 세계적인 축구 천재인 리오넬 메시를 꽁꽁 묶은 것이 우연이 아님을 쥬세페 메아차 원정에서 입증한 셈이죠. 당시 바르셀로나와의 2차전에서는 메시와 경합하여 4번의 인터셉트에 성공하여 그를 상대했던 맨유 선수 중에서 가장 많은 공격 차단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인터밀란 오른쪽 공격의 젖줄인 마이콘을 꽁꽁 묶었던 겁니다. '수비형 윙어'인 박지성의 수비력은 세계 정상급이라고 봐도 손색 없을 정도입니다.
맨유에 객관적인 보도를 하기로 유명한 맨체스터 지역언론 <맨체스터 이브닝뉴스>는 경기 종료 후 박지성에게 평점 7점을 주며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좋아하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단련된 모습과 활동량이 만족스러웠다"고 평했습니다. 아무리 퍼거슨 감독에게 '골을 못넣는다'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팀을 위한 경기력에 충실했기 때문에 강팀과의 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며 그것이 올 시즌 맨유의 당당한 주전 선수로 발돋움한 비결입니다.
비록 후반 막판에는 체력 저하로 힘이 부치면서 교체되었지만, 박지성은 마이콘을 막기 위한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무리뉴 감독의 2차전 전략을 어렵게 만들어 놓은 그의 활약은 그야말로 '군계일학' 이었으며 자신의 수비가 '무결점' 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