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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호날두 부진, 레알에게 전화위복 계기 됐다

 

'갈락티코'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은 AC밀란 원정에서 이겼어야 했습니다. 페드로 레온의 극적인 동점골로 간신히 2-2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경기 초반부터 수많은 골 기회를 충실히 살렸다면 승리의 미소를 머금고 스페인으로 돌아왔을지 모를 일입니다. 전반 20분까지 슈팅 숫자에서 9-1(개)의 일방적인 우세를 점하고도 유효 슈팅이 2개에 불과한 것이 아쉽습니다. 전체 슈팅 숫자에서는 22-8(유효 슈팅 11-5, 개)를 기록했지만, 22개의 슈팅 중에 2골에 그친 것은 레알의 공격력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물론 레알은 산 시로 징크스에 시달리는 팀입니다. AC밀란 홈 구장 산 시로 통산 성적이 7전 2무5패이기 때문입니다. 페드로 레온가 후반 49분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기 때문에 간신히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갈락티코 2기'의 위용을 과시하려면 산 시로에서 이겼어야 했습니다. 경기 초반부터 일방적인 우세를 점했고 쉴새없이 골 기회를 노렸기 때문에 충분히 승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그럼에도 호날두-외질이 상대의 집중 견제에 봉쇄 당하면서 공격 전개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나마 전반 44분 앙헬 디 마리아의 전진패스가 곤살로 이과인의 선제골로 이어졌으나 문제는 상대의 탄탄한 압박 수비를 뚫어내려는 전술적 움직임이 유연하지 못했습니다.

레알, 호날두의 부진을 교훈삼아라

가장 아쉬움에 남는 것은 호날두의 부진입니다. 가투소-아바테의 협력 수비에 막혀 고전을 면치 못했고, 특히 가투소에게 페인팅 동작 및 돌파까지 완전히 읽히면서 어려운 경기를 풀어갔습니다. 하지만 호날두에 대한 집중 견제는 당연했습니다. AC밀란은 레알전에서 이기지 못하면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레알전 무승부로 1승2무1패) 반드시 호날두를 막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투소가 호날두의 동작 하나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고, 전반 24분 호날두와 아바테가 몸을 부딪히는 신경전에서 가장 흥분했던 선수는 가투소 였습니다. 더욱이 가투소는 지난 시즌 부진을 이겨내고 평소의 폼을 되찾았기 때문에 천하의 호날두라도 당해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호날두가 가투소의 수비에 흔들렸던 이유는 레알의 전술적 움직임과 밀접했습니다. 더블 볼란치와 2선 미드필더 사이에서 서로 공을 주고 받으며 점유율을 늘리다보니 호날두가 지공 형태의 공격에 익숙했던 겁니다. AC밀란 미드필더들이 포백 바로 아래에 포진하면서 레알에게 공격 분위기를 내주는 경기를 펼쳤기 때문에 레알이 그런 흐름에 익숙해진 것이죠., 그래서 호날두는 왼쪽 측면에서 볼을 터치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상황과 동시에 가투소-아바테와 매치업을 벌이게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AC밀란이 유도했던 수비 전술에 호날두가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20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맞붙었던 레알과 AC밀란의 경기를 복기하면, 호날두의 움직임에 문제 있었습니다. 당시의 호날두는 주로 왼쪽 측면에 포진하면서 경기 상황에 따라 디 마리아와의 스위칭을 통해 오른쪽 측면에서 공을 몰고 전방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이 종종 있었습니다. AC밀란 선수들의 집중 견제를 피하기 위해 디 마리아와 위치를 주고 받았던 것이죠. 공교롭게도 호날두와 디 마리아의 원 포지션은 각각 오른쪽 윙어, 왼쪽 윙어 였습니다. 레알에서는 서로 반대되는 포지션에서 뛰고 있지만 좌우 측면의 공격을 골고루 활용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번 AC밀란 전에서는 중앙에서 여러차례 볼을 터치했지만 지공 상황이었기 때문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습니다.

호날두에게 돌파 성향의 공격력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과인-외질-디 마리아와 다른 컨셉이기 때문입니다. 원톱 이과인은 2선으로 내려오면서 미드필더들과 공을 주고 받거나 상대 수비의 시선을 자신쪽으로 유도하며 공간을 창출하는 성향이며, 디 마리아는 간결한 패스를 강점으로 레알에서 알토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외질이 호날두와 더불어 현란한 드리블 돌파를 통해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는 '윙어 출신의' 공격형 미드필더지만, 축구에서는 측면보다는 중앙쪽에 압박에 강하면서 공간까지 좁기 때문에 호날두 쪽에 공격의 돌파구를 개척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호날두의 돌파가 레알 공격의 승리 해법으로 작용했어야 합니다.

문제는 호날두가 돌파하려는 공간을 AC밀란 선수들이 철통같이 봉쇄했습니다. 가투소-아바테가 다른 동료 선수들보다 부지런히 뛰면서 수비에 주력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정면 돌파를 고집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스위칭을 통해 상대 수비를 교란하거나, 아니면 레알 미드필더들이 밑선으로 내려오면서 상대 미드필더들을 앞쪽으로 쏠리게 해서, 그 벌어진 공간을 호날두-외질-디 마리아가 파고들며 역습을 가해야 결정적인 골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세 명 모두 역습 형태의 공격에 강하기 때문이며 이과인은 묵직한 한 방까지 갖춘 선수입니다.

하지만 레알 선수들은 AC밀란이 의도했던 전술에 걸려들며 지공에 의존했고 특히 알론소의 패스에 치우치는 경기 패턴을 일관했습니다. 상대 선수들을 박스쪽으로 가두어놓는 상황에서 필요없는 슈팅들을 난사했죠. 지공이 안되면 속공으로 몰아 붙였어야 했습니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무리뉴 감독의 지략이 알레그리 감독에게 패했습니다. 레온의 동점골이 없었더라면 레알의 AC밀란전 책임은 무리뉴 감독의 몫이 되었을 것입니다. 무리뉴 감독이 레알에서는 공격 축구를 지향했지만, 경기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하게 대응하는 자세를 나타냈다면 AC밀란전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었을지 모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레알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과정에 있어 호날두는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FC 바르셀로나의 메시와 더불어 '세계 최고의 선수'를 다툴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는 공격옵션이자 레알의 에이스이기 때문에, 레알이 그토록 염원하는 유럽 제패를 위해서는 호날두가 그 진가를 발휘해야 합니다. 레알은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 횟수(9회)를 자랑하지만 최근 6시즌 연속 16강에서 탈락했고, 유럽 제패를 위해 갈락티코 1기와 2기에 걸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았고, 올 시즌에는 '스페셜 원' 무리뉴 감독까지 영입하면서 우승을 위한 야심찬 의욕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호날두에게 기대하는 몫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레알과 상대하는 팀 입장에서는 반드시 호날두를 밀착 견제할 수 밖에 없습니다. AC밀란의 가투소-아바테의 성공적인 활약은 앞으로 레알과 맞서는 팀들에게 좋은 공략 수단이 됐습니다. 공교롭게도 호날두는 올 시즌 프리메라리가 9경기에서 12골 넣었지만, 챔피언스리그 4경기에서는 1골에 머물렀습니다. 메시가 챔피언스리그 4경기에서 5골을 사냥했음을 상기하면 호날두가 유럽 대항전에서 분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레알에게 있어 AC밀란전은 유럽 제패를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호날두가 상대팀에게 봉쇄당하지 않는 방법을 키워야 16강 징크스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우승에 도전할 수 있음을 말입니다. 호날두와 레알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