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올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첫 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시즌 초반 부진에서 탈출하여 평소의 경기력을 되찾은 박지성이 빛을 발했음에 맨유가 원정에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맨유는 3일 오전 4시 30분(이하 한국시간) 터키 부르사 아타투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11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본선 C조 4차전 부르사스포르 원정에서 3-0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후반 3분 대런 플래쳐, 후반 27분 가브리엘 오베르탕, 후반 32분 베베가 골을 넣으며 맨유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전반 28분 루이스 나니의 부상으로 조기에 교체 투입된 박지성은 후반 27분 오베르탕에게 스루패스를 연결한 것이 골로 이어져 도움을 엮어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는 패스 성공률 90.7%(54개 시도, 49개 성공)를 기록하며 맨유의 승리를 공헌했습니다.
나니 부상-베르바토프 부진 아쉬웠던 전반전
맨유는 부르사스포르 원정에서 4-2-3-1을 구사했습니다. 판 데르 사르가 골키퍼, 에브라-비디치-스몰링-하파엘이 포백, 스콜스-캐릭이 더블 볼란치, 오베르탕-플래쳐-나니가 2선 미드필더, 베르바토프가 원톱으로 출전했습니다. 최근 폼이 좋은 박지성-에르난데스를 벤치 멤버로 두면서 후반전에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것이 맨유의 전략입니다. 전반전에는 상대의 전력을 탐색하면서 미드필더를 강화하고 안정적인 경기를 펼치겠다는 의도가 두드러졌습니다.
그렇다고 맨유가 공격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스콜스-캐릭이 후방쪽으로 내려가면서 부르사스포르 선수들을 앞쪽으로 끌어들였고, 상대의 공을 커팅하면 그 즉시 전방쪽으로 신속하게 볼을 띄우며 배후 공간을 노리는 패턴으로 경기를 풀어갔습니다. 부르사스포르가 홈에서 공격적인 경기를 펼칠 것이라는 계산을 했기 때문에 상대의 경기 스타일에 맞추면서 '임펙트'를 노리는 형태가 전개됐죠. 전반 10분에는 베르바토프가 박스 바깥 중앙에서 날렸던 오른발 인사이드 슈팅이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지만 상대 수비진을 허물고 슈팅으로 진행되는 과정이 매끄러웠습니다.
부르사스포르가 전반 10분 이후 공격적인 움직임을 자제할 때는 수비진과 미드필더진에서 점유율을 늘리는 패스 전개를 반복했습니다. 20분 점유율에서 57-43(%)로 근소하게 우세를 점하면서 천천히 공격을 풀어갔죠. 그러나 19분 에브라, 20분 하파엘이 연결했던, 측면에서 중앙으로 향하는 논스톱 패스가 상대에게 차단당하면서 역습까지 허용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베하디르에게 박스 오른쪽 가까운 곳에서 기습 슈팅을 내줬지만 볼은 판 데르 사르의 머리를 맞고 코너킥이 됐습니다. 28분에는 나니가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교체되고 박지성이 교체 투입하면서 맨유의 공격이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측면과 중앙의 조화가 유기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박지성의 프리롤 역할이 얼마만큼 효과를 거둘지 관건 이었습니다.
하지만 맨유는 박지성이 투입하면서 오히려 압박에 주력합니다. 베르바토프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맨유 진영으로 수비에 가담하여 상대 공격 옵션을 견제했습니다. 나니가 교체되면서 출중한 돌파와 개인기로 상대 수비를 단번에 허물수 있는 파괴력 넘치는 공격 옵션을 잃었기 때문에, 무리한 공격보다는 수비에 중점을 두면서 상대 공격을 차단하면 패스에 초점을 맞추는 경기 운영을 나타냈습니다. 39분에는 비디치와 박지성이 2대1 패스를 연결하고 에브라에게 전방 패스를 띄우면서 상대 수비를 허무는 장면을 노출했습니다. 특히 에브라는 박지성 투입 이후 왼쪽 측면 앞선으로 올라오고 여러차례 볼을 배급하며 상대 오른쪽 뒷 공간을 공략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문제는 베르바토프의 부진입니다. 전반 10분에 슈팅을 날렸던 것 이외에는 전반전에 어떠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습니다. 박지성-오베르탕-플래쳐와 함께 2선쪽에서 연계 플레이를 펼치면서 전반전에 17개 패스를 시도하여 14개를 성공시켰지만, 정작 베르바토프가 해야 할 역할은 골을 넣는 것입니다. 패스 위주의 움직임보다는 후방 옵션에게 볼을 받자마자 상대 수비 빈 공간을 겨냥하는 돌파를 시도하며 골을 넣을 위치를 찾았어야 했습니다. 상대 센터백들이 전방 공간을 내주는 약점을 드러냈기 때문에 골에 대한 욕심이 필요했죠. 다만, 캐릭이 토트넘전에 이어 부르사스포르전에서 최상의 경기 감각을 발휘한 것은 맨유에게 위안 이었습니다. 40개의 패스 중에 36개를 동료 선수에게 정확하게 연결하며 정상적인 패스 감각을 되찾았고 경기를 침착하게 조율했습니다.
