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에게 '박지성의 새로운 경쟁자', '포스트 긱스'로 주목받는 세르비아 출신 윙어 조란 토시치(21)가 마침내 레드 데블스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홈페이지는 현지 시간으로 2일 토시치를 비롯 '세르비아의 카카'로 불리는 공격형 미드필더 아뎀 랴지치(17)를 영입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토시치는 바로 맨유의 멤버로 합류하여 등번호 14번을 달고 뛰게 되었으며 랴지치는 올 시즌이 끝날 때 현 소속팀인 파르티잔 베오그라드에서 활약한 뒤 다음 시즌부터 올드 트래포드에서 뛰게 됩니다. 아직 두 선수의 몸값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잉글랜드 언론에서는 두 선수의 이적료를 합해 1700만 파운드(약 328억원)로 예상하고 있다네요.
2. 국내 매스컴에서는 토시치를 박지성 경쟁자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박지성vs나니' 경쟁 구도에 토시치까지 늘은 셈인데, '언론에서 보도된 의도라면' 이제부터는 한 포지션에 3명이 포지션 싸움을 벌이게 되는 구도로 해석할 수 있겠죠. 왜냐하면 토시치는 왼쪽 윙어이기 때문이죠. 물론 오른쪽도 소화 가능하지만 왼발잡이이기 때문에 왼쪽에 배치 되었던 겁니다.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은 3일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토시치는 젊고 왼쪽 측면을 폭 넓게 움직이는 선수다. 맨유는 활동 반경이 넓은 선수를 좋아한다"며 토시치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토시치는 부지런한 활동 반경을 비롯 빠른 스피드와 날카로운 크로스, 빨랫줄 같은 프리킥과 중거리슛, 그리고 뛰어난 득점력(2007년 파르티잔 이적후 57경기 18골 기록)을 자랑하는 선수로서 '언뜻보면' 박지성을 능가할 수 있는 재목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3. 그러나 박지성 입지에는 별 다른 영향이 없을거라 보여집니다. 잉글랜드 대중지 <더 타임즈>는 3일 "토시치의 맨유 이적이 박지성의 미래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고 전망한데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이 맨유의 재계약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올 시즌 맨유의 스쿼드 플레이어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잡은 박지성의 실력이 퍼거슨 감독에게 인정받았음을 의미합니다만, 이는 토시치의 기량이 아직은 박지성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직 프리미어리그에서 검증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빅 리그가 아닌 다른 유럽리그에서 활약하던 20대 초반의 선수가 '세계 최고의 팀'에서 온갖 산전수전 끝에 주전으로 올라선 선수의 입지를 위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다른 프리미어리그 클럽(빅4 제외)이라면 가능한 시나리오일지 모르나 맨유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4. 더욱이 토시치가 팀 공격 패턴에 능숙하게 녹아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2006년 1월 맨유로 이적한 파트리스 에브라와 네마냐 비디치는 동료 선수와의 호흡이 맞지 않은 문제점과 그로 인한 잔 실수를 범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죠. 지난해 1월 맨유로 이적한 마누초 곤칼베스는 '워크 퍼밋 문제와 맞물려' 유럽 무대 적응 차원에서 그리스 클럽인 파나티나이코스에서 6개월 임대로 활약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월 첼시로 이적했던 니콜라스 아넬카가 지난 시즌 종료까지 연이은 골 침묵에 시달려 '먹튀'라는 비아냥을 받았는데 (올 시즌 EPL 득점 1위죠), 1월 이적시장을 통해 빅 클럽에 들어왔던 선수들 중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선수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여름 이적시장은 오프시즌 또는 시즌 초반에 열리기 때문에 이적생이 팀 전술에 쉽게 녹아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1월 이적시장은 시즌 중에 개장하는데다, 특히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박싱 데이라는 특수성에 따라 휴식기가 없기 때문에 이적생들이 적응하는데 시간적인 여유가 빠듯합니다. 그래서 1월 이적시장에서는 대형 선수 이적이 많지 않습니다. 시즌 전반기에 나타났던 취약 전력을 메우기 위해 다른 팀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 1월 이적시장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맨유는 왼쪽 측면을 팀의 취약점으로 여겼던 겁니다. 이를 확대 해석하여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의 골 결정력을 못믿어서 토시치를 영입했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퍼거슨 감독이 토시치를 데려온 이유는 박지성과 큰 연관이 없습니다.
