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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이 퍼거슨에게 사랑받는 이유


'한국 축구의 아이콘' 박지성(2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어느새 우리 축구팬들, 그리고 아시아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박지성은 올해로 유럽생활 6년째를 맞았습니다. 2003년 1월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으로 이적한 뒤 지금의 잉글랜드 맨유에 이르기까지 자타가 공인하는 유럽 명문 클럽의 주축 선수로 자리매김하고 있죠. 이번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을 포함, 유럽 리거로서 10번의 우승 경력을 자랑하고 있는데 아시아 선수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 획득 및 UEFA 챔피언스리그와 클럽 월드컵 우승 경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특히 6년 동안 10번의 우승을 일군 '현존하는' 아시아 선수가 없다는 점에서 아시아권 내에서 박지성의 입지는 독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박지성이 쌓아왔던 커리어에 이러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박지성 개인의 실력은 떨어지는데 그저 팀이 좋아서 우승 경력이 많을 뿐이다'

어쩌면 이들의 주장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에인트호벤 시절 에이스로 활약했던 그가 맨유에서는 '팀 공격의 중심' 루니-호날두의 공격을 지원하는 조연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죠. 루니와 호날두 처럼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고, 화려한 개인기술이 돋보이지 않고, 골 결정력 부족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그의 가치가 국내 팬들에게 폄하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모 포털 사이트 관련 기사 댓글을 보더라도 칭찬보다 깎아내리는데 열을 올리고 있을 정도죠. 클럽 월드컵 우승 전후로는 골 결정력이 논란 대상에 떠오를 정도로 그를 향한 질타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사실 박지성은 맨유의 2006/07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 2007/08시즌 더블 달성(EPL, CL 우승)에 꾸준한 공헌을 하지 못했습니다. 2006년 9월부터 2년 동안 3번의 큰 부상을 입었고 공백 기간을 합치면 1년 2개월이나 됩니다. 부상에 발목 잡혀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드높이지 못했던 것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죠.

여기에 루이스 나니라는 포지션 경쟁자가 최근까지 자신의 입지를 위협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그런 박지성을 두고 '나니의 백업 멤버'라고 비아냥거렸을 정도입니다. '약팀 전용', '긱스 백업', '박지성<나니', '박지성=맨유 2군 선수'라는 수식어가 탄생했던 것 처럼 박지성이 호날두급의 실력을 가지지 못한 것에 실망하는 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박지성은 맨유를 떠나야 한다'는 일희일비식의 주장을 펼친 팬들까지 적지 않았죠.

그러나 박지성이 맨유에서 네 시즌 동안 활약할 수 있었던 것, 통산 100경기 출장, 클럽 월드컵 선발 풀타임 출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분명 있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일부 축구팬들은 '박지성은 아시아를 공략하기 위한 맨유의 마케팅용 선수일 뿐이다'고 주장합니다만(맨유측은 이를 부정했죠.) 맨유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었기 때문에 마케팅 효과가 높았을 뿐입니다.(선수 마케팅이 성공을 거두려면 해당 선수의 맹활약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 '좋은 활약'의 정체란 무엇일까요?

박지성의 스승인 이학종 수원공고 감독은 지난 20일 <조이뉴스24>를 통해 제자를 향한 애정어린 칭찬을 했습니다.

"(박)지성이가 그런 여건(유럽에서의 도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솔직히 개인 능력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를 얼마나 잘해요. 지성이에게는 그런 것을 활용할 수 있는 머리가 있어요"

그렇습니다. 박지성이 오늘날 맨유 전력에 없어서는 안 될 '윤활유'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팀 플레이'였습니다. 그동안 박지성은 루니-호날두를 중심으로 하는 맨유 전술에 이타적인 역할을 도맡았습니다. 그는 두 선수 같은 맨유의 주연급 선수는 아니지만 '주연급 조연' 역할을 소화하며 그라운드에 서있는 모든 선수들의 활약을 빛나게 하는 눈부신 팀 공헌도를 발휘했죠. 부지런한 움직임과 빠른 문전 침투, 공간 창출 능력, 2선에서의 촘촘한 수비력을 골고루 발휘할 수 있는 맨유의 미드필더는 박지성 단 한명일 뿐입니다.

