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

박지성-카가와, 맨유에서 같이 뛰었다면?

 

불과 며칠전까지는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 남기를 바랬습니다. 빅 매치와 유럽 대항전에 강했던 면모를 놓고 보면 아직 맨유에서의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에서의 성공을 기대하는 마음이지만 맨유를 떠난 것은 여전히 아쉬움이 짙습니다. 또 하나의 허전함이라면 카가와 신지와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함께 뛰지 못하게 됐습니다.

박지성과 카가와가 맨유에서 같이 뛰었다면 그 존재만으로 상징성이 큽니다. 한국 축구와 일본 축구를 대표하는 에이스들이 한 팀에서 만나게 되니까요. 두 나라 축구는 대표팀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서로 물러설 수 없는 대립을 거듭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양국에서 유럽파들을 배출하면서 '한국과 일본 유럽파 중에 누가 더 나은가?'라는 경쟁 심리가 작용했습니다. 앞으로도 두 나라의 라이벌 의식은 계속되겠지만, 한국과 일본중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선수끼리 유럽에서 한 팀이 되는 것은 매우 드문일 이었습니다.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지만요.

유럽 빅 클럽에서 아시아 선수가 자리잡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박주영의 경우 AS모나코에서 3시즌 동안 주전 공격수로서 잘했습니다. 그러나 아스널에서는 딱히 부상이 없었음에도 프리미어리그 출전이 1경기(맨유전)에 그쳤으며 그것도 후반 막판 교체 투입 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박지성이 맨유, 나가토모 유토가 인터 밀란에서 두각을 떨치면서 아시아 선수가 빅 클럽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지만 여전히 유럽 빅 클럽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유럽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던 아시아 선수가 여럿 있듯, 유럽 빅 클럽은 웬만한 유럽 중소 클럽보다 험준한 산과 같은 존재입니다.

현실적으로 유럽이 아시아보다 축구 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은 박지성 같은 성공 사례가 있지만 냉정히 말하면 유럽과 아시아 수준 격차가 좁아졌을 뿐이죠. 적어도 클럽 축구에서는 앞으로 수십년 동안 아시아가 유럽을 이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유럽 클럽 축구는 그동안 이적시장에서 선수 영입에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투자하여 세계에서 축구를 잘하는 인재들을 스카우트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축구를 잘하는 선수가 유럽에 진출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수순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전까지는 젊은 선수의 유럽 진출이 산발적으로 있었을 뿐이죠.

그런 점에서 박지성과 카가와는 맨유에서 함께 뛰면서 아시아 축구의 진일보를 과시할 수 있었습니다. 빅 클럽에 소속된 2명의 아시아 선수가 서로 힘을 모아 실전에서 멋진 장면을 연출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지금까지 유럽 축구에서 그런 풍경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비슷한 자취는 하나 있었죠. 박지성과 이영표가 2004/05시즌 PSV 에인트호벤 소속으로서 팀의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돌풍을 이끈 저력이 있습니다. 허나 에인트호벤은 맨유와 달리 빅 리그에 소속된 클럽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축구팬들은 빅 클럽 경기를 꾸준히 챙겨보니까요. 박지성과 카가와가 서로 패스를 주고 받거나 약속된 움직임을 펼치는 장면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봤겠죠.

어쩌면 박지성이 동료로써 카가와 맨유 성공을 도와줬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지성은 교토 퍼플상가 시절에 습득했던 일본어를 통해서 카가와와의 적극적인 의사 소통이 가능합니다. 카가와가 맨유에서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겠죠. 한국 축구팬 입장에서는 마냥 좋게 비춰지지 않을 장면일지 모르겠지만 박지성이라면 충분히 도와줬을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과 일본 선수 이전에는 맨유 선수로 뭉쳐진 관계니까요.

박지성이 지금도 맨유 선수였다면 '카가와보다 더 잘할까?'라고 비교하는 축구팬들도 있었을 겁니다. 일본 축구팬도 같은 마음이겠죠. 카가와가 거의 10년 동안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던 박지성보다 더 잘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들의 속마음이었을지 모릅니다. 어떤 형태로든 '박지성vs카가와' 비교 심리가 작용했을 겁니다. 맨유에서 7시즌 동안 전성기를 보냈던 베테랑 박지성, 맨유라는 새로운 소속팀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싶어하는 카가와 실력을 비교하거나 같은 팀원끼리 공격 포인트 우열을 가리는 것은 어설픕니다. 이제는 박지성이 맨유를 떠나면서 비생산적인 비교를 보지 않아도 되겠지만요. 어짜피 포지션도 다른데 말입니다.

두 선수는 앞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서 동료가 아닌 적으로 만나게 됐습니다. 맨유에서의 공존보다는 대립이 우리들에게 자연스러운 존재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과 일본 축구는 항상 싸웠던 관계였으니까요. 지금은 과거에 비해서 두 나라 국민 감정이 풀어졌지만 여전히 대립 감정은 남아 있습니다. QPR이 맨유를 넘기 어려운 것은 분명하지만, 박지성이 전 소속팀 맨유의 골망을 흔드는 장면을 많은 한국인 축구팬들이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일본 축구팬들도 그 장면을 보고 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