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탱크' 박지성(32, 퀸즈 파크 레인저스. 이하 QPR)이 마지막으로 골을 넣은 경기는 지난해 1월 28일 FA컵 4라운드 리버풀전 이었다. 당시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0-1로 뒤졌던 전반 39분에 동점골을 터뜨렸던 것. 맨유는 끝내 1-2로 패했지만 그 장면이 박지성의 맨유 시절 마지막 골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그 이후 1년 동안 국민들에게 골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박지성이 소속된 QPR은 한국 시간으로 30일 오전 4시 45분 로프터스 로드 스타디움에서 진행될 프리미어리그 24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전을 앞두고 있다. 20위 QPR이 2위 맨시티를 이기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지난 3일 첼시전 1-0 승리, 12일 토트넘전 0-0 무승부를 놓고 볼 때 의외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맨시티는 주장 빈센트 콤파니가 부상으로 QPR 원정 출전 여부가 불투명하며 투레 형제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차출된 공백을 메워야 하는 상황이다. 과연 박지성은 맨시티 격파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박지성에게 맨시티전이 중요한 이유
박지성은 맨시티전 출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레드냅 감독은 지난 주말 MK 돈스전에서 패한 뒤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박지성과 파비우, 그라네로, 그린, 퍼디난드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몇몇 선수를 팀에서 내보낼 것이라는 예고를 했다. 그 중에 퍼디난드는 터키 부르사스포르 임대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면 박지성도 팀을 떠날 수 있다. 그것이 현실로 실현되면 맨시티전에 나설 이유가 없다. 맨시티전은 1월 이적시장 마감을 앞두고 벌어지는 경기다.
그러나 레드냅 감독이 박지성을 쉽게 포기할지는 의문이다. QPR이 강등권에서 탈출하려면 되도록 실점을 줄여야 하며 중원을 형성하는 미드필더들이 강력한 압박을 펼쳐 포백을 보호해야 한다. 박지성은 풍부한 활동량과 악착같은 수비력, 큰 경기에 강했던 경험이 강점이며 팀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로 단련됐다. 개인 클래스만을 놓고 보면 음비아, 데리보다 더 좋다. 최근에는 레드냅 감독으로부터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는 말을 들었지만, 오히려 레드냅 감독이 박지성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래야 박지성이 지금보다 더 좋은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맨시티전은 박지성이 레드냅 감독의 신뢰를 받는 선수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경기다. 그 뿐만이 아니다. 맨시티전 경기력에 따라 레드냅 감독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자신이 맨유 시절 강팀에 강했던 '강팀 킬러'임을 맨시티전에서 재현할 경우 레드냅 감독에게 호평을 듣게 될지 모른다. 물론 맨시티전 부진은 상상하기 싫은 시나리오다. 따라서 박지성은 맨시티전에서 모든 것을 걸겠다는 마음으로 로프터스 로드 스타디움의 그라운드를 지배해야 할 것이다.
박지성 본인에게도 맨시티전을 앞둔 마음이 비장할 것이다. 맨유 소속이었던 지난해 5월 1일 맨시티 원정에 선발로 나섰으나 7경기 연속 결장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후반 12분에 교체됐다. 맨유는 0-1로 패하면서 맨시티에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허용하는 빌미를 내주고 말았다. 박지성의 맨유 시절 마지막 경기는 이러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당시 맨시티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면 지금쯤 맨유에 잔류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때의 아쉬움을 지난해 9월 2일 맨시티전에서 풀 기회가 있었으나 QPR은 1-3으로 패했다. 이번 맨시티전은 패배를 원치 않을 것이다.
맨시티전에서 골을 넣어야 위기 극복한다
현실적으로 박지성이 맨시티전에서 골을 넣을지는 의문이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13경기에서 슈팅 7개를 날렸으나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레드냅 감독 부임 이후에는 중앙에서 수비적인 임무를 맡는 경향이 짙었다. 이번 맨시티전에서는 QPR이 수비적인 경기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박지성은 레드냅 감독 전략에 의해 수비에 비중을 둘 것이다. 이번 경기에서 슈팅 한 개라도 날릴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맨시티전은 시즌 후반기 대반전을 위한 '터닝 포인트'를 찍을 절호의 기회다. 2008년 9월 21일 첼시전에서 골을 넣었던 과거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그 골은 2007/08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첼시전 18인 엔트리 제외의 악몽을 이겨냈던 계기가 됐다. 또한 2008/09시즌 팀의 주전으로 발돋움하는 결정타로 작용했다.(당시 첼시전에서 하그리브스가 부상 당했다.) 이번 맨시티전에서 골을 터뜨릴 경우 QPR 승점 획득에 도움이 될 것이며 자신을 향한 레드냅 감독의 마음을 부정에서 긍정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수비에 중심을 두는 미드필더가 골을 넣기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무리하게 공격에 참여할 경우 자칫 팀 밸런스가 흐트러지면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허나 자신에게 골 기회가 찾아올 경우 과감한 면모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90분 동안 슈팅 기회가 없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기를 많은 사람들이 기대할 것이다. QPR로서도 미드필더의 골이 필요하다. 원톱 레미만으로는 맨시티 수비를 뚫기가 쉽지 않다. 박지성 같은 미드필더의 날카로운 문전 침투에 의한 득점 장면이 요구된다.
박지성은 자신을 둘러싼 위기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맨유 시절의 위기론은 팀 내 입지와 관련된 일부 국내 여론의 소모적인 논란에 불과했지만 QPR에서는 '진짜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만약 맨시티전에서 팀의 승점 획득에 기여하는 맹활약을 펼칠지라도 골을 넣지 못할 경우 일부에 의해 '공격력이 아쉽다'는 늬앙스의 평을 들을지 모른다. 지난 토트넘전 이후의 반응이 그랬다. 맨시티전은 공격력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기회다. 박지성이 1년 만에 골 넣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