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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일본전 0-3 완패, 매우 충격적이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A매치 일본 원정에서 충격패를 당했습니다. 평가전임을 감안해도 '영원한 맞수' 일본에게 3실점 패배를 당했던 것 자체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경기 결과 및 내용에서도 패했던 졸전 이었습니다.

한국은 10일 저녁 7시 30분 일본 삿포로돔에서 진행된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0-3으로 패했습니다. 전반 33분 카가와 신지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면서 불안한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후반 7분과 9분에는 혼다 케이스케와 카가와에게 골을 내주고 말았죠. 경기 전 한국 수비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카가와는 2골을 넣었습니다. 한국은 경기 내내 상대팀에게 끌려다니는 허술함을 극복하지 못했고 김영권-박주호 부상까지 직면하는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사진=한국에게 0-3 패배의 충격을 안겨줬던 카가와 신지-혼다 케이스케 (C) 일본 축구협회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jfa.or.jp)]

일본의 초반 공세가 강했던 경기 초반

한국은 일본전에서 4-1-4-1로 나섰습니다. 정성룡이 골키퍼, 김영권-이정수-이재성-차두리가 수비수, 기성용이 수비형 미드필더, 이근호-이용래-김정우-구자철이 2선 미드필더, 박주영이 공격수로 출전했습니다. 홈팀 일본은 4-2-3-1을 활용했습니다. 가와시마가 골키퍼, 고마노-곤노-요시다-우치다가 수비수, 엔도-하세베가 더블 볼란치, 카가와-혼다-오카자키가 2선 미드필더, 이충성이 공격수를 맡았습니다. 당초 3-4-3을 구사할 예정이었으나 지난 6월 A매치 2경기에서 0-0 무승부에 빠지면서 4-2-3-1로 회귀했습니다.

특히 경기 시작 1분 만에 왼쪽 수비에서 빈 공간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일본이 오른쪽 측면에서 원투패스를 시도할때 김영권이 인사이드로 이동하면서 동료 선수와 위치가 겹친끝에 오카자키의 돌파를 허용했죠. 그래서 일본은 측면에서 빈 공간이 생기자 지체없이 슈팅 기회를 창출했습니다. 일본 축구가 짧고 조밀한 패스워크와 드리블 돌파를 섞으며 상대 수비를 공략하는 성향임을 감안하면 풀백의 수비 뒷 공간 불안이 아쉽습니다. 1분 뒤 혼다가 박스 오른쪽 바깥에서 오카자키에게 스루패스를 날릴 때 아무도 마크하지 않았던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일본이 전반 5분 점유율에서 65-35(%)로 앞서는 공격적인 경기를 펼치면서 한국이 밀리는 분위기 였습니다.

카가와에게 선제골 허용, 공격과 수비 모두 아쉬웠던 전반전

한국은 전반 5분 이후부터 차두리 오버래핑으로 공격 분위기를 잡았습니다. 차두리는 전반 6분 오른쪽 측면에서 이근호에게 정확한 크로스를 띄웠고, 1분 뒤 구자철과 2:1 패스를 시도하며 하프라인을 통과한 뒤 박스 오른쪽에서 직접 오른발 중거리 슈팅을 시도하는 분위가 전환에 나섰습니다.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이 일본 선수들과 경합을 펼칠 때 오른쪽 풀백을 맡는 차두리가 공격에 힘을 실어주면서 한국이 차츰 점유율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카가와가 공격에 초점을 맞추면서 수비에 소홀하더니 차두리의 오버래핑을 끊지 못했죠. 활동 범위가 넓은 나가토모 결장 또한 차두리 공격력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박주영의 태클도 반가웠습니다. 전반 13분 일본이 후방에서 볼을 돌릴 때 한국의 공격 옵션들이 상대 진영으로 넘어와 포어 체킹을 시도한 뒤, 요시다가 하프라인을 통과하며 전진패스를 시도할 때 박주영이 태클로 볼을 빼앗아 한국의 공격 주도권을 얻었습니다. 조광래 감독이 그동안 선수들에게 포어 체킹을 강조하며 상대팀의 공격 템포를 늦추는 것을 주문했던 성과가 나타났습니다. 박주영은 원톱을 맡으면서도 수비까지 척척 해냈죠. 전반 18분에는 백힐패스로 이근호에게 측면 침투 기회를 벌려주는 날카로운 패싱력과 너른 시야를 보여줬죠. 2분 뒤에는 박스 오른쪽 안에서 오른발 슈팅을 날리며 일본 수비수들을 괴롭혔습니다.

