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쿠젠이 레알 소시에다드전에서 2-1로 이기면서 올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첫 승을 거두었으나 손흥민에게는 아쉬움에 남았던 경기였다. 이날 슈팅 5개를 날렸으나 단 1골도 넣지 못했다. 평소에 비해 많은 슈팅 기회가 찾아왔으나 골운이 따라주지 못하면서 최근 4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 달성에 실패했다. 레버쿠젠 선수들의 골 결정력이 집단적으로 저조했음을 고려해도 손흥민에게는 팀의 에이스로 도약하기 위한 결정적인 활약이 필요했다. 그러나 레알 소시에다드전에서 그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게 됐다.
손흥민은 올 시즌 3골 3도움 기록중이다. 시드니 샘(8골 6도움) 스테판 키슬링(7골 4도움) 같은 동료 공격수들에 비하면 골과 도움 횟수가 적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손흥민은 지난 시즌 함부르크 시절 12골을 통해 '많은 골을 넣는 선수'라는 이미지가 있었으나 레버쿠젠 이적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골을 터뜨리지 못했다. 전 소속팀 시절에 비해 이타적인 성향으로 바뀌면서 득점력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샘도 손흥민 못지 않게 이타적인 경기를 펼치며 팀 전력의 활기를 불어 넣는다. 그렇다면 두 명의 차이는 무엇일까? 세바스티안 보에니쉬와의 공존 여부였다.
[사진=세바스티안 보에니쉬 (C) 유럽축구연맹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uefa.com)]
보에니쉬의 폼은 한 경기를 제외하면 항상 한결 같았다. 지나친 오버래핑에 이은 수비 뒷 공간 허용, 부정확한 크로스와 패스, 무리한 슈팅을 날리며 왼쪽 풀백으로서 지나치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탐욕적인 성향은 손흥민과 레버쿠젠에게 독이 됐다.
우선, 레버쿠젠이 챔피언스리그 32강 1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2-4로 패했던 결정적 요인은 보에니쉬의 부진 때문이었다. 잇따른 수비 실수를 남발한 것이 레버쿠젠의 실점으로 이어졌다. 맨유전 다음 경기였던 마인츠전에서는 공격 가담을 자제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더니 왼쪽 윙 포워드였던 로비 크루세가 2골 1도움 기록하며 팀 승리를 공헌했다.
하지만 보에니쉬의 단점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이번 레알 소시에다드전에서도 특히 후반들어 카를로스 벨라를 봉쇄하는데 실패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후반 16분 자신의 활동 반경이 앞쪽으로 쏠려있을 때 벨라에게 뒷 공간 침투를 허용하면서 결정적인 실점 위기를 허용했다. 골키퍼 베른트 레노의 선방이 없었으면 레버쿠젠은 레알 소시에다드에게 1-2로 역전 당했을 것이다. 7분 뒤 보에니쉬는 손흥민과 함께 교체됐다. 레버쿠젠의 왼쪽 자원들이 후반들어 경기력이 떨어지면서 동반 교체 아웃된 것이다. 특히 보에니쉬는 올 시즌 처음으로 경기 도중에 교체됐다.
손흥민의 후반전 경기력이 딱히 나빴던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에니쉬가 지나치게 앞으로 올라오면서 손흥민의 역할이 애매모호했다. 왼쪽 측면에 있을 때는 보에니쉬, 중앙에 있을 때는 키슬링과 활동 반경이 겹쳤다. 이렇다보니 볼을 터치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손흥민에게 향하는 동료 선수들의 패스 퀄리티가 떨어졌던 장면도 있었다. 손흥민이 왼쪽 윙 포워드로서 자신의 공격력을 끌어올리기에는 보에니쉬가 도와주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다. 보에니쉬가 철저히 손흥민을 돕지 않다보니 레버쿠젠의 왼쪽 공격이 덜 완성된 모습을 보였다. 올 시즌 내내 이랬다.
사실, 손흥민이 이타적인 성향으로 바뀐 것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함부르크 시절에 비해서 팀 플레이가 향상된 모습을 보였으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활약이 보에니쉬의 약점을 커버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 실제로 올 시즌 분데스리가에서는 손흥민이 태클 1,7개, 인터셉트 1.7개를 기록했으며 보에니쉬의 태클 1.4개, 인터셉트 0.9개보다 더 많았다.(한 경기당 평균 기준) 챔피언스리그 두 경기에서는 손흥민의 태클과 인터셉트 횟수가 적었으나 분데스리가에서는 왼쪽 풀백으로 뛰는 선수보다 더 많았다. 아울러 수비 가담까지 열심히했다.
이를 정리하면, 손흥민이 수비에 적잖은 에너지를 소모하다보니 상대 진영에서 스스로 골 기회를 창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축구에서 공격수에게 수비력이 요구되는 것은 분명하나 손흥민의 경우 오히려 자신의 공격력과 득점력에 영향을 끼치게 됐다. 좋은 왼쪽 풀백과 호흡을 맞췄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공격 포인트를 올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