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경기를 펼치고 승리를 거두면 행복해진다. 나 역시 자신감이 한층 붙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전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은 지난 2일(이하 한국시간) 맨유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지금의 활약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3일 부르사스포르 원정을 앞둔 공식 기자회견에서 맨유 선수들을 대표해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러한 발언을 한 것입니다. 시즌 초반의 부진을 이겨내고 평소의 경기력을 되찾으며 맨유의 4연승을 이끌었기 때문에 선수단 대표로 기자회견에 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부르사스포르전을 벤치에서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있어야 할 윙어 자리에 나니-오베르탕이 포진했죠. 경기 전 기자회견에 참석했기 때문에 선발로 출전하는것이 아니냐는 예상을 할 수 있었지만, 그저 예상에 불과했습니다. 지난 27일 울버햄턴전과 30일 토트넘전에 선발 출전하여 맨유의 승리를 공헌하는 맹활약을 펼쳤지만, 퍼거슨 감독은 체력 안배를 위해 박지성을 벤치로 내렸습니다. 최근 맨유의 새로운 해결사로 떠오른 하비에르 에르난데스까지 벤치에 있었음을 상기하면, 박지성은 에르난데스와 더불어 맨유가 후반전에 승부수를 띄울 유력한 조커카드 였습니다.
그런데 루이스 나니가 전반 28분 갑작스런 오른쪽 사타구니 부상을 당하면서 맨유 공격력에 비상이 생겼습니다. 올 시즌 대부분의 경기에서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맨유의 에이스로 거듭난 나니의 부상은 맨유에게 반갑지 않은 시나리오 였습니다. 경기의 흐름을 주도했으나 부르사스포르의 압박에 주춤하면서 최전방에서의 패스 전개가 종종 끊겼고,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부진에 빠지면서 맨유의 공격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나니 대신에 투입된 박지성이 왼쪽 측면과 중앙을 활발히 오가는 프리롤 형태의 움직임을 통해, 활발하고 정확한 패스 플레이를 앞세워 맨유 공격의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
맨유의 박지성 교체 투입은 부르사스포르 원정에서 후반전에만 3골을 몰아넣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박지성이 부르사스포르 포백과 미드필더 사이의 공간을 창출하고 동료 선수들과 원터치, 투터치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 수비의 약점을 공략했습니다. 홈에서 승리하기 위해 앞쪽으로 쏠리면서 공격에 무게감을 둔 부르사스포르 선수들은 박지성의 연계 플레이를 봉쇄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쉴새없이 수비 뒷 공간을 허용했습니다. 그런 흐름속에서 에브라의 적극적인 오버래핑, 플래쳐-스콜스-캐릭의 패싱력까지 살아나면서 맨유가 후반전에 여러차례 골 기회를 마련했고, 결국 플래쳐-오베르탕-베베가 상대 골망을 가르는 골을 터뜨렸습니다.
특히 후반 27분 오베르탕의 골은 박지성의 그림같은 스루패스가 결정적 이었습니다. 하프라인에서 상대 진영 오른쪽으로 단독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고 상대 수비의 시선을 자신쪽으로 유도했는데, 재빠르게 왼쪽으로 스루패스를 연결한 것이 오베르탕의 추가골로 이어져 도움을 기록했습니다. 이 골은 맨유가 승리 분위기를 확정짓는 결정타가 되었고 골 과정의 발판을 마련한 사람은 박지성 이었습니다. 박지성은 그동안 퍼거슨 감독 및 외부 여론에서 골이 부족하다는 쓴소리를 들었지만, 그 도움 장면 만큼은 박지성의 공격력이 기존과 업그레이드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박지성의 패스가 팀의 골로 직결되는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은 부르사스포르전에서 62분 동안 54개의 패스를 시도하여 49개를 동료 선수에게 정확하게 연결했습니다. 패스 성공률 90.7%를 기록하여 맨유에서 효율적인 볼 배급을 주도했음을 의미합니다. 자신과 함께 2선 미드필더로 호흡을 맞추며 45분 이상 소화했던 플래쳐(44개 패스 시도, 36개 성공, 패스 정확도 : 81.8%) 오베르탕(57개 패스 시도, 43개 성공, 패스 정확도 : 75.4%)보다 패스 정확도가 더 높았던 셈입니다.(플래쳐는 61분, 오베르탕은 90분 출전) 더블 볼란치와 포백은 패스를 서로 주고 받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패스 시도가 많을 수 밖에 없지만, 상대의 압박을 받는 2선 미드필더로서 50개 넘는 패스를 연결하며 90% 넘는 패스 성공률을 기록한 것은 맨유가 3-0 승리를 거두는 원동력 중에 하나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박지성은 지난 토트넘전에서 풀타임 출전하여 49개의 패스 중에 46개를 성공했습니다. 단 3번의 패스 미스만 있었을 뿐, 대부분의 패스를 동료 선수에게 빈틈없이 배급하여 팀의 2-0 완승을 이끌었습니다. 왼쪽 윙어로 출전했음에도 중앙과 오른쪽 측면까지 연계 플레이에 의한 공격 패턴을 앞세워 팀 공격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그런 패턴은 부르사스포르전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었고 단 5번의 패스 미스만 범했을 뿐입니다. 다만, 부르사스포르전에서는 후반 16분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환하여 패스 위주의 플레이를 통해 맨유의 공격을 주도하는 영민함을 발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오베르탕 골의 발판을 열으며 도움을 기록했고, 쉴새없이 상대 공간의 빈 틈을 공략했습니다.
