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지난해 12월 클럽 월드컵까지만 하더라도, 지구촌 축구 전문가들과 국내외 여론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 대한 위기론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리미어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칼링컵, FA컵 참가에 시즌 도중 UEFA 슈퍼컵과 클럽 월드컵 참가에 이르는 빡빡한 일정이 가장 큰 불안요소였기 때문이죠. 2007년 클럽 월드컵 우승팀 AC밀란이 2007/08시즌 세리에A 5위로 추락한 것이 사례가 되어 맨유 앞날에 대한 먹구름이 잔뜩 기었습니다.
그러나 맨유는 외부의 부정적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클럽 월드컵 이후 리그 7연승으로 거침없는 선두 질주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맨유는 1일 오전 2시 30분(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애버튼과의 프리미어리그 24라운드 홈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습니다. 리그 12경기 연속 무실점 무패(10승2무) 기록을 이어가게 된 것과 동시에 골키퍼 에드윈 판 데르 사르는 자신의 프리미어리그 최장 시간 무실점 기록(1122분)을 계속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맨유의 고공행진에 여론에서는 '붉은산맥'으로 불리는 수비진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오셰이-비디치-퍼디난드(에반스)-네빌'로 짜인 포백은 최근 리그 12경기에서 상대팀에 단 한차례도 실점하지 않았고 판 데르 사르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물론 공격진도 빼놓을 수 없겠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최근 2경기 연속골(3골)로 골맛을 되찾았고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는 지난달 28일 웨스트 브롬위치전까지 리그 4경기 연속골을 넣으며 먹튀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한때 '계륵'으로 전락했던 카를로스 테베즈는 애버튼전에서 특유의 부지런한 움직임을 내뿜으며 시즌 후반기 맹활약을 예감케 했습니다.
하지만 맨유 1위 행진의 주역 중에서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존재는 바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입니다. 맨유의 연승 행진을 지휘한 것 만으로도 대단했지만, 그의 지도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맨유는 선두권에 없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1974년 이스트 스털링샤이어 사령탑을 시작으로 35년 동안 감독을 역임했던 그의 관록과 경험이 빛을 발하는 요즘입니다. 그가 맨유의 고공행진을 이끈 요소는 4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퍼거슨의 맨유는 운이 따랐다
우선, 맨유의 오름세는 빅4 라이벌 팀들의 내림세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맨유 이전에 리그 1위 행진을 달렸던 리버풀은 최근 7경기에서 2승5무에 그쳐 3위로 밀렸으며, 첼시는 최근 2경기에서 모두 승리했지만 지난해 11월 23일 뉴캐슬전부터 지난달 12일 맨유전까지 8경기에서 2승4무2패를 기록했죠. 아스날은 이미 5위로 밀렸으니 두말할 필요 없죠. 결국, 맨유가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맨유가 1위 자리를 지키는 시점 또한 절묘합니다. 맨유는 리버풀, 첼시, 아스날이 동반 부진에 빠진 것을 틈타 1위로 올랐고 애버튼전 승리로 1위 수성에 성공했는데, 이는 빅4 라이벌 팀들에게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큽니다. 맨유는 시즌 초반보다 후반에 더 강한 팀이기 때문에, 이대로의 우승 레이스라면 맨유의 독주 및 우승이 현실화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하는 인생의 진리처럼, 그동안 운도 지도력 못지 않게 따라줬던 퍼거슨 감독의 '마법'이 올 시즌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그 중에서 최고의 운은 199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의 극적인 우승이었죠.)
치밀한 용병술, '역시 퍼거슨'
맨유가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결정타'는 지난달 12일 첼시전 3-0 완승이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현지 기자들의 예상과 달리 그동안 노쇠화로 부진했던 라이언 긱스와 게리 네빌을 선발 출장 시켰습니다. 젊은 선수 패기보다 두 선수의 노련미를 높게 평가하여 당시 '리그 최다 득점, 최소 실점'으로 맹위 떨치던 첼시의 난공불락을 깨뜨리려 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 이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첼시전을 위해 긱스를 2주 동안 쉬게 했고, 그런 긱스는 전후방을 가리지 않는 왕성한 활동량과 적절한 패스, 악착같은 압박능력으로 미하엘 발라크와 데쿠를 농락하여 스승에게 승점 3점을 선사했습니다. 네빌은 상대팀 왼쪽 윙어로 뛰던 프랑크 람파드를 꽁꽁 묶는 수비와 적절한 오버래핑에 이은 송곳같은 크로스와 스루패스로 팀 승리의 숨은 주역으로 거듭났습니다. 두 선수는 첼시전 맹활약으로 자신감을 되찾으며 지금까지 팀 승리를 이끌고 있는데, 첼시전에서 이들의 저력을 믿고 기용했던 퍼거슨 감독의 용병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먹튀였던 베르바토프를 팀 공격의 '젖줄'로 키운 것 또한 퍼거슨 감독의 작품입니다. 그는 평소 "베르바토프는 에릭 칸토나 처럼 패스, 드리블, 볼 터치 능력을 자랑하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칭찬한 것 처럼 칸토나의 포지션인 쉐도우 스트라이커 자리를 베르바토프에게 부여했습니다. 이에 베르바토프는 시즌 초반 최전방에서의 부진을 뒤로하고, 공격진과 미드필더진 사이의 공간에서 특유의 우아한 패스로 동료 선수들에게 많은 골 기회를 제공한 끝에 지난 28일 웨스트 브롬위치전까지 리그 4경기 연속골을 넣었으며 도움 1위(9도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맨유 1위,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의 승리
퍼거슨 감독의 용병술은 자신이 신봉하는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으로 파생되었습니다. 즉, 튼튼한 스쿼드를 구축했던 것이죠.