5. 토시치 영입으로 직격탄 맞은 선수는 루이스 나니 입니다. 잉글랜드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지난달 26일 "나니는 맨유 1군에서의 전망이 불안하다"고 꼬집을 만큼 올 시즌 맨유에서 가장 실망스런 활약을 펼치고 있는 선수가 나니입니다. 나니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선발 출장 2회에 그치는 등 리그에서는 이렇다할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으며 칼링컵을 비롯해 약팀 경기에 선발 출장하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23세의 젊은 영건이나 뚜렷한 경기력 향상 기미마저 보이지 않는게 나니의 현 주소죠.
맨유가 토시치를 영입했던 '타이밍'까지 절묘합니다. 맨유는 라이언 긱스 대체자 영입을 위해 2007년 5월 나니를 데려왔지만 불과 1년 5개월 만에(토시치 워크 퍼밋 발급이 지난해 11월에 이뤄졌으니) 또 다른 '포스트 긱스'를 영입했습니다. 더욱이 퍼거슨 감독은 2007년 11월 11일 잉글랜드 일간지 <데일리 메일>을 통해 "내 스쿼드 구상은 긱스는 나니로 대체되는 것이다"고 말했지만 나니는 감독 기대와 달리 슈팅 난사와 팀의 빠른 템포 조절 미숙, 무리한 드리블 돌파를 일관하다 결국 주전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결국 토시치가 들어오면서 나니의 입지는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6. 맨유가 토시치를 영입한 이유는 팀의 공격 스타일과 연관 깊습니다. 왜냐하면 맨유의 2007/08시즌과 2008/09시즌 공격력이 달라졌기 때문이죠. 좋게 바뀐것이 아니라 나쁘게 바뀐 것입니다.
맨유는 지난 시즌 '긱스(나니)-루니-테베즈-호날두' 체제를 앞세운 무한 스위칭을 통해 4경기 연속 4골을 기록하는 파상적인 공격축구로 지구촌 축구계에 '신선함'을 안겨줬습니다. 전방을 향해 한 박자 빠르고, 송곳처럼 정확한 패싱력을 지닌 중앙 미드필더(안데르손, 스콜스)를 중원 한 가운데에 배치하여 스피드가 탁월한 4명의 선수들이 최전방에서 이리저리 활발하게 스위칭 플레이를 하며 상대팀의 밀집 수비까지 가볍게 무너뜨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루니가 측면 이동까지 불사르는 이타적인 활약에 치중했고 결국 이것은 호날두와 테베즈의 득점력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체력이었습니다. 호날두와 테베즈가 지난 시즌 후반부터 체력저하로 고전하기 시작하면서 맨유의 공격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호날두는 무리한 출전 끝에 FC 바르셀로나전과 첼시와의 리그경기에서 원톱으로 출장하고도 부진을 거듭한데다 수비 가담에 소극적이었습니다. 테베즈는 주전과 벤치를 오가는 신세가 되었죠. 그 체력저하가 올 시즌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빠른 템포'가 트렌드였던 맨유의 공격력이 무뎌지게 되었습니다. 클럽 월드컵을 비롯한 여러 대회를 치르는 빡빡한 경기 일정으로 피로감은 더욱 쌓였고 그 여파가 '활동량이 적은'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실망스런 경기력으로 이어졌습니다. 맨유에 필요한 선수는 퍼거슨 감독이 앞서 언급했듯 폭 넓은 움직임을 자랑하는 선수였는데 결국 베르바토프는 '계륵' 신세가 되었습니다.
