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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국, '축구 종가' 영국에 굴욕 선사했다

 

기적이다. 유럽 강팀과의 원정 경기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했다. 연장전을 포함한 120분 경기 내용에서도 한국이 우세였다. '축구 종가'이자 이번 대회 우승 후보, 올림픽 개최국 영국에 굴욕을 선사했다. 한국 축구가 새로운 역사를 쓰는 순간이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올림픽 대표팀이 사상 첫 올림픽 4강 진출을 이루었다. 5일 새벽 3시 30분(이하 한국시각) 영국 웨일즈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2012 런던 올림픽' 8강 영국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5-4로 승리했다. 한국은 전반 29분 지동원 선제골로 앞섰으나 전반 36분 애런 램지에게 패널티킥 동점골을 내줬다. 2분 뒤에 또 페널티킥을 허용했지만 정성룡 선방으로 위기를 넘겼다. 그 이후 득점없이 연장전까지 소화하면서 승부차기에 돌입하면서 마침내 이겼다.

한국은 8일 오전 3시 45분 올드 트래포드에서 브라질과 결승행을 다툰다.

[전반전] 지동원 선제골, 그러나 램지에게 PK 동점골 허용

한국은 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주력 선수를 잃었다. 김창수가 전반 4분 조 앨런과의 경합 도중 그라운드에 넘어지면서 오른팔을 다치는 바람에 오재석과 교체됐다. 벌써부터 교체 카드 한 장을 쓰면서 홍명보호의 후반전 경기 운영을 어렵게 했다. 전반 10분까지 점유율에서는 33-67(%)로 밀렸지만 오히려 영국의 공격 작업이 잘 풀리지 않았다. 미드필더끼리의 손발이 맞지 않아 패스가 끊기거나 한국 선수들의 압박에 볼을 빼앗기는 경우가 있었다. 한국은 평소와 달리 수비에 무게감을 두어 영국 공세에 대응했다.

한국이 전반 18분까지 슈팅 3개를 날리는 동안 영국은 슈팅이 없었다. 우리 선수들은 영국 선수가 볼을 잡을 때 마다 찰거머리처럼 따라 붙으면서 상대팀 선수가 소유한 볼을 차단하려했다. 전방에 올라온 선수들은 포어체킹을 시도하면서 영국의 공격 시작을 어렵게 했다. 그 결과 스터리지를 봉쇄하면서 영국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전반 10~20분 점유율에서 54-46(%)로 앞서면서 선수들이 의도한 대로 경기가 전개됐다. 전반 14분에는 지동원이 왼발로 감아차는 슈팅을 시도했고 4분 뒤에는 박주영이 프리킥 상황에서 헤딩 슈팅을 날리며 영국 골문을 위협했다.

영국을 압도했던 한국은 전반 29분 귀중한 선제골을 얻었다. 지동원이 박스 왼쪽 바깥에서 왼발 중거리 슈팅을 날렸던 볼이 영국의 골망을 흔들었다. 한국의 끈질긴 압박에 무기력했던 영국 선수들의 혼을 빼는 시원한 골 장면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전반 33분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버틀랜드가 박스 안에서 슈팅을 날린 볼이 오재석 팔을 맞은 것. 고의성이 다분하지 않았으나 주심 재량에 의해 오재석 핸드볼 파울로 판정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다만, 주심이 오재석에게 경고 카드를 내밀은 것은 과했다. 한국은 전반 36분 램지에게 페널티킥 골을 허용하면서 스코어는 1-1이 됐다.

한국은 전반 38분에 또 페널티킥을 내줬다. 황석호가 스터리지를 막을 때 왼발로 걸었다는 것이 주심의 판단이었다. 다행히 정성룡이 해냈다. 램지의 오른쪽 페널티킥 슈팅을 막아내면서 실점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나 한국이 주도권을 잡은 상황에서 영국에게 두 번의 페널티킥을 내준 것이 아쉬웠다. 1-0 이후 상대팀의 추격 기세를 꺾기 위해 줄기차게 공격을 시도했으면 더 좋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전반전 경기 운영에서는 영국을 압도했다. 점유율에서 54-46(%)로 앞섰으며 수비시에는 강력한 압박을 펼치면서 영국 선수들을 힘들게 했다. 윤석영이 벨라미를 꽁꽁 막은 것도 팀의 수비 안정에 힘을 실어줬다.

