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는 그동안 수많은 국제 경기를 치르면서 일본과 가장 오랫동안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싸우며 상대팀을 이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축구라는 틀에서 벗어나면 일본은 문화, 역사, 정치, 경제 등등 여러가지 분야에서 대립각을 세웠던 나라였죠. 최근에는 독도 영유권 및 동해-일본해 표기 논란으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이번 한일전을 바라보는 두 나라 국민들의 시선이 특별한 이유입니다.
오는 10일 7시 30분 삿포로돔에서 펼쳐질 한일전은 역대 75번째 A매치 입니다. 역대 전적에서는 한국이 40승22무12패로 앞섰으며 최근 A매치 일본전 6연속 무패(2승4무)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1998년 3월 1일 요코하마에서 일본에게 1-2로 패한 이후 13년 동안 일본 원정에서 패하지 않았습니다.(5경기 3승2무) 하지만 지난 1월 아시안컵 4강에서 승부차기 끝에 0-3으로 패했던 아쉬움이 있습니다.(공식 경기상 무승부) 7개월 만에 펼쳐지는 일본전에서 승리하면 기쁨이 배로 커질 것입니다.
1. 한국이 이겨야 하는 이유, 아시안컵 복수전
일본전은 평가전입니다. 평가전은 자국 축구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일본전은 '아시안컵 복수전' 성격이 강합니다. 지난 1월 아시안컵 4강에서 일본에게 승부차기 끝에 0-3으로 패했죠. 경기 종료 후 우리 선수들이 고개를 떨구며 아쉬워했던 모습, 손흥민의 눈물은 여전히 축구팬들의 마음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때의 패배가 더욱 분한 것은 일본이 아시아를 제패 했습니다. 최근 4번의 아시안컵에서 3번이나 우승을 거머쥐었죠. 과거에는 '한국 축구>일본 축구'라는 공식이 성립되었지만 이제는 '한국이 일본에 도전한다'는 늬앙스의 일부 주장이 제기 될 정도입니다. 일본의 성장이 눈부십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건, 만약 한국이 일본전에서 패하면 국내 여론에서 '한국 축구<일본 축구'라는 명제가 설득력을 얻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아시안컵 성적 위주의 관점에서는 일본이 아시아 No.1 입니다. 또한 일본의 유럽파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죠.(하지만 한국은 AFC 챔피언스리그 우세) 하지만 한국 축구팬 마음에서는 '일본이 한국보다 축구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그동안 아시아 최강의 축구 실력을 발휘했던 자존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가전은 결과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본전은 경기 내용 및 결과를 포함한 모든 것이 중요합니다. 태극 전사들은 아시안컵 패배를 생각해서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되살려야 합니다. 일본전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2. 한국, 일본의 3-4-3을 뚫어라
한일전의 변수는 일본의 포메이션 입니다. 일본은 아시안컵 우승 당시 4-2-3-1을 활용했지만 그 이후에는 3-4-3으로 전환했습니다. 자케로니 감독이 선호하는 포메이션으로 유명하죠. '4백의 대세, 3백 퇴보'가 굳어진 현대 축구의 흐름속에서 일본이 3백을 쓰는 것은 자케로니 감독의 뜻이 강합니다. 과거에 비해 측면 옵션들의 기량이 부쩍 좋아진 일본이라면 3-4-3 성공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3백은 4백에 비해 윙백과 수비수 사이의 수비 뒷 공간을 내주기 쉽습니다. 나가토모가 부상으로 빠진 왼쪽, 우치다의 수비 가담이 늦는 오른쪽이 일본 3-4-3 약점입니다. 그래서 한국은 측면을 흔들며 일본을 공략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측면 공격도 불안 요소입니다. 박지성 대표팀 은퇴와 이청용 부상, 두 선수의 공백을 메울 예정이었던 지동원-손흥민 차출이 불발 됐습니다. 그래서 이근호-구자철이 우치다-구리하라(또는 이에나가)와 측면에서 맞대결하지만 두 선수가 측면에서 최상의 공격을 펼칠지 의문입니다. 이근호는 그동안 대표팀에서 왼쪽 윙어로 뛸 때의 폼이 가장 좋았지만 최근 A매치에서는 패스 과정에서 동료 선수와 호흡이 맞지 않는 불안함이 있었고, 구자철은 측면 경험이 적으며 지난 2월 터키전에서 왼쪽 윙어를 맡았으나 부진했습니다. 그나마 이근호는 J리그 3년차로서 일본 선수들의 특징을 잘 알것이며, 구자철의 능숙한 퍼스트 터치는 일본의 수비 속도를 한 박자 빼앗는 임펙트가 될 것입니다. 향후 대표팀 경쟁에서 유리한 이점을 얻으려면 일본전 맹활약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3. 조광래호가 위기에 빠졌을 때, 박현범을 기대해보자
조광래 감독은 일본전을 앞두고 "미드필더 싸움에서 이길 것이다"는 각오를 나타냈습니다. 한국이 2010년 2월, 5월 일본 원정에서 승리할 때는 중원 전쟁에서 일방적인 우세를 점했지만 2010년 10월, 2011년 1월에는 일본에게 허리 싸움에서 밀리면서 무승부에 만족했습니다. 또한 일본 축구는 전통적으로 미드필더들의 퀄리티가 풍부합니다. 특히 엔도-하세베 중앙 미드필더 조합은 남아공 월드컵 16강-아시안컵 우승을 통해서 현존하는 아시아 최강임을 입증했죠. 한국이 이번 일본전에서 승리하려면 엔도-하세베를 공략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난 두 번의 일본전에서는 엔도-하세베의 클래스를 이겨내지 못했죠.