맨유, 후반전에 3골 작렬...박지성은 도움 기록
맨유는 후반전을 기분 좋게 출발했습니다. 후반 3분 캐릭이 대각선쪽으로 연결한 전진패스를 플래쳐가 박스 오른쪽에서 볼을 터치하여 재빨리 오른발 논스톱슛으로 상대 골망을 흔들며 선제골을 넣었습니다. 베르바토프의 움직임이 무뎌진 상황에서 플래쳐가 과감히 골을 해결짓는 맨유의 득점 과정이 천군만마와 같았습니다. 플래쳐는 전반전에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짧은 패스 위주의 연계 플레이를 노리며 상대 포백과 미드필더 사이의 공간을 집요하게 공략했습니다. 후반 초반에도 상대의 수비 약점을 노리면서 옆쪽으로 빠져나오더니 캐릭의 패스를 받아 골을 기록하는 영민함을 과시했습니다.
1-0으로 앞서간 맨유는 슈팅보다는 패스에 주력하는 경기를 펼쳤습니다. 상대가 실점 이후 공격적으로 경기를 펼칠것을 대비하여 미드필더진에서 점유율을 늘리면서 좌우 풀백이 미드필더쪽으로 전진하는 패스 플레이에 주력했죠. 그래서 부르사스포르는 맨유 진영에서 반격할 돌파구를 찾지 못했고 점유율에서도 43-57(%)로 밀리면서 동점골을 넣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에 맨유는 후반 16분 플래쳐를 빼고 베베를 투입하며 전술을 변화했습니다. 플래쳐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박지성이 들어가고, 베베가 오른쪽 윙어를 맡았죠. 베베의 경기 감각을 키우고 플래쳐의 체력을 안배하겠다는 퍼거슨 감독의 의도였습니다.
박지성은 맨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전혀 어색함이 없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전반 28분 교체 투입 이후 측면과 중앙을 부지런히 오가며 패스 연결에 주력했고, 공간을 창출하면서 상대 수비의 빈 틈을 공략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환한 이후에도 여러차례 정확한 패스를 연결하며 상대의 공격 의지를 무너뜨리는 것과 동시에 맨유의 추가골 기회를 노렸습니다. 특히 후반 27분에는 박스 오른쪽 바깥에서 공을 몰고 가면서 왼쪽 대각선쪽으로 스루패스를 날렸던 것이 오베르탕의 추가골로 이어졌습니다.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첫번째 공격 포인트(도움)를 기록하며 최근의 오름세를 과시했습니다. 더욱 경이적인 것은, 후반 시작부터 27분까지 단 한 번의 패스 미스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후반 32분에는 베베가 추가골을 기록했습니다. 박스 안쪽 정면에서 스콜스의 전진패스를 받아 오른발 슈팅으로 상대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부르사스포르가 연이어 실점을 허용하면서 맨유에게 수없이 공간을 허용당한 것이 컸죠. 맨유로서는 베르바토프의 부진 속에서도 플래쳐-오베르탕-베베 같은 미드필더 자원들이 3골을 기록한 것에 의미가 큽니다. 공격수가 골을 노리지 못하는 것에 개의치 않고, 미드필더들이 빠른 타이밍의 원터치, 투터치 패스를 통해 상대 수비 뒷 공간을 공략하고 세번씩이나 골망을 가르면서 효율적인 공격력을 과시했습니다. 그 흐름은 경기 종료까지 쉴새없이 전개되면서 맨유가 3-0으로 승리했습니다.
특히 스콜스-캐릭은 각각 101개, 97개의 패스를 연결하여(90개, 85개 성공) 맨유 승리를 지탱하는 결정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경기 내내 정확한 패스를 연결하며 2선 미드필더들의 공격 부담을 줄였고 상대 미드필더의 수비 부담을 늘리며, 중원을 장악하고 경기 분위기를 주도하는 결정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2선에서는 플래쳐와 박지성이 공간 창출을 통해 상대 수비의 허점을 공략하며 맨유가 3-0 완승을 거두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베르바토프는 후반 44분 베베의 오른쪽 크로스를 받아 오른발 아웃사이드 슈팅을 날렸으나 공이 골대 바깥으로 향하면서 끝내 골 부진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맨유의 3-0 승리 속에서도 베르바토프의 부진은 옥의 티 였습니다. 그럼에도 부르사스포르 원정 승리가 당연했던 이유는 '미드필더의 막강함'에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