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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램지의 저주, 아스날 EPL 1위 원동력?

 

축구와 야구 같은 인기 스포츠에서는 '저주', '징크스'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미디어를 중심으로 자주 쓰인다. 징크스에 대해서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많은 분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특정 팀이나 대회에 약한 징크스를 예로 들 수 있다. 저주라는 단어도 징크스 못지 않게 자주 쓰인다. 얼마전 임창용(시카고 컵스)이 미국 메이저리그에 승격하면서 '염소의 저주'가 화제를 모았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LG 트윈스가 2002년 이후 11년 만에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하여 '김성근 저주'에서 벗어났다.

 

축구에서도 여러가지 저주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한국 축구팬들에게 익숙한 존재가 '아스날 9번의 저주'가 아닐까 싶다. 1995년의 폴 머슨을 시작으로 아스날에서 등번호 9번을 달았던 선수들이 성공하지 못했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9번의 저주라는 말이 나돌았다. 박주영도 2011/12시즌 아스날로 이적하면서 9번을 부여받았으나 많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2012/13시즌 셀타 비고로 임대되었으며 등번호가 30번으로 변경됐다. 현재는 루카스 포돌스키가 9번을 달으면서 지난 시즌에 제 몫을 다했다. 하지만 9번의 저주를 완전히 떨쳤다고 보기에는 지난 시즌만으로는 부족함이 없지 않다.

 

 

[사진=애런 램지 (C)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arsenal.com)]

 

아스날과 관련된 또 다른 저주가 있다면 바로 '램지의 저주'다. 애런 램지가 골을 넣으면 유명인이 사망해서 저주라는 단어가 붙여졌다. 그 시작은 2011년 5월 1일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이었다. 골을 넣으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는데 그 이후 오사마 빈 라덴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1/12시즌 이후 램지가 골을 터뜨린 뒤에는 스티브 잡스, 마우마르 카다피, 휘트니 휴스턴 같은 유명인이 세상을 떠났다. 사람마다 램지의 저주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겠지만, 램지의 저주는 일종의 끼워 맞추기 성격이 더 짙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램지의 저주가 2013/14시즌에는 다른 방향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램지가 올 시즌 초반부터 많은 골을 넣는 폭풍 성장을 하면서 '외질 효과'와 맞물려 아스날의 프리미어리그 1위 진입을 공헌했다. 램지는 올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를 포함한 10경기에서 8골 3도움 기록했다. 플레이오프 2경기를 빼면 8경기에서 5골 3도움 올렸다. 프리미어리그 6경기에서는 4골 2도움 올리는 상황. 지난 시즌 각종 대회를 포함한 47경기에서 2골 2도움 기록했을때와 달리 이제는 아스날 전력의 새로운 핵심이자 미들라이커로 거듭났다.

 

특히 램지가 프리미어리그에서 골을 작렬했던 3경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램지는 9월 14일 프리미어리그 4라운드 선덜랜드전에서 2골 넣으며 아스날의 3-1 승리를 기여했다. 4라운드에서는 첼시가 에버턴 원정에서 0-1로 패했다. 램지는 22일 5라운드 스토크 시티전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아스날의 3-1 승리를 공헌했다. 5라운드에서는 리버풀이 사우스햄프턴과의 홈 경기에서 0-1로 패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맨체스터 시티와의 라이벌전에서 1-4로 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아스날은 5라운드 승리를 통해 프리미어리그 선두로 뛰어오르게 됐다.

 

램지는 9월 29일 6라운드 스토크 시티전에서 아스날의 두 번째 골을 터뜨렸고 팀은 2-1로 이겼다. 6라운드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올드 트래포드에서 웨스트 브로미치에게 1-2로 덜미를 잡혔고 맨체스터 시티는 '벤테케가 빠진' 애스턴 빌라 원정에서 2-3으로 패했다. 램지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여러 차례 골을 성공시키면서 아스날은 승승장구했고 일부 빅6 클럽은 전력이 약한 팀을 상대로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했다. 맨체스터 더비의 경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지역 라이벌 팀에게 많은 실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아스날의 프리미어리그 1위 질주가 램지의 저주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램지의 저주보다는 '램지의 폭풍 성장', '램지의 포텐 폭발', '램지의 눈부신 발전'이라는 수식어가 더 적합하다. 램지가 예전과 달리 많은 골을 터뜨리면서 외질을 비롯한 다른 동료 선수들과 함께 힘을 모아 아스날의 1위 등극을 주도했다.

 

그럼에도 저주라는 단어가 무조건 어색한 것은 아니다. 램지가 최근 프리미어리그에서 골을 넣었을 때 일부 빅6 클럽이 승점 획득에 실패했다. 빅6 클럽이 모든 경기를 이길 수는 없는 일이지만, 예전과 달리 빅4 또는 빅6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모든 상위 클럽들이 1경기라도 소홀히 할 수 없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아스날의 시즌 초반 선전은 의미가 있다. 램지가 나날이 성장하며 아스날의 프리미어리그 선두 유지에 힘을 실어줄지, 그리고 아스날이 2003/04시즌 이후 10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달성하는데 많은 기여를 할지 앞으로의 활약상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