만약 한국이 일본과의 경기 도중에 중원 싸움에서 밀리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아시안컵 4강 일본전에서 후반전에 홍정호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여 경기 흐름을 한국의 우세로 바꾸었듯이 말입니다. 이번 일본전에서는 박현범이 조커로 나서면서 홍정호 역할을 할지 모릅니다. 최근 수원의 4-1-4-1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아 중원에서 공격 전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정확한 패스를 연결하고, 악착같이 수비에 임하는 열성을 다했습니다. 대표팀 기성용과 콘셉트가 일치하죠. 만약 한국이 엔도-하세베의 벽을 넘지 못하면 기성용-박현범이 더블 볼란치를 맡는 4-2-3-1 전환 가능성이 예상됩니다. 조광래호가 위기에 빠졌을때 박현범을 기대해봅니다.
4. 일본, 카가와-혼다 공존 성공할까?
일본은 카가와-혼다를 동시에 선발로 기용할 것입니다. 일본 공격에 빠져서는 안 될 아이콘이죠. 오카자키가 오른쪽 윙 포워드를 볼 수 있지만 본래 중앙 공격수라는 점을 미루어보면, 일본의 좌우 날개는 카가와-혼다가 맡을 겁니다. 하지만 두 선수의 공존은 아시안컵 당시 풀리지 않았던 문제입니다. 이번 한국전에서는 양쪽 측면을 책임지지만 공격시 중앙으로 이동하면서 연계 플레이를 노리거나 침투를 노릴 겁니다. 하지만 그 패턴은 카가와-혼다가 서로 일치하죠. 아시안컵때도 서로의 역할이 중복되면서 일본 공격이 원활하게 풀리지 않았던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혼다가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중앙에서의 공격을 늘렸지만 왼쪽 윙어였던 카가와의 공격력이 반감되었죠.
그런데 3-4-3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엔도-하세베는 무게 중심을 아래로 내리면서 공수 밸런스를 조절하며 이용래-김정우와 맞부딪치기 때문에 카가와-혼다가 때에 따라 중앙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후방에서 연결되는 빌드업을 한국 진영 중앙 공간에서 누가 받아낼지 의문입니다. 두 선수는 본래 중앙에서 경기를 펼치기 때문에(라기 보다는 혼다는 최적의 포지션이 없음) 역할이 겹칠게 분명합니다. 이충성 또는 오카자키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지만 박스안에서 경합하기 버거워지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일본 입장에서 카가와-혼다 공존은 골치아픈 일이죠. 또한 혼다-카가와는 터프한 선수들의 마크에 고전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한국이 그 약점을 노려야 합니다.
5. 최고의 매치업, 기성용vs엔도, 아시아 최고의 중앙MF는?
기성용은 2009년 AFC(아시아 축구연맹) 올해의 청소년 선수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20세의 어린 나이에 한국의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며 아시아 축구의 미래를 빛낼 존재로 평가받았죠. 그리고 AFC 올해의 선수는 엔도에게 돌아갔습니다. AFC가 인정하는 아시아 최고의 선수가 되었죠. 그런 엔도는 일본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2011년 아시안컵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일본 허리의 핵심으로서 가공할 패싱력과 너른 시야, 날카로운 킥력, 끈끈한 수비력으로 다재다능한 역할을 소화하며 아시아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일본 대표팀이 기고만장한 행보를 걷고있는 그 중심에는 엔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기성용이 있습니다. 엔도가 절정의 클래스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훗날 그의 아우라를 뒤덮을 선수가 기성용입니다. 최근 리버풀-토트넘 이적설로 주목받으면서 이적료 800만 파운드(약 142억원)까지 몸값이 치솟은 것 처럼 셀틱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죠. 일취월장한 공격력은 셀틱에서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었고,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수비력이 부쩍 좋아지면서 유럽을 호령할 중앙 미드필더로 성장중입니다. 반면 엔도는 유럽 진출 경력이 없는 31세 미드필더죠. 지금까지는 엔도가 아시아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손꼽혔지만 이제는 기성용 성장에 도전받는 입장입니다. 그 정점이 이번 한일전입니다. 기성용이 엔도가 버티는 일본의 허리를 제압하는 시나리오는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vs일본, 예상 선발 명단-
한국(4-1-4-1) : 정성룡/김영권-이정수-곽태휘(이재성)-차두리/기성용(박현범)/이근호(김보경)-이용래(윤빛가람)-김정우-구자철(남태희)/박주영(김신욱)
일본(3-4-3) : 가와시마/요시다-콘노-이노하(고마노)/구리하라(이에나가)-엔도-하세배-우치다/카가와(혼다)-이충성(오카자키)-혼다(오카자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