지난 두 경기 동안의 박지성 공격 패턴을 살펴보면 그 이전과 철저하게 다릅니다. 기존의 박지성은 선발 출전한 경기에서 패스 30~40개 정도 기록한 경우가 잦았고, 종종 패스미스를 범하면서 맨유의 공격이 끊어지는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동료 선수들에게 패스를 받지 못하면서 측면에서의 빈 공간 창출에만 주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패스에 적극적인 자세를 나타냈습니다. 기존의 왕성한 움직임을 통해 공격의 돌파구를 마련하기보다는, 이제는 그 움직임을 바탕으로 적시적소에 패스를 연결하며 동료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는 공격력 업그레이드에 성공했습니다. 기존에 종적인 움직임에 강한 성향을 나타냈다면 이제는 상대 수비의 견제를 받는 상황에서 원터치, 투터치 패스를 막힘없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박지성이 시즌 초반 부진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패스'에 있었습니다. 자신이 주장을 맡고 있는 한국 대표팀에서 패스 위주의 경기를 통해 공격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패턴이 맨유에서 비슷하게 재현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역할을 퍼거슨 감독이 아이디어로 삼아서 맨유 전술에 적용했을지 모릅니다. 공교롭게도 맨유는 부르사스포르전을 포함해서 5연승을 달성했는데, 그 중에 4경기는 박지성의 맹활약이 두드러졌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맨유가 슬로우 스타터 악령을 이겨낼 수 있도록 박지성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렸던 것이 연승 행진에 탄력이 붙고, 웨인 루니의 공백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런 박지성은 지금까지 맨유에서 궂은 역할에 주력하다보니 현지 언론에서 저평가되기 쉬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맨유 공격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연계 플레이에 능동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현지 언론의 호평을 받게 됐습니다. 지난 토트넘전이 끝난 뒤에는 맨체스터 지역지 <맨체스터 이브닝뉴스>를 통해 "최근 스스로 매우 회의적이었지만, 그는 오랫동안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한 것에 기뻐했음을 틀림없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네마냐 비디치와 더불어 팀 내에서 가장 높은 평점 8점을 기록했습니다.
박지성은 '패스 메이커'로 진화하며 이전보다 더 강해진 공격력을 발휘했습니다. 왼쪽 측면에만 한정짓지 않고, 중앙과 오른쪽 측면에서도 부드러운 볼 배급을 통해 맨유 공격의 새로운 젖줄로 거듭났습니다. 또한 패스를 통해 경기를 조율하고 새로운 공격 루트를 개척하면서 플레이메이커 기질까지 발휘했습니다. 이렇게 다재다능한 장점이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에 6시즌 동안 맨유 소속으로 뛸 수 있었고, "맨유에서 오랫동안 뛰고 싶다"는 자신의 꿈이 실현 가능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박지성의 공격력 변화는 맨유 소속이라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량 발전에 주력하며 꿈을 이루겠다는 자세를 포기하지 않은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박지성은 우리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더욱 오랫동안 맨유에 잔류하며 산소탱크의 저력을 발휘할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