'명장' 퍼거슨 감독의 맨유가 주축 선수들의 끊임없는 부상 악재와 살인적인 일정에도 불구하고 '내림세 조짐없이' 펄펄 날 수 있었던 것은 두꺼운 선수층 구축 및 효율적 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20여명의 주축 선수들을 골고루 활용했던 로테이션 시스템 속에서 주전 선수들은 체력 안배 차원에서 약팀과의 경기 때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백업 선수들은 '주전 도약'을 위해 필사적으로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며 퍼거슨 감독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으려 했습니다.
이에 퍼거슨 감독은 35년 동안의 감독 경험을 십분 발휘하며 빡빡한 일정과 줄부상이라는 악재 속에서 로테이션 시스템의 힘을 져버리지 않았습니다. 존 오셰이와 카를로스 테베즈 같은 백업 선수들이 주전 선수(파트리스 에브라, 웨인 루니)의 부상 공백을 확실히 메울 수 있던 것과 라이언 긱스, 게리 네빌 같은 노장 선수들이 분전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항상 로테이션 시스템이 굳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러한 로테이션 시스템의 효과는 신예들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습니다. 하파엘 다 실바와 조니 에반스, 데런 깁슨, 대니 웰백은 올 시즌 맨유에서 성공적인 가도를 달리고 있는 신예들입니다. 최근에는 조란 토시치, 파비우 다 실바, 제임스 체스터 같은 신예들까지 경기에 출전하여 실전 경험까지 쌓는 등, 퍼거슨 감독은 다양한 선수층을 경기에 골고루 활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빠듯한 일정과 선수들의 잇따른 부상은 맨유의 두꺼운 선수층 효과를 강하게 다지는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그 효과속에 한때 노쇠화로 은퇴 기로에 놓였던 긱스와 네빌은 전성기 시절 못지 않은 맹활약을 펼치고 있으며 테베즈는 지난 웨스트 브롬위치전에서 골을 넣으며 부활을 예고했습니다. 토시치와 웰백 같은 영건들은 실전 감각을 키우며 앞날의 맹활약을 예감케 했고 있죠.
퍼거슨, 심리전에서 베니테즈 꺾었다?
퍼거슨 감독은 심리전의 달인으로 유명합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하는 그의 말은 독설이 되어 상대팀 감독을 공격했고, 결국에는 우승이라는 업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퍼거슨 감독과 설전을 주고 받았던 아르센 벵거 아스날 감독과 조세 무리뉴 전 첼시 감독(현 인터밀란)은 당당한 태도로 현명하게 대처했지만, 그의 심리전에 휘말리는 지도자들도 간혹 있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케빈 키건 전 뉴캐슬 감독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1995/96시즌 도중 "프리미어리그 팀들은 맨유와 경기하면 평소보다 이기려고 열심히 한다"고 불만을 제기하자 키건 전 감독은 맨유전에서 퍼거슨 감독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돌발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이는 퍼거슨 감독에게 심리전에서 패했음을 스스로 자초했고, 결국 퍼거슨 감독의 맨유는 승점 12점까지 뒤져있던 승점차를 뒤집고 역전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라파엘 베니테즈 리버풀 감독이 키건 전 감독에 이어 퍼거슨 감독 심리전의 또 다른 희생자가 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지난달 6일 잉글랜드 대중지 <타임즈>를 통해 "리버풀은 경험 부족 때문에 리그 우승 경쟁에서 멀어질 것이다"며 아직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험이 없는 리버풀과 베니테즈 감독을 향해 독설을 내뿜었습니다.
이에 베니테즈 감독은 3일 뒤 정례 기자회견에서 "퍼거슨 감독은 (지난해 3월 FA컵 8강) 포츠머스전에서 패하자 심판이 상대편이었다고 비아냥 거렸지만 어떠한 징계를 받지 않았다. 맨유는 심판 특혜를 받고 있다"고 응수했고, 지난달 12일 리버풀 지역 일간지 <리버풀 에코>를 통해 데이비드 길 맨유 단장에게까지 독설을 퍼부으며 분노 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리버풀의 침체를 자초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퍼거슨 감독의 맨유는 지난달 12일 첼시전까지 리그 3위로 선두 리버풀을 5점 차이로 뒤쫓고 있었지만 이제는 맨유가 리버풀을 승점 5점 차이로 제치고(2월 1일 기준) 선두에 올라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시즌 종료까지 이어질 경우, 퍼거슨 감독은 베니테즈 감독과의 심리전에서 승리하는 것과 동시에 리그 우승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최근 맨유가 고공행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다름 아닌 퍼거슨 감독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