7. 맨유는 클럽 월드컵을 제외한 최근 6경기에서 4골에 그쳤습니다. '오셰이-비디치-퍼디난드-하파엘(네빌)'로 짜인 포백이 견고함을 유지하며 7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펼쳤기 때문에 근래에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지만 공격력 저조로 EPL 3연패와 챔피언스리그 2연패 전선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호날두가 상대팀 밀집 수비에 이렇다할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맨유의 공격력이 예전같지 않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호날두보다 박지성-하파엘-캐릭이 포진한 2선을 통해 공격 루트를 여는 장면이 부쩍 많아지면서 '호날두 시프트'는 더 이상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호날두는 한때 왼쪽 윙어로 전환하여 상대팀 밀집 수비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박지성-하파엘'라인이 뜨는 계기로 이어진 셈이죠.
8. 아직은 섣부른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토시치의 경쟁자는 호날두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호날두의 대안으로 꼽혔던 나니는 실패쪽으로 기울어졌고 박지성은 올 시즌을 통해 왼쪽과 오른쪽, 중앙(스위칭 과정에서)에서 만능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선수임을 퍼거슨 감독 앞에 실력으로 증명했습니다.(사실 박지성의 주 포지션이 오른쪽이긴 하지만, 맨유에서는 그동안 왼쪽에서 활약했죠.)
호날두는 세계 최정상급 기량을 갖춘것은 분명하나 지난해 11월 15일 스토크 시티전 이후로 '잘 나갔던' 오름세가 완전히 꺾였습니다. 더욱이 레알 마드리드 이적 불씨가 아직까지 남아있어 오랫동안 맨유에 잔류한다고 보기에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9. 퍼거슨 감독은 호날두와 토시치의 경쟁을 통해 서로의 경기력 상승을 엮어내는 '경쟁 유도'를 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경쟁 자체가 선수들의 기량 발전과 경기력 향상을 통해 팀을 강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어 올 시즌 목표였던 EPL 3연패와 챔피언스리그 2연패의 초석을 다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호날두가 주전에서 금방 밀린다고 논하는 것은 아닙니다. 퍼거슨 감독은 그동안 호날두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지만 최근의 경기력에 어떠한 반전 돌파구가 보이지 않자 당근이 아닌 채찍질을 하게 되었죠. 그것이 '토시치 영입'을 통한 자극제 입니다. 그동안 퍼거슨 감독은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위해 치열한 주전 경쟁을 유도할 만큼 냉철하고 치밀한 지도력으로 22년간 장기집권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퍼거슨 감독의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 앞에서는 예외가 없었고 '헤어드라이어 트리트먼트' 역시 마찬가지 였습니다.
토시치는, 잠재적으로 맨유의 공격 체계를 바꿔놓을 수 있는 선수입니다. 그 과정까지 시간이 필요하겠습니다만 아직은 맨유의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호날두도 맨유 입단 초기에는 올레 군나르 솔샤르, 데런 플래처와 함께 오른쪽 측면 주전 경쟁을 벌였던 만큼, 토시치도 경쟁 앞에 예외라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그저 호날두를 '긍정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선수일 뿐이죠.
10. 그렇다면 박지성은? 현 맨유 공격진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토시치에게 '금방' 주전 자리를 내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팀에서 가장 열심히 뛰어다니고 부지런히 공간을 창출하고 동료 선수에게 끊임없이 공격 기회를 제공하는 성실한 선수를 내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박지성도 토시치 영입을 통한 자극에 예외일 수 만은 없을 것입니다.(앞서 퍼거슨 감독의 경쟁 유도를 논했던 것 처럼) 토시치가 왼쪽을 주 무대로 삼아 양쪽 측면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지금 당장은, 팀 내 입지에서 토시치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적다고 봐야 합니다. 박지성은 지금의 페이스를 계속 이어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BY. 효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