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올림픽 대표팀의 8강 진출이 의미있는 이유는 4년 전 베이징 세대보다 더 나은 전력임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탈리아전 졸전과 본선 탈락으로 많은 국민들을 실망 시켰다. 그러나 런던 세대의 8강 진출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한국 대표팀의 목표는 메달 획득이며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일종의 문을 통과했을 뿐이다. 홍명보호의 올림픽 본선 3경기를 돌아보며 개인적으로 느끼는 5가지 짧은 생각을 풀이했다.
1. 이제는 세계 대회 토너먼트 진출은 기본이다
한국 축구는 불과 몇년전까지 아시아 무대에 강했으나 세계 대회에 약한 면모를 보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8강 진출을 제외하면 세계 대회에서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달라졌다. 2009년 U-20 월드컵 8강 진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 2011년 U-20 월드컵 16강 진출, 2012년 런던 올림픽 8강 진출(현재까지는)의 성과를 이루었다. 이제는 세계 대회 토너먼트 진출은 기본이 되었다. 한국 축구가 예전보다 강해졌다는 증거.
근본적인 이유는 유럽 축구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태극 전사와 유럽 빅 클럽 위주로 경기를 보면서 유럽 축구의 최근 흐름을 읽게 됐다. FC 바르셀로나식 패스 축구를 하겠다는 K리그 감독도 있을 정도. 올 시즌 K리그에서 제로톱이 유행한 것도 유럽 축구 영향력과 밀접하다. 또 하나는 유럽 리그에 정착한 선수들이 늘어났다. 직접 현지에서 볼을 다투면서 유럽 선수들을 이기는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대표팀 전력을 지탱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전에는 우리 나라 선수들이 유럽 선수들에게 잔뜩 주눅들었지만 이제는 한국 축구가 세계 축구와 가까워졌다.
그렇다고 지금의 성과에 도취되어서는 안된다. 이웃 나라 일본도 국제 무대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면서 유럽파들이 증가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2. 구자철-박주영을 통해 본 '실전 감각의 무서움'
축구 선수는 뛰어야 한다. 아무리 잘하는 선수라도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 실전 감각 저하로 고생한다. 구자철과 박주영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두 선수는 불과 몇개월 전까지 유럽 소속팀에서 지속적인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면서 실전 감각 부족을 절감했다. 그나마 구자철은 지난해 11~12월에 볼프스부르크에서 선발 출전 횟수가 늘었지만 K리그 시절에 비해 위축된 플레이를 펼쳤다.
하지만 같은 처지였던 두 선수의 현재 행보는 대조적이다. 구자철은 지난 1월 이적시장 마감 당일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되면서 붙박이 주전으로 도약했지만 박주영은 여전히 아스널 1군 전력에서 철저하게 배제됐다. 그 여파는 런던 올림픽 본선에서도 이어졌다. 구자철은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비면서 패싱력, 공격 조율, 퍼스트 터치, 압박에 강한 모습을 보였다.(슈팅 빼고) 반면 박주영은 스위스전 골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폼이 안좋았다. 특히 박주영은 멕시코전, 가봉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했다. 어느 팀이든 주력 선수는 팀이 승부수를 띄우는 시점에 교체되지 않는다. 이래서 실전 감각이 중요하다.
3. 와일드카드 저주? 김창수는 잘했다! ... 정성룡은 영국전이 중요
한국 축구는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와일드카드 효과를 보지 못했다. '와일드카드 저주', '와일드카드 잔혹사'라는 수식어가 존재할 정도. 런던 올림픽에서도 와일드카드를 뽑느냐, 마느냐를 놓고 여론에서 말이 많았다. 특히 박주영이 병역 논란에 시달리면서 홍명보호의 와일드카드 효과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선 3경기까지는 박주영 활약이 부족한 것이 사실.
다만 김창수 만큼은 잘 뽑았다. 김창수는 공수 양면에서 고른 활약을 펼쳤다. 경기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오버래핑하면서 팀의 공격 전개를 도와줬으며 수비시에는 끈질긴 대인마크로 상대 팀 왼쪽 윙어를 막아냈다. 무엇보다 기복을 타지 않았다. 본선 3경기에서 흔들림 없는 활약을 펼치며 후배 선수들을 도와줬다. 어쩌면 기성용과 더불어 홍명보호 일원 중에서 가장 맹활약 펼친 선수가 아닐까 싶다. 또 한 명의 와일드카드인 골키퍼 정성룡은 본선 3경기 1실점 기록했지만 8강 영국전에서는 더 많은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토너먼트에 접어든 지금부터는 되도록 무실점 경기를 펼쳐야 한다.
4. 박종우 등장이 반가운 이유
박종우를 보면 토트넘의 스콧 파커가 떠오른다. 토트넘의 플레이메이커 루카 모드리치의 공격 전개가 힘을 얻는 이유는 파커의 헌신적인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원에 든든한 살림꾼이 있으면 또 다른 파트너가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게 된다. 기성용이 런던 올림픽에서 볼을 잘 다루었던 이유중에 하나는 박종우의 존재감이 있었다. 여러차례 상대 팀 중앙 공격을 끊으면서 한국의 공격 전환을 도왔다. 점유율 축구를 지향하는 홍명보호에 없어선 안 될 선수로 떠올랐다. 또한 박종우는 김창수와 더불어 '질식수비'로 유명한 부산의 선수다. 안익수 감독은 홍명보호 8강 진출의 또 다른 공로자다.
5. 김보경, 각성해야 한다
김보경의 축구 센스는 뛰어나다. 하지만 박지성처럼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면 상대팀 선수의 압박을 이겨내는 힘을 길러야 한다. 런던 올림픽 본선 3경기만을 놓고 보면 그라운드 주변을 돌아보는 시야가 좁았다. 동료 선수와의 연계 플레이를 통해서 압박을 풀어야 하는데 돌파에 치중하는 느낌이 없지 않다. 8강 잉글랜드전에서는 패스를 주고 받는 움직임을 늘리면서 패스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 홍명보호가 멕시코전, 가봉전에서 공격력 저하로 골이 없었다는 점에서 김보경 각성은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