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축구는 1983년 멕시코 U-20 월드컵과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이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4강 진출을 이루었다. 대표팀 축구의 국민적인 인기에 비해서 그동안 올림픽에서는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했으나 이제는 올림픽 4강 반열에 올랐다.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올림픽 메달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09년 이집트 U-20 월드컵 8강,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2011년 콜롬비아 U-20 월드컵 16강 진출까지 포함하면 한국 축구는 더 이상 축구 변방국이 아니다. 이제는 아시아 강호를 넘어 세계 대회에서 성과를 내는 팀으로 도약했다.
특히 8강 영국전 승리는 한국 축구 역사에 남을 명장면이었다. 연장전 끝에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했다. 골키퍼 이범영이 영국의 다섯번째 키커 다니엘 스터리지의 슈팅을 선방했고, 한국의 다섯번째 키커 기성용이 팀의 4강을 이끄는 골을 터뜨렸다.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 스페인전 승부차기 승리와 흡사했다. 골키퍼 이운재가 스페인 4번째 키커 호아킨 슈팅을 막아낸 뒤 한국의 홍명보가 골을 넣었던 짜릿함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의 홍명보가 10년 뒤 런던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써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경기 내용에서도 영국을 압도했다. 미드필더들이 강도 높은 압박을 펼치면서 영국 선수들이 힘겨운 모습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지공으로 점유율을 늘리거나 여러차례 결정적인 골 기회를 노리면서 영국 골문을 위협했다. 한국의 페이스였던 전반 29분 지동원 선제골은 영국 골키퍼가 막는데 실패했다. 수비 조직력도 뛰어났다. 빠른 발과 날카로운 침투를 자랑하는 스터리지-싱클레어-벨라미 봉쇄에 성공한 것. 경기 초반 김창수가 오른팔 부상으로 교체되는 불운, 두 번의 페널티킥을 허용 당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수비력이 안정됐다. 연장전에는 '맨유 레전드' 라이언 긱스의 존재감까지 지웠다. 전반 39분 애런 램지의 페널티킥을 막아냈던 정성룡 불꽃 선방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의 올림픽 4강 진출이 자랑스러운 이유는 그 성과의 제물이 다름 아닌 영국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런던 올림픽 강력한 우승 후보이자 개최국이다. 이번 대회 우승을 위해 잉글랜드와 웨일즈가 단일팀을 꾸렸다. 잉글랜드 대표팀이 1966년 자국에서 진행된 월드컵에서 우승했듯, 영국 단일팀도 2012년 런던 올림픽 우승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지구촌 축구팬들도 올림픽 개막 이전부터 영국의 우승 여부를 주목했을 것이다. 그들을 향한 기대치를 한국이 실력으로 제압한 것은 '한국 축구가 강해졌다'는 인식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어떤 관점에서는 한국의 영국전 승리는 이변이 아닐 수도 있다. 영국 축구가 다른 유럽 축구 강국에 비해서 과대 평가 되었기 때문. 그러나 아시아 국가가 유럽 강팀과의 원정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은 매우 드문일이다. 유럽 현지 축구팬에게 생소하게 느껴질 법한 일이다. 아무리 영국 전력에 거품이 있더라도 경기 장소는 다름 아닌 영국이다. 과거의 한국 축구 같았으면 유럽 선수들에게 주눅이 들면서 90분 동안 위축된 모습을 보였겠지만(대표적으로 2001년 A매치 체코 원정 0-5 대패),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국 축구는 더 이상 유럽 강팀 원정 경기가 두렵지 않다.
물론 한국 경기력이 최상의 상태는 아니었다. 런던 올림픽 4경기 3골을 봐도 득점력이 부족하다. 박주영을 비롯한 일부 공격 옵션의 폼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4경기에서 2실점만 허용하는 짠물 수비를 과시했다. 어느 팀이든 중요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강력한 수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올림픽 이전까지는 중앙 수비가 불안하다는 여론의 지적이 제기됐다. 홍명보 감독 현역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수비수가 등장하지 않은 것을 이유로 그런 말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홍명보 감독이 국가 대표팀 선수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여러 명의 수비수 유망주들이 '제2의 홍명보'로 조명 받았으나 부상과 실력 부족 등의 이유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홍명보호 수비력이 강했던 이유는 팀이 하나로 단합되었기 때문이다. 상대팀이 후방에서 공격을 시작하면 한국의 공격 옵션들이 포어체킹을 펼쳤고, 미드필더들은 상대팀 패스 길목을 끊기 위해 협력 수비를 강화하며 분주하게 움직였고, 수비수들은 상대팀 주요 공격수를 따라다니며 침투를 허용하지 않으려 했다. 모든 선수들이 수비 움직임을 늘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몸을 던지며 상대 공격을 차단하는데 앞장섰다. 개인보다는 팀이 중심이 되면서 영국보다 더 강한 조직력을 과시한 것. 팀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현대 축구의 흐름과 일치한다. 스페인 특유의 패스 축구도 선수들의 짜임새 넘치는 수비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의 런던 올림픽 최종 성적이다. 최악의 경우 4위에 그칠 확률이 있지만(그럴 일이 없기를) 영국을 이긴 기세라면 메달 획득은 긍정적이다. 태극 전사들은 일본이 올림픽 4강에 진출한 것을 보며 더욱 분발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일본의 4강 진출을 반가워하지 않겠지만 한 가지 긍정적인 점이 있다. 한국 선수들에게 '일본에 뒤지지 말아야 한다'는 승부 근성이 발동할 수 있다. 아무리 올림픽 4강 업적을 달성했지만 최종 순위에서 일본에게 밀리는 것은 찜찜하다. 한국 선수들이 4강에 진출했다고 방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참고로 4강 상대팀 브라질은 올림픽 금메달 경력이 없다.
런던 올림픽에서는 한국 축구를 비롯해서 많은 종목의 태극 전사와 태극 낭자들이 기대 이상의 선전을 했다. 오진혁이 올림픽에서 한국 남자 양궁 사상 첫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했고, 펜싱에서는 6개의 메달(금2, 은1, 동3)을 획득하면서 올림픽의 새로운 효자 종목으로 떠올랐다. 우리 나이로 34세 노장 송대남은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유도 금메달을 따냈고, 20세 사격 신예 김장미는 여자 25m 권총에서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세계를 제패했다. 펜싱의 신아람은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개인전 1초의 불운을 달랬다. 앞으로도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을 따내겠지만, 한국 축구 올림픽 대표팀도 이들과 같은 대열에 포함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