한국은 전반 24분 김영권을 빼고 박원재를 교체 투입했습니다. 김영권이 불의의 부상을 당하면서 박원재를 실전에 투입 시켰습니다. 특히 일본이 혼다를 활용한 오른쪽 측면 공격을 늘리면서 이근호의 수비 부담이 컸던 전술적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박원재 같은 전문 풀백이 필요했죠. 그럼에도 이근호는 수비에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박원재가 엔도의 강력한 슈팅에 얼굴을 맞고 잠시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면서 무게 중심을 아래로 내릴 수 밖에 없었고, 일본이 혼다와 오카자키의 위치를 바꾸면서 우치다가 오른쪽 측면에 깊게 자리를 잡으면서 이근호가 수비력을 요구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왼쪽 공격이 주춤해지면서 이근호와 호흡이 잘 맞는 박주영의 활동이 뜸해지는 단점이 나타났습니다.(전반 35분 Out 박원재-In 박주호)

그런 한국은 전반 33분 카가와에게 실점했습니다. 이근호가 왼쪽 측면에서 엔도에게 볼을 빼앗겼고, 일본이 짧은 패스워크로 박스 안까지 볼을 공급하며 카가와가 오른발 선제골을 넣었죠. 이근호가 볼을 빼앗긴 상황보다는 그 이후의 수비수들 대처가 아쉬웠습니다. 엔도가 혼다에게 대각선 패스를 밀어줄때 박스 안쪽에서 일본 선수를 압박하는 협력 수비체제가 형성되지 못했죠. 이정수가 혼다를 마크하다가 카가와쪽으로 시선을 옮기는 상황이 나타났습니다. 일본이 경기 내내 빠른 타이밍의 짧은 패스를 줄기차게 연결하면서 공격의 템포를 높였다면 한국 수비수들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안됐습니다. 카가와가 경기 전에 지적했던 한국의 수비 불안이 나타났습니다.

조광래 감독은 일본전을 앞두고 "미드필더 싸움에서 이기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반전에는 엔도-하세베 공략에 실패했습니다. 이근호가 측면에서 볼 키핑이 불안한데다 전반 중반부터 수비 부담이 많아지면서 공격이 주춤해졌고, 오른쪽에서는 구자철이 윙어로서 능숙한 경기 운영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용래-기성용-김정우가 중앙에서 오밀조밀한 패스를 연결하면서 경기 흐름을 바꿔줘야 하는데 엔도-하세베 뒷 공간을 노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용래-기성용, 기성용-김정우 사이의 공간이 일본의 빠른 패스워크에 뚫리면서 한국 미드필더들의 수비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이 나타났죠. 그럼에도 미드필더들의 협력 수비 속도가 일본의 패스 속도에 늦었고, 전반 막판에 김정우를 수비형 미드필더를 내린 것도 이 때문입니다.

후반 초반 2실점 허용, 무기력한 경기 내용 아쉽다

한국은 후반 6분 이근호-이용래를 빼고 김보경-김신욱을 교체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그러나 교체 투입을 하자마자 혼다에게 추가골을 내줬습니다. 박주영이 오른쪽 측면에서 고마노에게 돌파를 허용한 것이 일본의 크로스로 이어졌고 한국 선수가 우물쭈물하게 수비에 대처하다가 혼다에게 골을 내줬습니다. 후반 9분에는 카가와에게 또 실점 했습니다. 기요타케가 오른쪽 공간에서 박스쪽으로 횡패스를 연결한 것을 카가와가 문전 침투에 이은 오른발 슈팅으로 한국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순식간에 0-3으로 밀렸고 후반 12분 박주영을 질책성 교체하면서 윤빛가람을 조커로 활용했습니다.