강철같은 체력을 지닌 박지성은 개인보다는 팀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살신성인'을 앞세워 팀에 헌신하는 자세가 강한 팀 플레이어입니다. 마치 농구에서 가로채기를 활발히 하듯 90분 동안 그라운드를 활발히 휘저으며 공간을 창출하고 팀 플레이 위주의 경기를 펼치는 선수를 어느 감독이든 좋아하지 않을 수 없죠. 때로는 하파엘과 함께 오른쪽 측면 뒷공간에서 협력 수비를 구사하여 상대팀 선수가 소유한 공을 빼앗아 재빨리 역습을 전개하고 그 과정에서 재빠르게 문전으로 침투하여 공격 기회를 살리는게 박지성의 대표적인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활약에
'박지성은 골 결정력이 약하다'고 입버릇 처럼 말하는 퍼거슨 감독 조차도 지난 20일 클럽 월드컵 기자회견에서 '나는 박지성을 좋아한다'는 말을 내뱉었을 정도죠.

국제축구연맹(FIFA)이 2006년 4월에 발간한 <FIFA 매거진> 4월호에 따르면 "박지성은 화려하지 않지만 강한 도전 정신을 가진 선수다. 특히 팀 플레이가 좋은 선수"라고 적혀있습니다. 이는 박지성의 팀 플레이가 검증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더구나 맨유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절대적인 이유가 '개인이 아닌' 팀을 위해 뛰겠다는 의지와 그로 인한 경기력이 있었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겁니다.

최근 박지성의 활약은 단연 군계일학입니다. 다른 동료 선수들이 일본 원정 이후 몸이 무거워 움직임이 경쾌하지 않았던(서형욱 MBC 해설위원이 미들즈브러전 도중 이를 지적했죠.) 것과 반대로 박지성은 미드필더진과 공격진을 활발히 움직이며 팀 공격에 거침없이 활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얼마전 감기 몸살로 고생하던 선수가 90분 내내 지친 기색 없이 '꺼지지 않는 열정'을 발휘한 것이죠.(참고로 꺼지지 않는 열정은 박지성 자서전 제목입니다.) 일본 원정 이후 전체적인 컨디션이 저하된 맨유 선수들이 미들즈브러를 상대로 일방적으로 경기를 주도하여 34개의 슈팅을 '난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박지성이 미드필더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짧고 정확한 패스를 움직이고, 인터셉트 이후 재빠른 역습 전개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미들즈브러전에서는 박지성의 새로운 면모를 읽을 수 있었던 경기였습니다. 이날 슈팅 6개를 날렸는데 맨유 이적 후 최다 슈팅을 기록한 것이죠. 서형욱 해설위원이 "박지성 본인이 해결하려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슈팅을 많이 시도하고 있다"고 말한 것 처럼 박지성은 '반드시 골을 넣고 말겠다'는 집념이 강했기 때문에 많은 슈팅을 날렸습니다. 평소 이타적인 활약에 치중했던 박지성이 가장 공격수답게 활약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죠.

물론 골문 정면에서 크게 허공을 가른 슈팅 장면은 아쉽기만 합니다. 평소 같았으면 가볍게 골을 넣을 수 있는 장면이어서 선수를 향한 질타를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박지성을 칭찬할 수 있는 이유는 미들즈브러전에서 팀의 골을 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들즈브러전에서 가장 중요했던 한 가지. 퍼거슨 감독이 후반 막판 라이언 긱스를 투입시키려고 할때 국내 팬들은 '박지성이 교체되는 구나'라며 아쉬워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이 아닌 '이날 부진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빼는 것이었습니다. 박지성의 달라진 팀 내 위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죠. 이와 함께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의 미들즈브러전 활약을 인정한 것이죠. 아무리 많은 슈팅을 놓쳤다 하더라도 팀 공격을 위해 활발히 뛰어 다니고 여러차례 골 기회를 만들면서 때로는 자신이 골을 넣으려는 집념이 투철했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이 쉽게 교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맨유 공격진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최상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 선수는 박지성 입니다. 루니-호날두-베르바토프-테베즈는 올 시즌 부상을 포함해 기복이 심한 경기력, 일본 원정 이후에는 컨디션까지 저하되면서 자연스럽게 박지성의 위상이 높아진 요즘입니다. 팀을 위해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모든것을 바치는 박지성의 경기력은 퍼거슨 감독을 반하게 했습니다.

박지성의 재계약 역시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맨유에 객관적인 보도를 하기로 유명한 맨체스터 지역 언론 <맨체스터 이브닝뉴스>는 29일 "퍼거슨 감독은 시즌 종료 직전 박지성의 재계약 문제가 마무리 되길 원한다. 박지성은 퍼거슨의 팀에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가 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는 박지성이 퍼거슨 감독에게 인정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지난 14일 토트넘전에서 맨유 통산 100경기 출장, 이번 미들즈브러전에서 프리미어리그 통산 50번째 선발 출장한 박지성이 이제 2009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더 발전된 모습으로 축구팬들을 기쁘게할지 기대됩니다.

By. 효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