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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해트트릭' 월컷에게 앙리의 향기가 난다

 

아스널이 뉴캐슬전에서 시오 월컷(23)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대승을 거두었다. 30일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20라운드 뉴캐슬전에서 7-3으로 이긴 것. 전반전을 1-1로 마친 뒤 후반전에 6골을 퍼부었다. 월컷은 전반 20분, 후반 28분, 후반 46분에 골을 터뜨리며 10월 30일 캐피털 원 컵 16강 레딩전 이후 2개월 만에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올리비에 지루는 2골, 루카스 포돌스키와 알렉스 옥슬레이드-챔벌레인은 1골씩 추가했다. 아스널은 리그 5위를 기록하며 4위권 진입의 발판을 마련했다.

'원톱' 월컷, 예전의 월컷이 아니다

월컷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만년 유망주'였다. 17세였던 2006년 1월 사우스햄프턴에서 아스널로 둥지를 틀면서 이적료 1200만 파운드(약 206억 원, 500만 파운드 선 지급)를 기록했다. 10대 선수 치고는 엄청난 이적료를 올린 것. 그 해에는 독일 월드컵 최종 명단에 포함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의 발탁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나 잠재력만큼은 남달랐다. 그러나 잦은 부상으로 기복이 심해지면서 축구팬들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루니의 유망주 시절처럼 잉글랜드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주역이 되기에는 꾸준함이 부족했다.

그랬던 월컷이 달라졌다. 지난 시즌 출전했던 프리미어리그 35경기 중에 32경기에서 선발로 모습을 내밀었다. 그 이전까지는 프리미어리그에서 30경기 이상, 선발로서 20경기 이상 뛰지 못했으나 부상 악령을 이겨내며 아스널의 붙박이 주전으로 떠올랐다. 올 시즌에는 각종 대회를 포함한 20경기에서 14골 10도움 기록하며(프리미어리그에서는 15경기 8골 7도움) 아스널의 새로운 에이스로 거듭났다. 최근에는 오름세가 두드러졌다. 8경기 중에 7경기에서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것(총 6골 6도움). 지금 추세라면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15골 고지를 넘을 것으로 기대된다.

월컷의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17일 레딩전을 시작으로 3경기 연속 아스널의 원톱으로 뛰고 있다. 지루가 판 페르시 이적 공백을 메우지 못한 것이 오히려 월컷에게 행운으로 작용했다. 월컷은 그동안 오른쪽 윙어로 나섰지만 실제로는 중앙 공격수로 뛰기를 원했다. 자신의 희망이 최근에 이루어지면서 레딩전에서 1골 넣었고, 22일 위건전에서는 페널티킥을 유도하며 1도움 기록했다.(아르테타가 페널티킥 골 성공) 이번 뉴캐슬전에서는 3골 2도움 올리며 아스널의 7골 중 5골을 관여했다.

공교롭게도 월컷이 원톱으로 전환했던 최근 3경기에서는 아스널이 모두 이겼다. 3경기에서 상대했던 레딩-위건-뉴캐슬 전력이 약한 편이지만, 아스널이 때때로 약팀 경기에서 덜미를 잡히면서 승점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던 사례가 빈번했음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팀의 약점이었던 원톱의 불안함을 월컷 맹활약에 의해 충분히 해소하면서 빅4 수성의 자신감을 얻었다.

사실, 월컷은 체격 조건(176cm, 68kg)만을 놓고 보면 원톱에 어울리지 않다. 최전방에서 공중볼을 따내기에는 신장이 작은 편이다. 몸싸움도 특출난 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원톱으로서 항상 좋은 경기력을 발휘할지 확신하기 어려운 시각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대 축구에서는 전형적인 타겟맨의 영향력이 떨어지고 있다. 메시(FC 바르셀로나) 아궤로, 테베스(이상 맨체스터 시티)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180cm 이하의 선수들도 원톱으로서 성공했다. 더욱이 아스널은 공중볼보다는 낮은 패스에 의한 연계 플레이에 초점을 맞추는 팀이다. 현재까지는 월컷의 원톱 전환을 벵거 감독의 악수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월컷의 기세는 '아스널 레전드' 앙리(뉴욕 레드불스)를 떠올리게 한다. 앙리가 아스널 시절 윙어에서 중앙 공격수로 변신하면서 폭발적인 득점력을 과시하며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로 발돋움 했던 사례는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의 빠른 발과 번뜩이는 재치는 월컷의 장점이기도 하다. 특히 월컷이 아스널로 둥지를 틀었던 2006년 1월은 앙리가 프리미어리그를 평정했던 시점이었다. 앙리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3연패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성장했다. 월컷에게서 앙리의 향기가 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월컷의 원톱 변신 성공이 아스널에게 반가운 또 하나의 이유는 그를 잔류시킬 명분을 얻었다. 만약 월컷이 1월 이적시장을 통해 북런던을 떠날 경우 전력 약화가 불가피 하다. 월컷을 만족시킬 주급을 제시하며 재계약을 성사할지 의문이나, 그가 바랬던 중앙 공격수 전환의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재계약 전망이 결코 나쁘지 않다. 셀링 클럽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해소하려면 월컷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월컷의 최근 기세라면 과거의 앙리처럼 아스널의 영광을 주도할 자격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