3실점을 허용한 한국은 4-2-3-1로 전환했습니다. 김정우-기성용이 더블 볼란치, 김보경-윤빛가람-구자철이 2선 미드필더를 맡으면서 김신욱이 원톱으로 나섰죠. 때에 따라 김정우가 앞쪽 공간을 올라와 전방패스를 밀어줬고 김보경이 오른쪽 측면에서 볼을 터치했고, 차두리의 오버래핑을 늘리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자철이 측면에서 돌파가 아닌 패스를 띄우는 경기 운영에 중심을 두면서, 구자철의 패스를 받아낼 마땅한 선수가 없었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중앙에서는 윤빛가람-김신욱이 폭을 좁혔음에도 일본의 중앙 수비를 뚫기에는 패스의 날카로움과 활발함이 부족했습니다. 일본이 엔도-하세베와 4백 사이의 공간을 좁히면서 한국의 중앙 공격이 좀처럼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한국은 후반 22분까지 슈팅 10-19(유효 슈팅 3-8, 개)로 밀렸습니다. 일본과의 점유율에서 4:6으로(공격 점유율에서는 체감적으로 3:7) 밀렸고, 패스 횟수 및 슈팅 등에 이르기까지 공격에서 상대팀에게 월등한 열세를 나타냈죠. 0-3 이후에는 만회골을 넣겠다는 시도를 했지만 두드러진 성과가 없었고, 오히려 일본에게 슈팅 기회를 여러차례 허용하면서 또 다시 수비 불안이 나타났습니다. 후반 25분 우치다 왼발 슈팅은 골 포스트를 강타했지만 운이 나빴다면 0-4로 벌어졌을지 모릅니다. 우리 선수들이 견고하면서 적극적인 압박을 펼치지 못하면서 매우 어려운 경기를 펼쳤죠. 수비 조직력에서도 일본에게 완패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후반 중반에 엔도-하세베를 교체하는 여유를 부리며 승리를 자신했죠.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일본에게 후반 초반까지 3골을 내줬다는 점입니다. 역대 전적에서 한국이 일본을 월등히 앞섰고, 지난 13년 동안 A매치 일본 원정에서 패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아시아 최정상을 지켰지만 이번 일본전을 계기로 맞수의 눈부신 성장을 꺾지 못했죠. 일본은 공격을 자유자재로 시도하며 한국을 몰아 붙이는 경기를 하는데 조광래호는 무기력한 경기 내용을 거듭했습니다. 박지성-이청용-이영표 공백이 크지만 그것을 이겨내겠다는 전술적 보완이 아쉬웠고,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수비 불안이 일본에게 집요하게 당했습니다. 조광래 감독은 패스 축구를 추구하지만 일본의 공격 전개는 한국의 레벨을 넘어선 것 그 이상의 클래스 였습니다.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은 한국의 골 결정력 불안 입니다. 0-3 이후 일본의 느슨해진 수비를 틈타 일본 골망을 두드렸지만, 김신욱이 무리한 슈팅을 날리거나 구자철이 상대 골문 가까이에서 날렸던 슈팅이 너무 높게 뜨고 말았습니다. 골운이 따랐다면 경기 분위기가 갑작스럽게 달라지는 상황이 연출되었을지 모를 일이죠. 후반 초반에 0-3으로 밀렸던 순간부터 한국에게 패색이 짙었고, 1974년 9월 28일 A매치 일본 원정 1-4 패배 이후 37년 만에 일본에게 3실점 이상의 패배를 당했습니다. 우리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패배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