[후반전] 박주영 부진, 그리고 선수들의 체력 저하...연장전 돌입

한국은 전반전에 이어 후반전에도 압박에 신경썼다. 영국이 점유율을 늘리지 못하도록 상대팀 선수보다 한 발 더 움직이며 협력 수비를 강화했다. 상대팀 공격은 잘 풀리지 않았다. 후반 8분 영국 프리킥 상황에서는 골키퍼 정성룡이 리차즈와 부딪혀 넘어지면서 목 부상이 걱정됐다. 후반 14분에는 리차즈가 도슨과 교체되었고 2분 뒤에는 정성룡을 대신해서 이범영이 투입됐다. 두 팀 모두 수비수가 부상으로 교체되는 공통점이 있었으나 한국은 주전 골키퍼까지 부상으로 잃었다. 한국에게 남은 교체 카드는 한 장 이었다.

박주영은 영국전에서도 컨디션이 안좋았다. 볼 터치가 불안했고 연계 플레이마저 잘 풀리지 않았다. 영국 수비와 경합할 때는 파워에서 밀리는 장면도 있었다. 상대 수비 배후 공간을 파고드는 침투가 필요했으나 최전방에서 고립되면서 팀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했다. 소속팀 아스널에서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던 여파를 이겨내지 못한 것. 지동원-구자철-남태희 같은 2선 미드필더들의 득점력이 요구되었지만 전반전부터 수비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했다. 한국 공격이 소강 상태에 빠지면서 박주영이 볼을 잡을 기회가 마땅치 못했다.

한국은 후반 20~30분 점유율에서 38-62(%)로 밀렸다. 우려했던 체력 저하에 시달렸다. 3일에 한 번씩 경기를 치르는 고된 일정, 영국전 전반전부터 공격과 수비에 걸쳐 많이 움직이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후반 중반에 접어들면서 한국 선수들의 페이스가 느려졌다. 후반 38분에는 지동원이 골문 왼쪽 가까이에서 헤딩 슈팅을 날렸으나 볼은 그라운드에 바운드 되면서 영국 골대 안쪽으로 향하지 못했다. 골 운이 따랐더라면 두번째 골을 넣었을지 모를 일이다. 영국은 후반 39분 벨라미를 빼고 긱스를 교체 투입 시켰으며 두 팀 모두 득점없이 후반전을 마치면서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전&승부차기] 한국, 승부차기 끝에 5:4 승리...4강 진출

한국은 연장 전반에 접어들자 수비수와 미드필더의 폭을 좁혔다. 수비시 박스 안쪽으로 내려간 선수들을 늘리면서 영국 공격을 몇차례 저지했다. 영국이 기대했던 긱스 효과도 한국의 필사적인 수비 앞에서 소용 없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갈수록 체력이 소모되자 공격시 연계 플레이가 끊기거나 패스 템포가 느려졌다. 지동원은 연장 전반 1분과 12분에 슈팅을 날렸지만 골망을 흔들지 못했다. 그럼에도 영국전에서는 한국의 공격 옵션 중에서 골 생산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두 팀은 연장전 도중에 왼쪽 윙어를 바꿨다. 연장 전반 13분에는 지동원이 빠지고 백성동이 마지막 조커로 나섰다. 영국도 연장 후반이 되자 로즈가 싱클레어를 대신해서 교체 투입했다. 한국은 연장 후반에는 수비에 중점을 두었다. 연장전 실점은 사실상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에(실점 이후 2골을 넣기에는 벅차므로) 어쩔 수 없이 수비 비중을 높였다. 그러나 체력이 바닥나면서 원활한 공격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국은 120분 혈투를 펼친 끝에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승부차기에서는 영국이 선축을 했다. 영국의 첫번째 키커 램지의 슈팅은 골망 왼쪽, 구자철 슈팅은 골망 오른쪽을 흔들었다. 클레버리-백성동-도슨-황석호 골 성공에 이어 영국의 네번째 키커 긱스도 골을 터뜨렸다. 박종우 슈팅도 상대 골망을 출렁이면서 승부차기 스코어는 4:4가 됐다. 한국 골키퍼 이범영은 영국의 다섯번째 키커 스터리지의 왼발 슈팅을 막아내면서 승부의 키는 기성용이 쥐게 됐다. 기성용 오른발 슈팅은 한국의 다섯번째 골로 이어지면서 마침내 한국이 올림픽 4강에 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