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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위기에 강했던 박지성, 끝까지 믿어보자

 

박지성의 2년 전 행보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2010/11시즌 8골 6도움을 기록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공헌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는 등 팀 내 입지가 탄탄했다. 이 같은 공로에 의해 2011년 8월에는 맨유와 세번째 재계약을 맺었다. 이때까지는 맨유에서 은퇴하고 싶다는 선수 본인의 마음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박지성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팀에서 뛰고 있다. 지난해 여름 퀸즈 파크 레인저스(이하 QPR) 이적은 충격적이었지만, QPR의 꼴찌 행진과 박지성을 향한 현지 축구팬들의 야유는 더욱 충격적이다. 지난 27일 FA컵 4라운드 MK 돈스전에 선발 출전하면서 67분 뛰었으나 교체 당시 QPR팬들의 야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TV 중계가 없었기 때문에 야유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으나 그런 일이 벌어진 것 자체가 좋지 않다.

박지성 야유, PSV 시절과 다른 명암

아직 시즌은 끝나지 않았지만, 박지성의 QPR 이적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어쩌면 프로 데뷔 후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QPR은 붙박이 주전을 보장할만한 클럽이었지만 냉정히 말하면 프리미어리그 중위권 도약을 장담할 수 없는 레벨이었다. 지난해 여름 이적시장에서 박지성을 비롯한 12명의 이적생을 보강하면서 선수층만 좋아졌을 뿐 조직력 약화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겨우 강등을 면했던 17위 클럽에게 급진적인 변화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그 결과는 프리미어리그 꼴찌, 감독 교체, 박지성 주장 박탈이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박지성이 현지 QPR팬들에게 야유를 받아야 하는 현실이다. MK 돈스전 한 경기 부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 마음에서 박지성을 향한 불신이 쌓였던 것이 아니면 굳이 야유할 필요 없었다. 어쩌면 QPR의 꼴찌 추락은 박지성도 책임이 없지 않다. 한때 팀의 주장이었으며, 무릎 부상으로 한동안 경기를 뛰지 못했던 것을 미루어볼 때 그들이 불쾌한 마음을 내비칠만 했다. 물론 QPR의 성적 부진 원인은 여러가지다. 하지만 국내 축구팬 입장에서 박지성을 향한 야유는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박지성은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에서 뛰었던 시절에도 홈팬들의 야유를 받았던 경험이 있다. 당시 유럽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에인트호번 팬들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 홈 경기마저 뛰지 못했을 정도. 팀 동료이자 에인트호번 주장이었던 판 보멀로부터 비판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반드시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품으며 자신을 괴롭혔던 고난을 극복한 끝에 에인트호번의 주축 선수로 거듭난데 이어 맨유에 입단하게 됐다. 에인트호번 팬들의 야유를 견디지 못했다면 맨유맨 박지성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에인트호번 시절이 유럽 무대를 빛낼 축구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이었다면 지금의 QPR에서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국내 여론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프리미어리그 개막전 스완지 시티전 0-5 대패를 시작으로 팀 성적 부진, 두 번의 무릎 부상, 공격력 저하 논란, 주장 박탈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개월 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홈팬들의 야유까지 받는 상황.

아직 박지성의 2012/13시즌은 끝나지 않았다

이와 더불어, 경기 종료 후에는 레드냅 감독이 박지성을 비롯 몇몇 선수를 겨냥한 불신을 드러낸 것이 잉글랜드 일간지 <데일리 메일>에 보도됐다. 실제로는 박지성 한 명만 질타하지 않았으나 패배의 원인을 선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정 선수가 실망스런 활약을 펼쳤을지라도, 그 선수가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다. 박지성을 향한 레드냅 감독의 본심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인터뷰만을 놓고 보면 신뢰 관계가 어느 정도 짐작된다.

박지성의 에인트호번 시절과 현 소속팀에서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소위 말하는 '감독 운'이다. 네덜란드 무대에서 시련을 극복했던 원동력은 히딩크 감독의 신뢰였다. 만약 자신의 축구 인생에서 히딩크 감독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박지성은 없었다. 그리고 QPR로 이적하기 전까지 소속팀과 대표팀에 걸쳐 많은 감독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반면 지금의 QPR에서는 레드냅 감독과의 관계가 걱정스럽다. 최근 부상 복귀 후 선발 출전한 경기가 여럿 있음을 떠올려 보면 심각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레드냅 감독이 MK 돈스전 패배 이후 박지성과 관련된 안좋은 발언을 한 것이 신경쓰인다. 참고로 박지성 주장 박탈도 레드냅 감독 부임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분명한 것은, 박지성은 한국 최고의 축구 선수로 자리잡기까지 숱한 시련들을 이겨냈다. 교토 퍼플상가 시절에는 2부리그 강등을 경험했고, 에인트호번 시절에는 한때 부상과 부진에 빠지면서 홈팬들의 야유까지 들었다. 맨유 시절에도 부상 악령은 계속되었으며 팀 내 입지가 안좋아질 조짐을 보일때 마다 '위기설'에 시달렸다. 2007/08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18인 엔트리 제외도 빼놓을 수 없다.

예전 일을 떠올리면 QPR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에 좌절하지 않고 슬기롭게 극복하려 노력할 것이다. 여러 고난을 이겨냈기에 지금의 박지성이 존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 2012/13시즌은 끝나지 않았다. 위기에 강했던 박지성을 끝까지 믿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