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의 가장 큰 핵심은 중앙 수비수를 어떤 조합으로 묶느냐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지난 16일 축구 전문 언론 <축구공화국>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표팀 중앙 수비수(센터백) 조합이 허정무호에서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렇듯, 현대 축구에서 4백 중앙 수비수 들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대인마크만 할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상대의 공격 패턴을 재빨리 읽으며 수비 위치를 잡는 것과 동료 선수들과 원만한 완급 조절을 하는 역할까지 늘었죠. 이들은 어느 포지션보다 호흡과 경험, 집중력이 중요시되고 경기 중 교체가 많지 않은 특성이 있어 팀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이 때문에 한 순간의 실수가 용납치 않는 것이죠.
하지만 한국 축구는 수비 불안이라는 고질적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7년 아시안컵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제 대회에서 수비 문제로 쩔쩔맸던 전례가 많았으며 2002년 월드컵에서는 4백이 아닌 '한국 축구에 익숙한' 3백(김태영-홍명보-최진철)을 주로 구사했던 대회였죠. 이에 일부 국내 축구인들은 히딩크 시절부터 수비수 기량 등을 이유로 4백이 한국 축구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현재 세계 축구가 주로 4백을 구사함에 따라 한국 축구도 이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고, 지난해 상반기까지 3백과 4백을 혼용하던 허정무 감독도 끝내 4백을 받아 들였습니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은 한국 축구의 중앙 수비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유명했죠. 허 감독은 지난해 6월 15일 <OSEN>을 통해 "저라고 4백을 쓰고 싶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한국 축구에 쓸 만한 중앙 수비수가 없다. 여기서 쓸 만한 중앙 수비수란 4백에 맞는 중앙 수비수를 말하는 겁니다. 만약 있다면 천거를 해주십시오. 저 자신도 정말 좋은 중앙 수비수를 찾고 있습니다"며 한국 축구 수비력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허 감독은 지난해 축구 잡지 <포포투> 6월호에서도 K리그 중앙 수비수들에 대하여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을 만큼, 4백 중앙에 어울릴만한 수비수가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수비수 한 명의 기량이 아닌 두 명의 조합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중앙 수비수는 공격수와 달리 개인 활약보다 조직의 끈끈한 힘을 필요로 하는 포지션이자 동료 선수와의 척척 맞는 호흡을 필요로 합니다. 4백을 구사할 경우 선수 선발부터 4백에 맞는 선수를 뽑아(특히 두 명의 중앙 수비수) 유기적인 조직력을 최대화 하는 것이 감독의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현재 프리미어리그 1위 수성에 성공하고 있는 절대적 요인은 '붉은 산맥'으로 불리는 튼튼한 수비 조합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리그 11경기 연속 무실점 무패행진(9승2무)를 벌이면서 1위 자리를 당당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죠. 11경기 동안 네마냐 비디치를 중심으로 리오 퍼디난드-조니 에반스-게리 네빌이 파트너로 호흡했지만 상대팀에 흔들리는 기색없이 무실점 행진을 펼쳤습니다. 비디치가 수비 영역이 좁은 단점이 있음을 감안하면, 수비수 개인의 힘보다는 '조합의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한국 축구는 특출난 중앙 수비수가 없는 단점이 있지만 지난해 아시안컵에서는 선수끼리의 단결된 조합이 강하다는 것을 확인 시켰습니다. 핌 베어벡 전 감독이 중앙 수비수 조합의 힘을 앞세워 4백을 성공시킨 결정적 이유는 수비수 기량 향상보다 최적의 조합 찾기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죠. 베어벡 전 감독은 아시안컵 이전까지 '김동진-김상식', '김진규-강민수' 조합을 실험하며 저울질 한 끝에 후자를 택해 대회 6경기 3실점의 견고한 수비력을 이끌었습니다. 김진규와 강민수는 느린 발과 볼 트래핑이 약한 선수들이지만 전남(당시 두 선수 소속팀)과 올림픽대표팀에서 수많은 호흡을 맞춘 끝에 최상의 수비력을 발휘했습니다.
물론 대표팀 수비력이 허정무 감독 부임 이후 다시 약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정해성 수석코치와 더불어 3백에 익숙했던 지도자인데다 K리그에서 내놓으라하는 여러 수비수들을 실험하면서('지나친 실험'이라는 외부의 비판을 받을 정도로) 거의 매 경기마다 수비라인 붕괴로 흔들린 장면들이 속출했죠. 잦은 선수 구성 변화와 그로 인한 수비수들의 불안한 호흡은 감안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이를 의식한 듯, 지난해 하반기부터 '강민수-조용형' 조합을 꾸준히 기용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실험 결실을 맺기 위해 최적의 중앙 수비수 조합을 완성시키겠다는 의미에서죠. 물론 곽태휘와 이정수 같은 발이 빠르고 듬직한 센터백들이 있지만 두 선수는 그동안 부상이 잦았기 때문에 꾸준함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진규는 조용형에 비해 위치 선정과 정확한 패스 연결이 약해 허 감독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국가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된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일각에서 제기되는 김진규와 허 감독의 불화설은, 허 감독이 지난해 부인했기 때문에 사실이 아닙니다.)
세계 축구의 현재 흐름을 제시하는 유럽 빅 리그 팀들의 경기를 보면 수비 조직력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수비진의 어느 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상대팀 공격수에 의해 여지없이 실점 위기 상황을 맞이하는 모습을 통해 현대 축구의 수비는 ´조합의 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견고해져야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개인 기량이 뛰어난 중앙 수비수가 없다는 현실을 지난해 6월에 토로했습니다. 그 점을 인지한 듯, 지난해 하반기부터 '강민수-조용형' 조합을 꾸준히 기용했고 이들이 찰떡궁합 수비력을 펼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한국 축구가 수비 불안이라는 고질적인 약점을 떨치려면 강민수-조용형 조합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들을 조련하는 허정무 감독 또한 책임이 막중할 것입니다. '허 감독의 선택'이라 할 수 있는 강민수-조용형 조합이 그동안 고질적으로 불안했던 한국 축구 수비력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희망'으로 거듭날지 앞으로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